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학교에서 왕따예요

도현이가 학교에서 가장 두려워 하고 싫은 시간은 다름아닌 점심 시간이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맞춰 급식실에 가야하는데, 친구들과 요즘 좀 서먹하기 때문이다 그저께만해도 절친이었던 유정이는 어제부터 쌩 하니 말도 안 건다 작년에 같이 반이어서 올해도 친하게 지내자고 손깍지로 약속까지 했던 연수도 남자친구가 생기면서부터는 옆반에서 거의 살다시피한다 삼총사여서 나름 든든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쉬는 시간에도 집에 갈 때도 도현인 혼자다 어제는 겨우 옆자리에 앉은 지현이가 끼워줘서 그 그룹 친구들하고 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지현이도 바쁘다 자기 그룹 친구 한 아이가 생일이기 때문이다 생일케익 사느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칠판 꾸미느라 분주하다 오늘은 왠지 배도 아프고 소화도 안되는 것 같아서 그냥 굶으려고 한다




도현이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다름아닌,


<소녀들의 심리학> 이다



이 책은 '따돌림에 관한 소녀들의 심리'를 깊게 파해치고 있다. 사실 싸우고 따돌림으로써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소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소녀들 또한 은밀한 형태로 경쟁심ㆍ질투ㆍ분노를 드러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소년들과 달리 소녀들의 공격성이 은밀하게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창 시절 따돌림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저자 레이철 시먼스는 3년여에 걸친 300여명의 인터뷰를 통해 그 고통스런 비밀을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책을 쓴 레이철 시먼스는 옥스퍼드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 따돌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자신, 어린 시절 따돌림의 피해자였고 가해자였기에 그 답이 절실했던 것이다. 또한 자기 뿐 아니라 대학원 여자 동료들도 비슷한 시련을 겪었음을 확인하고는 궁금증이 더했다. 당연히 소녀들이 따돌리는 방법과 이유를 설명하는 책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은 전혀 없었다. 소년들의 공격과 따돌림을 다룬 논문은 넘쳐났지만 소녀들에 대한 논문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였다.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자료를 모으기로 결심했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되도록 많은 여자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린 시절에 다른 여자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이나 놀림을 당한 적이 있나요? 그 경험을 말해주세요. 그 경험이 현재의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며칠 지나지 않아 전국에서 답장이 날아들었고, 이를 계기로 3년 여에 걸쳐 300여 명의 소녀ㆍ교사ㆍ부모ㆍ성인 여성들을 인터뷰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소녀들의 심리학》이다.

사실상 그동안 소년들의 따돌림에 비해 소녀들의 따돌림은 주목 받지 못했다. 우선은 따돌림을 직접적인 신체 폭력으로 여기는 제한된 인식 때문이었다. 싸우고 따돌림으로써 공격성을 드러내는 소년들에 비해 소녀들의 따돌림은 은밀하고 비신체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소녀들의 따돌림은 알아채기 어렵고 따라서 대수롭지 않게 취급된다. 당연히 팩트는 없고 연구 성과는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 소녀들-여성들의 자발적 침묵이 더해진다. “말해 봤자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소녀들은 체험을 통해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더 깊은 침묵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침묵은 밖으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폭력보다 더 오랫동안 훨씬 깊은 상처를 남긴다.
레이철 시먼스는 “이제는 침묵을 깰 시간”이라고 호소한다. “소녀라면 누구나 겪는, 그렇지만 쉬쉬하는 가슴의 응어리가 된 따돌림에 대해 새로운 언어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주장을 수많은 인터뷰와 소녀들의 심리에 대한 석학들의 연구 성과를 직조해 조목조목 제시한다.


주먹다짐, 협박, 과시 등으로 나타나는 소년들의 괴롭힘 양상과는 달리 소녀들의 공격성은 뒷담화, 남몰래 째려보기, 친구 고립시키기 등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관계적공격성이라고 이름 붙여진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성은 심리적으로 평생 가는 상처가 될 수 있음에도 대중의 관심과 학술적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으며 교육현장에서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


이 책은 괴롭힘, 갈등과 관련된 소녀들의 심리를 깊이 포착하고 드러내고 있다. 그 자신, 관계적 공격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지은이와 많은 소녀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소녀들의 공격성의 원인 및 본질이 드러난다. ‘여자답게’라는 미명하에 소녀들에게 가해지는 문화적 압력이 그것이다.



소녀들의 따돌림에 대한 한 가지 예시는 다음과 같다.

"한 소녀가 다른 소녀를 노려본다. 이어서 그 소녀의 친구를 향해 은근하게 웃는다. 다음 날 주모자는 다른 소녀들에게 몰래 쪽지를 돌려 표적으로 삼은 소녀의 싫은 점에 대해 쓰라고 한다. 그다음 날 따돌림을 당한 소녀는 머리를 푹 숙이고 어깨를 움츠린 채 남학생들 옆으로 가서 가만히 앉는다."

이들의 따돌림은 깔끔하고 조용하며, 가해자도 피해자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소녀들은 뒤에서 흉보기, 따돌리기, 소문내기, 욕하기, 조종하기 등을 통해 표적으로 삼은 대상에게 심리적 고통을 준다. 소년들은 조금 아는 사람이나 잘 모르는 사람을 따돌리지만, 소녀들은 흔히 친구들을 따돌린다. 따라서 소녀들의 따돌림은 알아내기가 어렵고, 피해자가 입는 상처도 훨씬 깊다. 소녀들은 주먹이나 칼 대신 몸짓언어나 관계를 이용하여 싸운다. 우정은 무기가 되고, 친구에게 등을 돌리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몸짓은 없다. 레이철 시먼스는 이러한 소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따돌림의 특징을 ‘대체공격(alternative aggression)’으로 개념화한다. 즉 친구들 간의 비신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특히 ‘대체공격’이라고 부르는 것의 가해자와 희생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소년들과 소녀들의 공격 문화(따돌림)의 차이를 밝히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발짝 더 내딛는다. “소녀들의 공격 문화가 은밀하게 진행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레이철 시먼스가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그가 찾은 답은 ‘문화’와 ‘학습’이다. 경쟁심ㆍ질투ㆍ분노는 소년이나 소녀 구분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소년들은 이런 욕구와 욕망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학습 받는 문화에서 자란다. 따라서 소년들의 공격성은 거침없이 신체적인 폭력이라는 양상으로 드러나며, 그만큼 상처는 쉽게 아문다. 때로 소년들의 공격성은 ‘남자다움’이라는 이유로 권장되기도 한다.


반면 소녀들은 경쟁심ㆍ질투ㆍ분노 같은 욕구와 욕망을 억제하고 억압받는 문화에서 성장한다. 그 문화를 규정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착한 소녀’이다. 여자 축구 선수가 나오고 여자 우주비행사가 나오는 시대에도 여전히 ‘착한 소녀’ 이데올로기는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여자는 착해야 하고, 그래서 쉽게 욕망이나 욕구를 드러내서는 안 되며, 드러내더라도 티 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분출구를 잃은 소녀들의 분노는 가까운 친구들을 은밀하게 공격하는 형태로 왜곡되어 나타나며, 소년들의 몸에 남는 상처보다 마음에 깊고 오래가는 상처를 남긴다.

따라서 레이철 시먼스가 소녀들의 대체공격을 해결하는 대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매우 명쾌하다.

“경쟁심ㆍ질투ㆍ분노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표현하라.
사회와 문화가 강요하는 내 안의 ‘착한 소녀’를 버려라!”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와 교사가 소녀들의 대체공격에 대해 무지하고 소극적인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지은이는 책의 마지막 두 개 장에서 교사와 부모들에게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 문화에 대해 이해를 촉구하는 고언을 아끼지 않는다. 실제 매뉴얼도 제안한다.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을 예상하고 방지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한다.

소녀 시절 따돌림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지은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마지막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소녀들의 감정 전부를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가 되면 그들고 솔직한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는 여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후회되는 건 그 때 말하지 않은 거야.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이전 08화왜 내 친구는 항상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