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예림이는 요즘 매일 즐겁지가 않다. 마음껏 웃어본 지가 언제인 지 가물가물하다. 친구들과의 수다도 방탄 오빠들의 노래도 예전처럼 마음에 활력을 주지 못한다. 중3에 들어선 후 부쩍 그런 것 같다. 수행 평가에 각종 시험에 진이 빠지고 학교에 갈 때마다 자신이 소진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예림이가 더욱 열심히 과제에 공부에 매진할수록 성적은 더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번 중간고사에서는 생전 맞아보지 않던 낮은 점수까지도 받게 되었다. 예림이는 처음에는 자신의 노력 부족이라고 자신을 채찍질하다가 이제는 점차 '난 해도 안되는 걸. 내까짓 게 뭘 할 수 있겠어.'란 자포자기에 빠지고 있다. 낮에는 멍하고 밤에는 잠을 설친다. 몸도 피곤하고 수업시간에 집중도 잘 안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문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했고, 성과도 있었는데. 그런데 요즘은 무엇을 해도 더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 이제 밤마다 예림이는 더 이상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라고 느끼며 우울하기만 하다. 무엇이 문제인걸까?
예림이의 사례를 통해 진단해 본 결과, 예림이는 지금 심한 '무기력' 상태에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무기력은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 또는 '현저하게 의욕이 결여되었거나 저하된 경향'이라고 정의한다. 즉, 무기력은 자발성과 의욕이 상실된 상태인 것이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무기력을 야기하는 원인도 늘고 있다.
프랭크 미너스는 무기력증 환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육체적, 정서적으로 탈진한 상태이다. 그들은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느끼고 지인과 사회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려고 하며, 감정적인 허탈감에서 수반되는 정신적인 고통을 느낀다. 이러한 증상이 타인을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대하게 만든다. 누군가 나서서 도와주려고 해도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라며 고집을 부리고, 결국 혼자 고립되고 만다."
미너스는 무기력증 환자는 결국 스스로 타인과의 관계를 차단하면서 정서적인 피로를 느끼고 유능감도 낮아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유능감이란 새롭고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을 뜻한다. 바로 이 유능감이 부족하면 일의 성취도가 떨어지고 점점 더 무기력해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나'에 대해 고정된 생각을 과감히 바꾸는 것이다. 즉, 부정적으로 나를 인식하고 있는 나의 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인지 전환법'이라고 일컫는다.
<문제는 무기력이다>(와이즈베리, 2012)를 저술한 박경숙 교수는 무기력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인지 전환법'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정신적인 문제는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오류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잘못된 믿음과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는 것이 치유와 회복의 핵심이다. 인지 치료, 인지 행동 치료자들은 이런 믿음의 오류를 수정하는 정신 치료법을 개발했다. 마음을 전환해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약물치료보다 효과가 더 오래간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우리는 그 인지 치료 기술을 활용해 인지 왜곡을 바로잡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인지 행동 치료는 인지가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도 인지 패턴과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지 치료가 인지적 왜곡을 바로잡아 더 정확한 평가와 해석을 하게 하는 과정이라면, 행동 치료는 행동을 교정해 사고와 감정에 변화를 주려는 치료법이다. 인지 방식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관점은 이미 2000년 전에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토스, 키케로, 세네카 등이 소개한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편람에서 “사람은 일어나는 사건보다 사건에 대한 생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라고 했다. 한편 동양의 도교나 불교에서도 인간의 사고가 행동을 결정하는 주요한 힘이라고 여겼다. 달라이 라마는 Ethics for the New Millenium에서 “만약 우리의 사고와 감정이 방향을 바꿔 행동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고통을 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통이 시작되는 것 또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인지 치료의 대가인 아론 벡 박사는 우울증 환자들이 어떤 일이 일어날 때 심하게 자기 비난을 하고, 일을 지나치게 왜곡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들이 자기 자신과 주변 세계, 미래를 독특하게 바라보고 비논리적인 결론을 끌어내곤 한다. 이러한 사고상의 오류를 ‘셰마타(shemata)’라고 부른다. 아론 벡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기가 만든 잘못된 사고의 틀 속에서 자신을 평가 절하하고 비난한다며 이것을 ‘자동적 사고’라고 했다.
‘자동적 사고’는 말 그대로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 때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사고의 패턴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길을 가다 한 남성이 자기를 쳐다볼 때 자동적으로 ‘내가 예쁘니까 또 쳐다보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저 남자 왜 쳐다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이상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평가와 무관하게 어릴 때부터 형성된 사고의 틀이 그녀들로 하여금 그렇게 판단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자동적 사고’이다.
그는 또한 세상과 자신에 대한 ‘비합리적 믿음’이 인지, 정서적 왜곡을 유발한다고 했다. 실제로 유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릴 때부터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자라면 그는 스스로 열등하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열등감은 일종의 비합리적인 믿음이다. 이런 자동적 사고와 비합리적 믿음에 의해서 유기체의 정서 반응과 행동 양식이 영향을 받는다는 가정하에 만들어 진 것이 인지 치료 이론인데 이 치료의 목표는 잘못된 인지 방식을 변경해 다시 건강한 정신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무기력한 사람은 예전에 몇 번 시도하다 실패한 경험 때문에 ‘해도 안 될 것 같다’라는 인지 왜곡을 학습하고, 그것을 계기로 자신을 비관하고 비판한다. 게다가 전체를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건과 부분에만 집중해 그것을 전체로 ‘일반화’해버린다. 예를 들어 어쩌다 한번 실수해 시험을 망쳤는데, ‘나는 원래 공부를 잘하지 못해’라고 일반화하는가 하면, 상사에게 한 번 혼난 것을 가지고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실수투성이야, 난 곧 해고될 것 같아.’라고 왜곡한다.
‘인지전환’은 열등감과 무기력을 일으키는 아론 벡의 ‘자동적 사고’와 ‘비합리적 믿음’을 근원적으로 바꾸어 행동과 정서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사고 전환을 유도한다. 즉 우리가 살면서 만들어온 인지 방식을 전면 수정하는 작업인 것이다. 인지 변화라 하지 않고 인지 전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지 변화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지 방식의 변화도 단번에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중립지대를 거쳐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변화’가 아닌 ‘전환’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신념을 효과적으로 전환시키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소극적이던 행동도 적극적으로 바뀐다. 자발적인 의욕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가?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합당한 대안을 찾아보자. 어렵지 않게 자신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문제는 무기력이다>에 제시된 "자존감 누적시키는 방법"이다. 한번 따라해보자.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무기력 때문에 할 수 없다면 다음 과정을 따라 해보라.
1. 문제 정의: 내가 할 일이 무엇이지? __________________ 을 하는 것이구나!
2. 문제 접근: 나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주의 집중: 지금 해야 할 것에만 집중해야지!
4. 답의 선택: 이 문제의 답은 ______________________이야.
5. 대처 진술: 잘못했구나!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야! 초조해지지만 그러나 한 번 해보자.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자기 강화: 좋아 해냈군. 잘했어.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연습하다 보면 자신의 문제를 하나하나 처리할 때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누적되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