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수 때문에 힘든 아이를 위한 솔루션

sky가 아니어도 괜찮아

수현이의 요즘 최대 고민은 자기 보다 영어와 수학을 조금 더 잘하는 같은 반 연경이에 대한 것이다. 이번 중간고사에서도 수현이가 반에서 11등, 연경이가 10등을 하였다. 연경이는 작년 말, 전학 온 친구이다. 처음엔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잘 웃기에 금새 친해졌다. 하지만 중3이 된 요즘은 연경이가 불편하기만 하다. 항상 수현이보다 많이도 아닌, 1,2 등을 앞서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도 그렇다. 연경이만 없었다면 내가 반 10등은 했을 텐데 말이다. 어감도 그렇지만 10등과 11등의 차이는 사뭇 크다. 게다가 연경이는 수현이보다 키도 조금 더 크다. 학교 선생님들도 수현이와 연경이가 늘 같이 다니고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해서 그런지 둘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하신다. 예전엔 단짝 친구여서 편하고 좋았는데 이제는 자신의 존재감을 조금씩 갉아먹는 것 같은 연경이가 불편하다. 그리고 늘 수현이의 주변에서 열등 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연경이가 요즘은 싫어진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순위를 매겨 규명하려 한다. 공부의 등수뿐만 아니라 키는 반에서 몇 등, 몸무게는 몇 등, 얼굴은 몇 등, 성격은 몇 등이라는 말로 말이다. 순위에 민감한 교육 분위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한편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언어'가 부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SNS를 통해 아이들은 수많은 언어들로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작 '내용'이 없다. 내가 규정한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규정된 혹은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만이 존재한다. 이는 아이들의 글쓰기에서도 단박에 드러난다. 예를 들어 독후감을 쓴다고 했을 때, 대다수의 아이들이 책의 줄거리는 자세하고도 구체적으로 술술 잘 써나간다. 하지만 막상 '느낀 점'을 써야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누군가의 계시대로 손을 움직이듯(대체로 네이버 지식인) 같은 말, 같은 표현을 나열하기에만 바쁘다. 나만의 언어가 없다. 물론 나만의 생각에까지 깊이있게 들어가야 하지만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어떤 존재인 지에 대한 언어조차도 빈약한 때가 많다는 것이다.

위의 수현이의 고민 역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연경이라는 존재 때문에 생긴 고민인 것은 맞다. 하지만 면밀히 들어가 보면 수현이는 정작 연경이의 무엇?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불편한 지에 대해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즉, 자신의 존재감을 방해하는 듯 보이는 연경이 자체가 불편하다,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말로 수현이의 내면에 자기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자신만의 세계'가 부재한 것이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행복하고, 혹은 불행한지, 어떤 걸 할 때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고 또 그렇지 않은지, 남들과는 어떻게 '다른 존재'인지 혹은 어떤 '같은 점'이 있는지, 자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취약점은 무엇인지 등등. '나'를 탐색하고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들, 생각들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으로부터 '나' 자신의 성찰, 정체성의 규정 등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 그로부터 비로소 '내'가 세상 속에서 어떠한 존재이며 더 나아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혹은 살고 싶은지) 하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들로 단단해진 내면을 지닌 아이는 쉽사리 '남'에 의해 휩쓸리지 않는다. 또 비교하며 자신을 비하하거나 반대로 우쭐대지도 않는다. '나'는 나, 남들과는 다른 '나'이기에 너무 남다름을 추구하며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순위를 매겨 규명하려 한다. 공부의 등수뿐만 아니라 키는 반에서 몇 등, 몸무게는 몇 등, 얼굴은 몇 등, 성격은 몇 등이라는 말로 말이다. 순위에 민감한 교육 분위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한편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언어'가 부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SNS를 통해 아이들은 수많은 언어들로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작 '내용'이 없다. 내가 규정한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규정된 혹은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만이 존재한다. 이는 아이들의 글쓰기에서도 단박에 드러난다. 예를 들어 독후감을 쓴다고 했을 때, 대다수의 아이들이 책의 줄거리는 자세하고도 구체적으로 술술 잘 써나간다. 하지만 막상 '느낀 점'을 써야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누군가의 계시대로 손을 움직이듯(대체로 네이버 지식인) 같은 말, 같은 표현을 나열하기에만 바쁘다. 나만의 언어가 없다. 물론 나만의 생각에까지 깊이있게 들어가야 하지만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어떤 존재인 지에 대한 언어조차도 빈약한 때가 많다는 것이다.





남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니다. 나 혼자만으로 충분히 행복하지 않고, 그 원인을 모르겠기에 가장 편하게 '남탓'을 해버리는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나'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서이고 그런 '나'를 내가 품지 않아서이다.
자꾸만 세상에 나아가는 게 '남 때문에' 불편하고 힘들고 지친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나'의 앞에 다시 서서 누구보다 소중하고 친해져야 하는 '나'와 가장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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