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진실이 궁금하다
영신이는 최근 미영이라는 친구와 급속히 친해졌다. 미영이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지만 친구들에게 간식도 잘 사주고 패션센스도 남달라 워낙 학교에서도 인기 1순위이다. 영신이는 다소 내성적인 자기보다 활달하고 친구들을 이끌고 다니는 미영이가 나름 부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신과 같은 평범한 아이를 친구로 대해주는 게 고마운 마음에 늘 최선을 다해 좋은 친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영이가 영신에게 백화점을 가자고 제안을 했다. "시험 점수가 생각보다 안나와서... 너무 스트레스 받는데, 우리 스트레스 좀 풀러 가자." 영신이는 아직 중학생 신분이라 쇼핑하러 백화점에 간다는 게 낯설었지만 호기심이 생겨 따라가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새로 나온 틴트 있나요?" 미영이는 1층 화장품 매장에 유명 브랜드 지점에 가서 스스럼 없이 판매원에게 인사를 건넨다. 영신이는 또 한번 놀랐다. '저렇게 얼굴도 알고 친할 정도면 미영이가 자주 오나보다.' 틴트 색깔을 같이 고르던 미영이는 썬크림과 에센스까지 보여달라더니, "저 이거 다 주세요."하고 엄마 카드를 내민다. "너 괜찮아? 이거 다 하면 꽤 비쌀텐데..." 영신이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미영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미영이는 "뭐, 이거 얼마나 한다구. 내가 받은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이 정도는 사야지. 알지? 우리 아빠가 사장님이잖아. 엄마는 교수님인데 요즘엔 미모도 실력이야,라면서 나 화장하는 거 혼내지도 않아."라며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을 자른다.
며칠 뒤, 주말에 영신이는 같은 반 예빈이를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영신아, 너 알아? 너랑 같이 잘 다니는 미영이 있잖아, 걔 맨날 자기 아빠는 사장님이구 엄마는 교수님이라구 했잖아. 근데 그거 다 뻥이래. 건대 근처에서 국밥 장사하신다던데? 그리구 걔 맨날 비싼 화장품 바르고다니면서 자랑했잖아. 그것두 다 엄마한테 엄청 혼나면서도,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백화점 가서 비싼 물건 사는 버릇을 못고친거래. 맨날 자랑을 입에 달고 살더니, 왠일이래니." 영신이는 어안이 벙벙하다. 나름대로 자기한테는 속얘기도 다 하는 친한 사이로 생각했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다니. 내일 학교 가면 미영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한다. 리플리 효과 혹은 리플리병이라고도 한다.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하는 단순 거짓말쟁이와 달리, 리플리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는다.
리플리 증후군은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 ‘리플리’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는 미국의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가 1955년에 쓴 범죄 소설이다. 반항아적 기질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친구이자 재벌의 아들인 디키 그린리프를 죽인 뒤,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그린리프의 인생을 가로챈다. 즉 톰 리플리가 아닌 디키 그린리프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린리프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연극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소설 속의 '리플리'는 환자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본인이 스스로의 거짓말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리플리 증후군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그러한 자각조차 없는 이들을 말한다.
리플리 증후군의 진행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욕구 불만족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본인의 상습적인 거짓말을 진실인 것으로 믿게 되면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타인에게 심각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힐 위험이 높아진다.
최근에는 20-30대 사이에서는 사이버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하여, 사이버상에서 타인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이라고 착각하는 인격 장애 (cyber ripley syndrome)도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SNS에서 타인을 사칭하는 프로파일 스쿼팅(profile squatting) 가해자들이 타인의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거짓말을 반복하는 증상이 심각해져 나타나는 인격 장애이다. 일례로 미국에 사는 20대 여성이 많은 이의 부러움을 샀다. 미국 버클리대에 다니는 이 여성의 약혼자는 재벌 2세였고 그녀는 결혼준비 과정을 계속 SNS에 공개했다. 하지만 이후 그 여성이 올린 모든 SNS 스토리는 ‘거짓’임이 밝혀졌다. 그녀가 올린 반지와 신혼지 사진 등 모두 그녀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이버 리플리 증후군은 성취 욕구는 강하지만 무능력한 개인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하여 열등감, 피해 의식 등에 시달리는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행동이기 때문에 절도, 사기, 심각하게는 살인 등 큰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 비교적 타인을 조종, 통제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남을 의식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특유의 경쟁 문화가 SNS 로 번져 경쟁적으로 게시물을 게시하며 “내가 더 잘 살고 있다”고 뽐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앞서 보여준 미영이의 경우도 일종의 리플리 증후군을 지닌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대해 신경을 쓰고 경계하는 모습, 남과 비교하며 우위가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경쟁적 심리,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부인, 부정하며 심지어는 이를 그 거짓말을 ‘사실’로 믿으며 행동하게 되는 것.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이다. 결국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민정이는 자신을 빠져나올 수 없는 스스로의 감옥에 가두고 말았던 것이다. 특히 사춘기 여자 아이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남과의 비교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부모가 행하는 억압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졌거나,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방식에 유난히 신경을 쓴다거나,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의식을 정해놓고 따라 잡기 위해 현실을 부인하는 자아가 더 강해진 경우 등이 있겠다. 어떤 경우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성공적이라면 다음으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네가 ~ 여서 사랑해.", "네가 ~ 해서 자랑스러워"라는 조건식의 사랑법이 아닌, 흔히 유년기 때는 되풀이 했을 표현인
"있는 그대로 너는 소중한 아이야.
아빠 엄마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라는 믿음과 신뢰를 다시금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
*참고문헌: 이동귀,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심리편> , (주) 북이십일 21세기북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브릿지 경제, <온라인이라는 암막 속 SNS 리플리 증후군>, 2017.11.16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