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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테라피스트 R Nov 09. 2019

책과 어둠을 동시에 가져다 준 신의 절묘한 아이러니

보르헤스가 권하다

 <아폴로의 눈>,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바다출판사, <마이더스의 노예들>, 잭 런던, 바다출판사/ 이다혜 기자



    

소설가가 쓴 독서 일기 형식의 책을 읽을 때 흥미로운 점이 있다. 자기가 쓰는 소설과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 사이에 분명히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이다. 더 재미있는 점은 대부분 소설가의 독서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작가들(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헤밍웨이 등)의 경우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아마도 작가가 쓰는 방식으로 보고 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르헤스 기획 세계문학전집 ‘바벨의 도서관’은 보르헤스가 좋아했던 작가와 그들의 소설을 소개하는 시리즈다. 소설에 대해 얘기한다기보다는 소설을 소개한다고 볼 수 있다. 전집의 첫 번째 책은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G.K. 체스터턴이 단편집 <아폴로의 눈>이고, 두 번째 책은 <강철 군화>를 쓴 잭 런던의 단편집 <마이더스의 노예들>이다. 보르헤스는 서문을 통해 이 작가들을 좋아하는 이유와 이 작품을 고른 이유를 적어놓았다.



<아폴로의 눈>의 첫 단편 <벼랑 위의 세 기병>은 신기하다. 보르헤스가 좋아하는 소설인지 보르헤스의 소설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체스터턴이 이렇게 보르헤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단편을 썼다니. 심지어 브라운 신부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이탈로 갈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보르헤스가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방식이 그의 이력상 필연적이고 유일하게 가능한 소설작법이었다고 했는데, 재미있게도 본질적으로 평론가였던 체스터턴도 그와 유사한 방식을 통해 단편의 완결성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편 <이상한 발걸음 소리>는 브라운 신부다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미스터리다. 나무는 숲에 숨기고, 시체는 전쟁터에 숨기고, 귀족 놀이를 하는 부호들을 털 때는......


잭 런던의 <마이더스의 노예들>은 무자비한 자연과 잔인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수록작들은 잭 런던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살아생전에 육체와 정신의 생명력을 남김없이 고갈시킨 뒤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육체와 정신 그 무엇도 그를 온전히 만족시키지 못했으며, 그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무의 찬란한 어둠을 찾았다.”는 보르헤스의 코멘트는 각별하게 들린다. 이 책에 흥미를 느낀 독자라면 <아담 이전>, <강철 군화>같은 그의 다른 작품들을 꼭 읽어보길.    



*호르헤 보르헤스(Jorge Borges)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로서 환상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단편들로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을 역임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보르헤스는 30대부터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약시(弱視)로 고통을 받아왔는데, 이 시기에는 이미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는 이 상황을 “80만권의 책과 어둠을 동시에 가져다 준 신의 절묘한 아이러니”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책을 읽고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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