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핀이 빠지는 순간

by 랭크작가

요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쉽게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많은 분석이 있지만, 나는 요즘 한 가지 이미지로 그걸 이해하게 됐다. 바로 [안전핀]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탱하는 안전핀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이나 직업, 혹은 자존감일 수도 있다. 그 안전핀이 단단하면 삶이 흔들려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안전핀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는 데 있는 것 같다.


특히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기 중심으로 살기보다 타자 중심으로 살아가는 법을 먼저 배운다. 사회의 분위기, 부모의 기대, 교육열, 성적과 대학, 취업 같은 기준들. 우리는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삶의 목표처럼 받아들이며 자란다. 그래서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별로 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목적이 분명해서라기보다, 잘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준을 좇으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괜찮은 대학, 조금 더 괜찮은 직장, 조금 더 안정된 삶. 그 기준은 분명 노력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 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모른 채 달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떤 계기가 찾아온다. 대학, 취업, 결혼, 혹은 그 반대로 그것을 이루지 못한 실패 같은 사건들. 그동안 나를 지탱하던 안전핀이 그때 갑자기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때 사람은 처음으로 묻게 된다. '그럼 이제 나는 무엇으로 버티지?'


문제는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외부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기 때문에, 내 자존감을 스스로 지탱하는 기초공사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급하게 다른 것들을 찾아 나선다. 취미, 명상, 운동, 종교 같은 것들. 잠시 마음과 기분이 편해지는 순간도 있지만, 어느 순간 다시 제자리걸음 같은 느낌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때 더 큰 충격이 찾아온다.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 사이의 거리가 너무 크게 느껴질 때다. 그 차이를 보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 삶이 어딘가 훼손된 것 같다.” 그 순간 삶은 더 이상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이미 실패해버린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요즘 사람들이 느끼는 허무는 게으름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지탱하는 안전핀이 어디에 있는지 배우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외부의 기준을 따라 달리는 법만 배워왔다. 그래서 정작 안전핀이 빠져버린 상황에서 나만의 기준조차 사라졌을 때, 무엇으로 다시 서야 하는지 모르게 된다.


삶은 어쩌면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보다 먼저, 내 안전핀이 빠졌을 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만들어 준 기준이 아니라, 내가 무엇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인지. 그것을 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때로는 매우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이야말로, 처음으로 자기 중심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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