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미를 선택한 삶을 살았다. 적어도 그렇게 믿어왔다. 지루한 길보다는 흥미로운 길을, 안정적인 선택보다는 마음이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사람들과 빠르게 가까워지고, 새로운 일에 금방 적응하고, 분위기를 읽고 반응하는 삶. 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었고, 재미를 좇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늘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조용히 앉아 같은 자리를 오래 지키는 사람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 크게 튀지 않지만 묵묵히 쌓아 올리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참 단단하다고.
나는 재미를 따라 움직였지만, 그들은 성실을 따라 움직였다. 나는 흥미가 식으면 속도가 느려졌고, 그들은 흥미와 상관없이 자리를 지켰다. 나는 초반의 탄력을 즐겼고, 그들은 후반의 무게를 감당했다. 시간이 지나자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 번 시작했지만, 그들은 하나를 깊게 완성해갔다.
그래서 종종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왜 다른 삶을 부러워하고 있을까. 재미는 분명 나를 살게 하는 요소였는데, 왜 성실함 앞에서 작아지는 걸까.
아마도 재미는 순간을 빛나게 하지만, 성실은 시간을 이긴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재미는 나를 살아 있게 만들지만, 성실은 나를 쌓이게 만든다. 나는 살아 있었지만, 충분히 쌓이지는 못했다는 감각. 그 미묘한 아쉬움이 부러움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재미를 선택했다기보다, 재미에 끌려 다닌 건 아닐까.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 부족해서, 반복을 버티는 근육이 약해서, 그 대신 즉각적인 반응과 흥미로 스스로를 위로해온 건 아닐까. 재미는 도피가 되기도 한다. 성실이 요구하는 느리고 무거운 시간을 피해갈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
그렇다고 해서 재미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재미는 나의 기질이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다만 이제는 안다. 재미만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걸. 흥미는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성실은 장작처럼 오래 간다는 걸. 어쩌면 내가 부러워했던 것은 성실한 사람들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안정감이었을지도 모른다. 흔들려도 돌아갈 자리, 재미가 없어도 계속 갈 수 있는 힘. 나는 이제 그 힘을 갖고 싶다.
재미를 선택한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재미만 선택하지는 않겠다. 순간의 빛남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를 함께 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러움으로 바라보던 삶을, 조금씩 나의 일부로 옮겨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