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사람에게 전이하지 말자는 다짐
분노의 ‘출구 고착’ 현상이 있다. 분노가 흘러갈 출구가 없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새는 구조에 갇힌 유형을 일컫는 말이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를 혐오한다. 왜 이렇게 화가 많을까, 왜 이렇게 못되게 굴까. 하지만 문제는 화의 양이 아니다. 분노의 흐름이 한 곳으로만 고착된 구조다. 회사에서 참은 분노, 육아에서 누른 피로, 삶 전반의 압력이 모두 한 사람에게 몰린다. 그 사람은 원인도 해결자도 아닌데, 유일한 배출구가 된다. 이렇게 되면 관계는 협력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이 된다. 내가 살기 위해 내보낸 분노가 상대를 다치게 하고, 그 상처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서로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상처의 교환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화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화를 참는 법을 배우는 문제도 아니다. 분노의 출구를 재설계하는 문제다. 분노가 사람에게 향할 때 관계는 반드시 망가진다. 사람은 견뎌주는 존재이지, 에너지를 배출하는 통로가 아니다. 분노는 환경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몸으로, 공간으로, 침묵으로, 잠시 떨어진 거리로 흘러가야 한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윤리다. 관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다.
성숙함은 화를 느끼지 않는 데 있지 않다. 분노를 인정하되, 그것을 누구에게 맡길지 선택하는 데 있다. 출구를 사람에서 환경으로 옮기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미치는 사람처럼 느끼지 않게 된다. 우리는 그저, 너무 오래 참아온 에너지를 어디로 흘려보내야 할지 배우는 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