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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아이의 근육 발달 여정

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11

by Rani Ko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느린 아이의 근육 발달 여정


준이는 태생적으로 시지각이 약해 눈과 손의 협응력이 떨어졌고, 그로 인해 소근육 발달이 지연된 경우였다.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는 힘이 부족해 부분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래서 퍼즐 맞추기나 공간 도형 활동을 특히 어려워했다. 작은 조각 하나는 붙잡을 수 있어도, 그것을 전체 그림 속에서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반면 대근육 발달은 소근육보다는 조금 빠른 편이었지만, 평범한 또래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뒤처져 있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이 점을 분명히 인식했고, 아이에게 맞는 대근육 활동과 소근육 활동을 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생활 전반에 훈련을 녹여 넣기 시작했다.


아이의 발달은 늘 또래보다 느렸다. 다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해내는 단순한 동작조차 우리 아이에게는 벅찬 과제였다. 하지만 나는 준이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속도’가 아니라 ‘잘게 나눈 목표와 꾸준한 경험’이라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손가락 하나에서 시작된 여정


감각통합 교육의 첫출발은 너무도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됐다. 손가락을 구부리고 펴면서 숫자를 세는 것. 누구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동작이지만, 준이에게는 하나하나 따로 가르쳐야 하는 낯설고 힘든 과제였다.

“엄마, 손가락(이) 안 돼.”
그 작은 투정은 사실 절박한 외침이었다. 힘이 따라주지 않아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그리고 그로 인해 숫자와 동작이 자꾸 엇갈릴 때의 좌절감.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이 ‘작게 쪼개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더욱 단단히 해주었다.

나는 특수아동 교육에서 사용하는 '과제 분석(Task Analysis)' 기법을 떠올렸다. 큰 목표를 작은 단계로 나누어, 아이가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손가락 한 번 구부리기’, ‘펴기’, ‘숫자 하나 세기’처럼 가장 작은 단위부터 차근차근 훈련했다.

그렇게 쪼개어 놓으니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가능해졌다. 작은 성공이 쌓이자 아이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피어났고, 나 역시 그 미소 하나에 다시 힘을 얻었다. 이처럼 목표를 나누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도전하게 만든 것은 결국 아이의 성취감을 지켜주는 길이자 우리 모자의 버팀목이었다.



감각통합치료에서 배운 도구들


시간이 흐르며 활동은 조금씩 확장되었다. 치료실에서는 다양한 교구와 게임이 아이의 손끝을 단련시키고 마음을 북돋우는 역할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할리갈리 링엘딩(Halli Galli Ringelding)'이다. 여러 색 고무줄을 손가락에 끼워 특정 패턴을 완성하는 활동은 단순한 놀이 같지만, 손가락의 협응과 소근육 발달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고무줄이 자꾸 미끄러져 속상해하던 준이가 점차 능숙하게 패턴을 만들고, 성공했을 때의 환한 미소는 부모인 나에게도 큰 보상이 되었다.

또 다른 교구는 '다이아몬드 게임'이었다. 작은 말을 하나씩 집어 옮기며 상대방보다 더 멀리 이동시키는 전략 게임으로, 손끝의 힘뿐 아니라 규칙 이해와 순서를 지키는 훈련이 되었다. 단순히 말을 옮기는 동작 속에 ‘생각하는 힘’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놀이 속에 숨어 있는 배움은 다양했다. 예컨대 'PochPoch Nagelspiel'은 작은 핀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집어 보드 위에 꽂아 그림을 완성하는 교구인데, 처음에는 핀이 잘 집히지 않아 포기하려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색깔을 맞추고 모양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는 눈과 손을 함께 쓰는 법을 배웠고, 집중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핀을 꽂을 때마다 “딸깍” 하고 들리는 작은 소리는 아이에게 성취의 신호였고, 그 작은 성공들이 쌓이며 손끝의 힘과 자신감이 동시에 자라났다.

여러 색깔의 도형 조각들과 못, 망치로 완성한 기차 모형. Poch poch 교구활동이었다.



놀이터와 생활체육에서 얻은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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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차 현직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 글쓰기를 통해 또 한 번의 성장을 꿈꿉니다. 교육대학교 졸업 및 동 대학원 수료. 2025 브런치 "작가의 꿈 1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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