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취향이 확실한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분명하고, 자기 세계가 뚜렷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선명함이 다른 세계를 밀어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취향이 선명해질수록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은 점점 거슬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조용하고 사색적인 시간을 너무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소란스러운 공간이나 사람들의 활기 같은 것에 예민해질 수 있다. 단순히 “내 취향이 아니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내 공간을 침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생긴다. 그러면 어느새 나는 그 취향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취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애매하고 중간쯤에 서 있는 사람이란 사실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확고한 취향이 없는 대신, 여러 종류의 삶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게 되기 때문이다. 조용한 공간도 좋고, 가끔은 시끄러운 공간도 견딜 수 있는 사람. 어떤 날은 사색을 하고, 어떤 날은 사람들 속에 섞여도 괜찮은 사람.
취향이란 결국 자기를 설명하는 도구이지, 다른 것을 배척하는 기준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성숙한 취향이라는 건,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저걸 좋아할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