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
친구보다 잘살고 싶은 마음, 회사에서 올라가고 싶은 마음, 모임 안에서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헬스장에서 저 사람보다 강해보이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감정은 겉으로 보면 단순한 경쟁심처럼 보인다. 욕심, 허영심, 비교의식. 하지만 이 마음을 조금 더 심층적으로 보면, 사람은 단지 남을 이기고 싶어서 이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의 밑바닥에는 늘 존재의 문제가 깔려 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여기서 쓸모 있는 사람인가. 나는 무시당해도 되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누군가보다 뒤처지지 않는가. 이 질문들은 대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승진하고 싶다, 더 벌고 싶다, 더 멋있어지고 싶다, 더 인정받고 싶다. 말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이기고 싶다는 말은 종종 나를 증명하고 싶다는 말의 다른 얼굴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빠진다. 운동은 이상할 만큼 정직한 세계다. 하면 변하고 안 하면 무너진다. 노력과 결과가 비교적 분명하다. 몸은 거짓말을 덜 한다. 회사에서는 정치가 개입되고 인간관계에서는 애매함이 끼어들고 세상 일은 수많은 운에 흔들리지만, 운동은 적어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을 키우며 단지 근육만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겼다는 감각,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감각, 흐트러진 삶 속에서도 적어도 하나는 내 힘으로 쌓았다는 감각을 얻는다.
운동이 자기계발의 상징처럼 소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운동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것처럼 말하는 수많은 문장들은 사실 근육에 대한 찬양이 아니다. 그건 통제감에 대한 찬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착각에 빠진다. 운동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 ‘증명하는 방식’에 중독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몸은 강력한 증거가 된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나는 흐트러진 사람이 아니다, 나는 적어도 이 정도는 해내는 사람이다. 이 증거는 분명 힘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증거는 타인을 향한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무시당할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어떤 공간에서는 이기는 방식이 단순해진다. 기세가 센 사람이 이긴다. 여기서 말하는 기세는 단순한 자신감이 아니다. 주저하지 않는 태도, 확신 있는 말투, 밀어붙이는 에너지. 사람들은 생각보다 논리보다 분위기를 먼저 읽는다. 그래서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기세가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기세만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기세만 센 사람은 결국 또라이 취급을 받는다. 근거 없는 확신은 쉽게 무너진다. 반대로 증거만 있는 사람은 존재감이 약하다. 잘하긴 하지만 끌리는 힘은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구분된다.
기세만 있는 사람, 증거만 있는 사람, 그리고 기세와 증거를 동시에 가진 사람.
마지막 부류는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그냥 느껴진다. 말하지 않아도 존재감이 있고, 필요할 때는 밀어붙일 줄 알며, 이미 쌓아온 결과가 그 사람의 말에 힘을 실어준다. 우리가 흔히 ‘센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계속 무언가를 쌓는다. 돈, 몸, 직위, 말, 성과, 관계.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존재의 증명.
하지만 여기서 한 번쯤은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정말 계속 이겨야만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걸까. 혹은, 이기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질문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던져본 사람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게 된다. 여전히 잘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고, 때로는 이기고 싶지만,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
그때부터 사람은 조금 달라진다. 이기려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이 결국 가장 흔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