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눈물도 나름의 “역사”를 지닌다

우리 시대 남자들의 눈물에 대한 이야기


여러분은 ‘남자의 눈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더 세분화해서 나눠보자면 아버지의 눈물과 남편의 눈물, 아들의 눈물. 아마도 조금씩은 다른 의미도 다가올 것입니다. 그 중 제 가슴을 가장 적셨던 눈물은 단연코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저에게 항상 다정하셨고, 제가 시도하려는 어떤 작은 일에도 진심어린 응원으로 관심을 보여주셨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남자였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서 나이가 드시고 몸이 쇠약해지시면서 뜻하지 않았던 장소와 시간에 제 앞에서 주르르, 눈물을 흘리셨을 때, 그 때의 가슴 먹먹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눈물. 마냥 품안의 아이였을 것만 같던 아들이 참고 참던 눈물을 제 앞에서 쏟던 어느 날. 그 눈물을 본 날 저는 밤새워 잠 못 이루며 더 오랫동안 눈물을 훔쳤더랬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눈물은 남달랐습니다. 나와 혈연으로 묶여있지 않은 오로지 인연으로 묶여 연인이 되고 뒤늦게 가족이 된 남편, 그 중년 남성의 눈물. 그 눈물은 아버지나 아들의 눈물보다 그렇다고 더 무겁지도 더 가볍지도 않았지만 마치 제 삶의 일부분이 촉촉이 젖는 듯한 아린 심정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젊은 시절의 아픔, 슬픔, 기쁨 등을 함께 나눴던 ‘동년배’ 이성이기에 더 그 눈물이 낯설면서도 한편 내 눈물인 듯, 마음이 쓰였다고나 할까요?


이런 남자의 눈물도 시대와 역사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예전 강고한 가부장권 문화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모습을 금기시해야 하는 이미지로 여겼습니다. 남성의 눈물을 보는 것은 마치 아버지의 알몸을 보는 것과 동등하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라고 인식했습니다. 그 까닭은 눈물은 정신분석학적인 의미에서 ‘거세’ 즉 남성성의 좌절을 의미하는 기호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눈물을 곧 욕망이 성취되지 못한 증거로 여겼기에 남성들이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나약함의 증거로 보여졌습니다.



그러던 중 1970년대에 들어서서 ‘남성의 눈물’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당시 박범신, 최인호, 조해일, 조선작 등이 써내려간, 각종 베스트셀러들 그 일련의 소설들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남자들이 집합적으로 출몰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소설 속 남성들의 눈물은 ‘인생의 패배’로 규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신성한 눈물’로 서사화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현실적으로는 좌절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승리했음을 역설하는 센티멘탈한 영웅주의의 모습을 띄기도 합니다. 이처럼 1970년대 소설 속에 드러난 남자의 눈물은 ‘순수와 구원의 증거’이기도 ‘슬픔과 비애에 대한 탐닉’으로 읽혀집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남성의 눈물’에 대한 시각을 바꿔주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1990년대가 들어서면서 남성도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자질이 있음이 세상에 널리 알려집니다. 숱한 남성 신파조(?)의 드라마들의 등장이 이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로부터 남성 멜로드라마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지요. ‘눈물’이라는 통속적 숭고미는 남성문화의 일부분으로 각인되어집니다. 멜로적 상상력 속에서 남성의 눈물은 ‘삶의 고뇌’ 혹은 ‘저항의 표식’의 대명사처럼 그려지게 됩니다.


피터 브룩스라는 학자는 멜로드라마를 ‘도덕적 비학(moral ocullt)’의 장르로 정의합니다. 그는 멜로드라마를 서구의 과학혁명 이후 이루어진 세속화 혹은 합리화로 인해 초월적 가치들이 사라져버리자 정신적 공허를 보상받기 위한 예술적 대응으로 재해석합니다. 이에 등장하는 멜로드라마 장르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정 멜로드라마’입니다. 여기에서는 주로 착한 여자가 겪는 시련 혹은 수난의 플롯을 취합니다. 순결한 여성들은 자기규율, 절제, 주체성 등 전통적으로 부르주아의 윤리였던 가치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는 한편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등장한 쾌락주의, 부, 소비주의 간의 충돌을 조절하고 봉합하는 중간자 역할을 담당합니다. 멜로 드라마 속 이상적인 여성 주인공들은 성적․물질적 욕망으로부터 초연해야 했습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순결한 여성 주인공들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멜로드라마’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주로 남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조리한 사회의 희생자로 등장합니다. 그들이 맞서야 할 대상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도덕, 윤리, 법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눈물은 사회에 대한 저항이나 숭고한 희생으로 묘사됩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멜로의 스토리에는 발전주의 시대에 대한 청년 혹은 시민들의 저항 정신이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남성들이 등장하는 멜로드라마는 가혹하고 부조리한 사회적 힘에 짓눌린 희생자들의 미덕을 상연하는 장르로 큰 인기를 얻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남성의 ‘눈물’은 단순히 슬픔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성의 눈물을 보고 많은 독자들 혹 시청자들은 시련을 겪는 인물에 대한 존경과 연민을 가지게 됩니다. 주인공이 가혹하리만큼 수난을 겪을수록 그 눈물의 의미는 점차 더 고귀해집니다. 남성의 눈물은 ‘도덕적 가치를 옹호하고 전파하는 양식’으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남성의 눈물이 지닌 의미는 시대적, 문화적으로 변형되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인식하는 남성의 눈물은 어떠한 사회, 문화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까요? 얼마 전부터 개봉하는 영화들의 유형을 보자면 지능이 낮은 아버지와 아이의 스토리가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7번방의 선물>이지요 그리고 얼마 전 개봉한 <힘을내요 미스터리>도 비슷한 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성을 결여한 남성을 아버지로 설정해놓고, 부성애의 극치를 보여주는 설정이기도 합니다 아이 더 포괄적으로는 가족을 향한 사랑의 최대치를 구사하며, 헌신 봉사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오롯이 아이,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녹록치 않은 삶과 힘겨운 싸움을 싸우는 아이를 위해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습니다


그럼에도 한편 이러한 현상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회의 부조리를 향한 (중년) 남성의 눈물이 지닌 “힘”이 다소 퇴색되어가는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방증하는 것이 아닌지, 싶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대의”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소소한 개인의 행복”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더 이상은, 무모해보이더라도 꺾이지 않아야 할 신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남성들이 설 자리가 점차 없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할까요.


궁극적으로 눈물은, 무디어진 양심을 일깨우는 감정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와 방향을 제시하며, 잃어버리지 않아야 할 초월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미덕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남성의 눈물과 그 가치가 이후 세대에는 어떤 방식으로 또 변화되어 갈런지요. 남성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물이, 순연한 그 의미에 걸맞게, 세상을 보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바꾸는 데 그 용도를 다하기를 바래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아빠들은 '화'가 난다. 너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