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흔적을 생색낼 줄도 알아야 한다

by 랭크작가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분명히 애썼고, 분명히 희생했고, 분명히 자기 몫을 다했다. 아침을 챙기고, 학원을 보내고, 내가 아플 때 밤을 새웠다. 해야 할 일은 빠짐없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면은 그 노력들이 아니다. 혼났던 날의 표정, 차가웠던 말투, 지쳐 보이던 얼굴이 더 또렷하다.

엄마는 사랑을 설명하지 않았다. “너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있었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는 문장은 드물었다. 자신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얼마나 나를 생각하고 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사랑은 티 내는 게 아니라고 믿었던 것 같다. 생색은 얕은 행동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의 기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보여주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 사랑은 마음에 있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증거가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자라면서 종종 헷갈렸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책임을 다했을 뿐이었을까.


사랑은 했지만, 사랑받았다는 확신은 희미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이제야 안다. 사랑은 감정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관계 안에서는 때로 의도적으로 남겨야 한다. “엄마가 너 생각해서 준비했어.” “나는 네 편이야.” 이런 문장은 과장이 아니라 방향 표시다. 내가 너를 향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 엄마는 그런 신호를 잘 보내지 못했다. 어쩌면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본인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사랑만 하려고 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다르게 생각한다. 사랑은 조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에만 두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노력은 노력대로 하고,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는 일은 조금 억울하다고.


사랑의 흔적을 생색낼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얄팍함이 아니라 기술이고, 허영이 아니라 책임이다. 관계는 기억 위에 쌓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몰랐고,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남기고 싶다. 내 사랑이, 최소한 혼란으로 남지는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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