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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테라피스트 R Nov 13. 2019

매일 나에게는 기적같은 선물이 찾아옵니다.

   

날씨가 스산해지고 바람 때문에 옷깃이 여며지는 요즘, 이 계절만 되면 문득 ‘반성하는 마음’이 차오릅니다. 한 해 동안 나는 어떤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었나, 생각해 봅니다. 한 해가 시작될 때 계획했던 크고 작은 목표들이 어떤 모양새로 형상화되었나, 되짚어 봅니다. 그런 마음 뒤에는 점차 ‘계획’이란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금의 체념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더욱더 ‘나’의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야 할 시간이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나’를 비워가는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나’를 비우는 것에는 물론 나의 욕망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나의 시간이 포함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은 나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길들임처럼 서로의 ‘시간’ 그 기다림을 공유하는 것이 사랑의 가장 큰 표현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곧 내가 가진 가장 큰 가치이자 생명의 일부입니다. 시간을 나누는 것,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쪼개어 나눠갖는 것입니다. 이렇듯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서부터 함께 그 시간을 나누는 사람들이 더 애틋해졌습니다. 더 소중합니다.     



그러다 잠깐 여유가 생겨 혼자가 될 때면 책읽기를 시작합니다. 책읽기는 내가 사랑하는 나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책에서 연인을 만나고 멘토를 만나고 친구와 가족을 만납니다.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 비워지고 소진되었던 나의 내면이 온전하게 차오름을 느낍니다. 책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그 시선을 내게 향하고, 내게 말을 걸어 줍니다. 나에게서 무언가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도 않고 나를 이용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나를 나무라거나 고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나 자신을 이해해주고 포용해 줍니다. 무엇보다 친절한 말투로 내 인생을 다독여 줍니다. 격려해줍니다. 경험담을 들려주며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나의 끊임없는 질문에 대해서도 눈살 찌푸리지 않고 샹냥하게 들어줍니다. 또 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줍니다. 책읽기는 곧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며 위로해주는 선물이 되었습니다. 내가 내게 주는 가장 귀한 선물 말입니다.   

  


때때로 삶은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낙심도 찾아옵니다. 좌절감, 수치심으로 잠 못 이루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가 밀려들 때도 있습니다. 현재의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 잘 견뎠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희망은 잠깐 스쳐지나지만 절망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며 나의 옷깃을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럴 때, 사랑하는 나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의 시간을 나를 위해 비워두는 것입니다.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온전히 나를 채워넣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문구가 담긴, 나를 미소짓게 만든 사람들이 존재하는, 펑펑 눈물로 아픔을 씻게 하는 애잔한 스토리가 담긴, 나를 꼭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한 친구들이 있는, 책읽기로요.     


조용한 밤도 좋고, 눈 비비고 일어난 새벽도 좋고, 출근길이나 퇴근길도 좋고 시간은 언제든 좋습니다. 내가 나를 반갑게 만나고 싶은 그 때면 됩니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보다 건강하고 힘있고 단단한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고통스럽기 마련이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고통에도 그리고 죽음에도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목적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에게 말해줄 수 없다. 각자가 스스로 찾아내야 하며, 자신의 해답이 제시하는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모든 모욕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할 것이다.

빅터 프랑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고든 울포트 교수의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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