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을 모은 게 아니라 불안을 봉인해왔다

by 랭크작가

나는 오랫동안 아끼는 사람이었다.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은 쓰지 않았고, 써도 되는 돈도 한 번 더 고민했다. 상품권은 바로 현금화했고, 작은 소비 앞에서도 ‘이게 꼭 필요할까’를 먼저 물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돌아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돈이 없으면 관계가 무너진다는 장면을 아주 어릴 때부터 보며 자랐다. 부모는 돈 문제로 자주 싸웠고, 그때마다 집 안의 공기는 단단히 깨졌다. 아이였던 나는 배웠다. 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안전이고, 사랑이고, 평화라는 것을. 그래서 내 인생의 목표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수렴했다. 안전해지는 것.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열심히 일했고, 결혼도 했다. 성실하게 모으면 언젠가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울 집값은 내가 쌓아온 모든 노력을 비웃듯 훌쩍 뛰어버렸다. 그렇게 아등바등 모아도 티끌은 여전히 티끌 같았고, 그제야 마음속에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짓은 대체 언제 끝나지?


그때부터 허무가 찾아왔다. 희망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살아온 방식이 목적지를 잃은 느낌이었다. 돈을 모으는 이유가 ‘삶’이 아니라 ‘불안 제거’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안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안전해졌다고 느끼는 기준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돈을 모은 게 아니라, 사실은 불안을 봉인해왔던 것 같다. 돈을 쓰지 않으면 잠시 안심이 됐고, 잔고가 늘어나면 마음이 조금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건 평온이 아니라 경계 상태였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조이는 삶. 그 안에서 기쁨은 점점 사라지고,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안다. 돈으로 완벽한 안전을 만들겠다는 목표 자체가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걸. 나는 아직도 불안하지만, 적어도 불안을 없애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시키지는 않기로 했다. 돈은 나를 지켜주는 도구일 수는 있어도, 나를 살게 하는 전부는 아니라는 걸 이제는 배워보려 한다.


어쩌면 지금은 새로운 목표를 세울 시점일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안전해지는 삶이 아니라, 불안한 상태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는 삶. 돈을 모으되, 나를 잃지 않는 삶. 나는 오늘도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자산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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