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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테라피스트 R Nov 08. 2019

나는 어디로 가서 내 희망을 읽어야 할까

법정 <인도여행>

문학평론가 김탁환 


인도 여행을 떠나기 전날 나는 가방에 책 두 권을 넣었다. <왕오천축국전>과 <인도기행>. 두 책은 1260여 년의 격차를 두고 천축국을 여행한 기행문이다. <인도기행>은 버스나 기차에서 드문드문 읽었고 <왕오천축국전>은 잠자리에 들기 전 꼼꼼하게 살폈다. 두 책을 좌우에 두니 초행길도 두렵지 않았다.

길은 저마다의 역사를 지녔다. 석가모니가 갔던 길을 혜초가 더듬어 따랐고 그 길을 다시 법정이 훑었으며 이 여름에 또 그 위를 내가 걷는다. 하여 길이란 깨달음을 추구한 사람들의 발바닥이 담긴 흔적이다. 길은 국경과 시간을 초월하여 만들어지고 갈라지고 사라진다. 나는 왜 여기 인도까지 왔을까.

<인도기행>은 1990년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한 일간지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법정은 먼저 인도로 그를 이끈 영혼의 스승들을 지목한다. “나에게 인도는 불타 석가모니와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크리슈나무르티로 채워져 있었다.” <인도기행>은 책으로만 접한 세 스승의 삶을 어루만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뭄바이에서 남인도 첸나이까지 28시간을 달려 크리슈나무르티가 집회를 열었던 집을 답사했고, 델리에서는 간디가 생애의 마지막을 보낸 집을 힘겹게 찾았다. 간디의 밝은 방 앞에서 스님은 고백한다. “그의 방은 수도승의 거처보다 훨씬 간소한 데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나 자신이 지닌 것이 너무 많아 몹시 부끄러웠다.”



그리고 불타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에서부터 열반의 땅 쿠시나 가라까지, 성지를 순례하는 스님의 발걸음은 단정하고 다정하다. 정성껏 찍은 사진들은 석가모니와 연결된 인도의 오늘을 명증하게 담아낸다. 스님의 시선은 석가모니의 삶을 거울 삼아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거듭 돌아보는 방향으로 향한다. 영혼의 스승들을 찾아 왔으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진리를 등불 삼고 의지할 곳으로 삼으라.”하면서 석가모니의 말씀을 힘주어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왜 여기 인도까지 왔을까. 법정의 목소리를 빌리자면, “나그네길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계기이고 자기 탐구의 길이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 영혼의 순례를 쉼없이 잇는 깨달음의 땅이 바로 인도인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법정의 산문을 무척 아끼신다. <영혼의 모음>을 비롯한 책들이 늘 앉은뱅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다. “법정 스님의 책들이 왜 좋은지요?”라고 여쭈었더니 “쉽고 맑구나!”하셨다. 쉽고 맑음이 바로 혜초와 법정이 남긴 기행문의 공통점이다. 인도의 복잡한 사회제도와 힌두의 신들을 살피느라 골머리를 앓는 내게 두 스님은 아름다운 기행문을 통해 이렇게 충고하는 듯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집을 나서면 누구나 이교도이니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들여라.” 합장!    




*구도자의 마음으로 여행의 길에 오른 혜초와 법정 스님의 발걸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채울수록 혼탁해지고, 비울수록 맑아진다. 우리의 생각도 그렇다. 해야하고, 하고싶은 일이 머릿 속을 채울 때 오히려 내 발걸음은 온전치 못하다. 매일을 소중하게 살되, 욕망을 비우면 평안함이 찾아온다. 비로소 ‘참 나’를 만나게 된다. ‘나’는 수많은 겉껍질을 벗겨낸 그 자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비워야만 차고 넘치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오로지 ‘나’로 인해 행복하고 감사한, 오늘 하루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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