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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테라피스트 R Nov 07. 2019

배신에도 수준이 있다

<신뢰와 배신의 심리학>

소설가 장정일

황석영은 새 ‘청와대 주인’과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기 이전에 후배들과 사전 논의를 거쳤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곤욕을 치르던 그를 공식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후배(?)’는 「오적」을 썼던 김 씨밖에 없다. ‘원 맨 쇼’가 감지되는 부분이다.

데니스와 미쉘레 부부가 함께 쓴 <신뢰와 배신의 심리학>은 기업과 조직 내부의 신뢰와 배신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집필된 일종의 실용서다. 사례 연구로 점철된 이 책은 꽤나 건조하지만, “배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거나 “우리가 배신을 당하든, 배신자가 되든, 배신의 경험은 우리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준다.”와 같은 윤기 나는 구절도 있다.

하지만 황 씨는 그런 배신자도 되지 못한다. 황 씨는 귀국하자 곧바로 인터뷰를 청해 ‘립 서비스가 지나쳤다. 경솔하게 동행했다.’는 식으로 자신의 식언을 집어 삼켰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심을 바쳐야 하고, 거기엔 반드시 순도 높은 자기 희생이 따라야 한다. 그처럼 노력해도 움직이기 어려운 게 사람의 마음이다. 황 씨의 경우, 마음을 움직여야 할 사람은 이 씨였고,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헌신해야 마땅했다.

배신은 활화산 같은 정열과 배포와 희생과 고독을 각오한 사람들만이 한다. 유대인을 배신한 예수님이 그랬고, 예수님과 비교하긴 그렇지만, 민족 반역자 박 씨가 그랬다. 그 배반이 성공적일 때, 우리는 그들의 고뇌가 제공한 단맛을 보게 된다. 그러니 ‘몽골+2코리아’가 민족을 살리는 뜨거운 신념이었다면, 겨울나무처럼 오해를 견뎌야 했을 일이다. 그게 아니었으니 ‘원 맨 쇼


무려 6명의 공저자가 나섰던 <배신-21세기를 사는 지혜>(한겨레 출판, 2008)에서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나와 타인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데서 ‘배신의 감정’이 잉태한다고 말한다. 내 자식이나 인기 연예인, 혹은 명망 있는 지식인이나 정치가는 결코 나와 같을 수 없는데도, 나와 똑같은 언행을 할 거라는 일방적인 동일시가,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그들을 배반자로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 누구든 그저 ‘가만히 좋아해야’지,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으면 비극의 씨앗이 된다

 



다시 <신뢰와 배신의 심리학>이다.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당사자를 비난하고 복수의 칼을 가는 데 집착하지만, 거기에 머물기보다는 당사자를 “배신에 이르도록 자초한 우리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되돌아보고 “각자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생각하는 게 훨씬 성숙하고 생산적이다. 우리가 점찍은 배신자는, 우리가 받아야 할 비난이나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선택된 희생양일 수 있다. 맞다. 배신자라고 불리는 어떤 이들은, 우리의 허물을 호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희생양이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우리들의 턱없는 희구가 저런 괴이쩍은 ‘원 맨 쇼’를 가능하게 했다.

*이 책에서는 이명박을 ‘대통령’이라고 칭하지 않고 ‘청와대 주인’이라고 부른다.

     


(pixabay.com)

*단상: 아직 살면서 가슴 철렁한 배신을 겪은 기억은 없다. 정혜신의 말처럼 ‘배신의 감정’은 나와 타인을 동일시하는 데서 잉태된다고, 아마도 타인을 그만큼 믿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까. 혹은 나조차도 매일 흔들리는 존재라 여겼기에  ‘나’에 대한 믿음 부족으로 그러했을지도. 주변 숱한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스토리를 종종 듣는다. 그 중 “배신에 이르도록 자초한 우리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되돌아보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배신이 어떤 모양새로든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 외부 환경의 영향 하에 있을지언정 내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는 자세는 필요하다. 결국 나의 인생 스토리는 내가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상황에 휘둘리기보다 상황을 주체적으로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그 중심에 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세상의 모든 상황을 나로 인해 파급되는 ‘나비 효과’의 일부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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