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은 '화'가 난다. 너 때문에......

아빠들의 '화'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

예전 한 방송에서 우스갯 소리로, 최근 아빠가 된 남성 연예인이 귀가를 늦추기 위해 한 시간 가량 차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간다고 고백한 걸 본 적이 있다. 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는 일만큼 힘든 일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또래의 젊은 아빠들의 고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지만 쉬지도 못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이었다. 또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는데 그럴 때면 화가 치민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화를 낼 수도 없으니 꾹 눌러 참아보지만 그러다가 쌓인 화가 폭발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럴 때면 아이에게 죄책감이 생기고 스스로를 못난 아빠로 규정짓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화는 사춘기 아이들을 둔 아빠의 경우는 어떨까?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점차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는다. 예전에는 순종적인 아이였다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아빠의 의견을 거부하거나 반론을 제기한다. 그럴 때마다 아빠들은 자신의 가정 내에서의 입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부하는 자녀에게 화를 퍼붓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빠들뿐이랴. 현대인들은 누구나 ‘화’를 안고 살아간다. 게다가 기쁨, 슬픔, 즐거움, 두려움 같이 일상적인 감정들 중 하나이기에 어찌보면 평상시에 그다지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타인과의 부딪힘, 욕구에 대한 불만족, 과다한 경쟁, 잦은 스트레스 등 사회가 급변할수록 ‘화’를 내야할 이유도 더욱 늘어나는 듯하다.


bandicam 2019-10-14 04-56-34-485.jpg (사진출처: pixabay.com)


그럼에도 ‘화’에 대한 몇 가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첫째, ‘화’는 내적 훈련에 따라 분출되는 세기에 큰 차이를 보인다. ‘화’의 세기(혹 화력)를 1에서 10의 범주로 규정했을 때, 같은 상황이라도 전혀 화를 내지 않는 사람과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사람의 내면에서 평소에 얼마나 화를 잘 다스리고 보살피는 훈련을 했는지의 차이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의식 깊은 곳에 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런데 그 씨앗의 크기가 다른 감정보다도 더 큰 경우가 있다. 평소에 그것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내 안의 ‘화’의 씨앗이 얼마만한 크기로 자리잡고 있는지 통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화’를 정확히 인지해야한다.

둘째, ‘화’가 났을 때 그 탓을 ‘외부’ 특히 ‘타인’에게 돌리지 말아야 한다. 화를 내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기 쉽다. 예컨대 아빠들의 경우, 사춘기 아들(딸)이 말대꾸를 했기 때문에, 내 말을 안듣기 때문에, 내 앞에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갔기 때문에 화가 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만히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화’는 이미 또아리틀고 자리잡고 있었다. 단지 누군가 호출해주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화의 원인은 외부로부터의 환경이 아닌, 그동안 먼지 속에 묵혀왔던, 내면세계에 있었음을 기억해야 하겠다.

셋째, ‘화’를 일종의 권력과 동일시여기지 말아야 한다. 대개 아빠들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표출하는 방법 중 하나가 ‘화내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왜냐면, 그렇게 할 때 아이들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평소에 아빠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까닭은 아빠가 주로 대화가 아닌 일방적 지시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평등한 대화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부담스러운 명령조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아빠의 말에 차츰 귀를 닫게 된다. 그리고 아빠가 ‘격양된 화난 목소리’를 낼 때 잠시 주의를 기울이는 척할 뿐이다. 평소에 아이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해왔던 아빠들의 유형을 보면 대개 권위적 성향을 지닌 분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진정한 권위는 ‘자신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마음’이다. 어른들도 그렇지 아니한가? 나무라는 듯한 말투와 소통이 부재한 조언은 오히려 거부감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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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학자들이 ‘화’를 다스리기 위한 솔루션을 제안했다. 공통점은 화를 나와 분리된 어떤 것으로 터부시여기지 말고 내 안의 ‘에너지’로 여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화’를 인정하게 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화는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에너지 지대다. 그것은 우리가 돌봐야 할 병든 아기다.
화를 다스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또다른 에너지 지대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하여금 화를 감싸안고 보살피게 하는 것이다. 이 또 하나의 에너지가 곧 자각의 에너지다.”
(팃낫한, <화(anger)>, 명진출판, 2002)


“화는 우리 내부에 거대한 에너지와 활력을 일으킨다. 이때 우리는 이런 기회를 잡아서 그 에너지와 생명력을 지혜로 바꿔야 한다. 그러면 이 지혜로 인해 인내와 자제, 끈기와 관용, 그리고 사랑을 더욱 깊이 실천하게 될 것이다.”(피터 뱅크아트, <굿바이 화>, 폴라북스, 2007)




에너지는 그 방향을 어디로 향할 것이냐에 따라 큰 차이를 만든다. 예를 들어 아빠에게 말대꾸하는 아이의 행동을 ‘화난 에너지’로 바라보면 한없이 부정적이면서 불만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 행동에 대해 즉각 반응하기보다 그 행동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 행동에 반응할 수 있는 다양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평소 소심했던 아이를 향한 이해 에너지, 외부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향한 배려 에너지, 자신만의 소신을 지닌 아이를 향한 인정 에너지 등을 말이다.


‘화’로 인해 더 이상 죄책감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화’를 긍정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멋진 아빠들이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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