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8학군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은 열등감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남학생의 85%, 여학생의 98%가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매일 누군가와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지는 하루하루의 연속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삶 속에서 '열등감'이 1%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열등감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한 가정에 세 명의 형제가 있었다. 그 중 유독 막내 아들이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컸다고 한다. 막내 아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일찌감치 알아채서, 형들에게도 으시대기 일쑤였다.
"어제 꿈을 꿨는데, 내가 높은 관직에 올라서 형들이 내게 인사하는 꿈을 꾸었어."
그런 철없는 막내 아들이 마냥 예쁘게만 보인 아버지는 좋은 옷, 좋은 음식을 오로지 막내에게만 주었다고 한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라났고, 막내에게만 쏟아부었던 사랑 때문에 상처가 많았던 두 형은 부모님이 보지 않는 곳에서 늘 막내를 괴롭혔다. 그러다가 가족 여행을 떠난 어느 날 형들에게 막내를 맡기고 잠시 볼 일을 보러 가신 부모님, 그 틈을 타서 두 형은 막내를 어느 으슥한 곳에 버려두고 가버리고 말았다. 막내와 비교당하며 지냈던 세월이 억울했고, 차라리 막내가 없었으면 내가 더 행복했을 텐데 라며 단 하루도 막내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는 형들이 내린 결단이었다.
막내는 울며 떠돌다가 어느 마음 좋은 아줌머니를 따라 새로운 가정을 만나게 된다. 그 때부터 막내와 형들의 '다른' 성장의 모습이 시작되었다.
눈의 가시처럼 밉기만 하던 막내가 없어지자 처음에 형들은 마냥 행복했다. 막내 찾는 것을 포기한 부모님은 그 사랑을 두 형제들에게 쏟아부어주었고, 형들은 그런 상황을 즐기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자신들의 노력을 얻은 댓가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들 마음 속에는 막내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뽑히지 않는 뿌리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반면, 막내는 새로 들어간 가정에서 굳은 일부터 도맡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했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난 어딘가로 팔려가 죽었을지도 몰라.'
이런 마음으로 집안 청소부터 잡일까지 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집안에 모르는 아이가 와서 불편하고 불쾌해하던 그 집의 다른 아이들과 아주머니의 남편도 차츰 막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세 형제는 우연히 한 회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막내는 어린 나이지만 실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중견 기업의 간부가 되어 있었다. 막내가 면접관으로 나간 자리에서 두 형을 만나게 된 것이다. 두 형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막내에 대한 열등감과 죄책감 때문에 10대와 20대의 인생을 허비하며 살았던 것이다. 부모님이 주신 재산을 믿고 노력 없는 댓가만 바라보며 인생을 낭비만 하였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비로소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재산도 얼마 없었다. 그래서 이력서를 들고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막내가 있는 회사에 면접까지 보러 가게 된 것이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과연 내게 '열등감'을 안겨주는 어떤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가? 나는 위의 일화를 통해 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현실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숱한 갈등 상황, 마음의 상처, 타인과 비교당하며 생긴 열등감 등이 우리 삶을 더욱 힘들게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다.'이다. 오히려 이런 갈등 요소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역으로 우리 삶의 활력과 어떤 일을 해나갈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내면에 100% 자신감만 가지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다만 내면의 갈등이 있음을 인지하는 동시에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본 그 순간으로부터 해서 '나'의 방향성을 앞으로 맞출 것인지 아니면 머물거나 후퇴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옳은 선택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굳이 열등감을 뛰어넘거나 부인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인정하라는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평안함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충전할 수 있다. 그로부터 '노력'이 나오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이 시작된다.
주저 앉고 싶을 때, 뒤로 물러나고 싶을 때 가장 필요한 건 '나'의 약함과 못남을 인정하는 1% 용기가 아닐까 싶다.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