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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이 Jul 16. 2015

#6 성룡과 나의 한 "낫" 인연

랑랑에게 중국이란...

제목에 떡하니 "성룡과 나"가 나오니, 왠지 나와 성룡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인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은, 정말, 대단하고 특별한 , 인연이었는데...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제목 그대로 우린 한 "낫"인연으로 만났다.


시간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간다. 우리 학교에서는 해마다 봉사활동으로 베이링(北陵) 공원에 가서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했다. 선양(심양)의 베이링 공원, 한국어로 아마 북릉이라고 하는 것 같다. 베이링은 청나라의 두번째 황제 황태극의 묘다. 그 만큼 대단한 곳이지만, 일반인인 내게는 누군가의 무덤보다는, 그저 어릴 때의 놀이터로 기억이 되고 있다.  그만큼 무덤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넓고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어릴 적 나의 놀이터 - 베이링 고궁(이미지 출처 : 바이두)
                 베이링 (이미지 출처 : 바이두)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던 어느 화창한 가을날, 하늘이 유난히 높고 파랗게 기억되는 날이었다. 그날 제초를 가기로 했지만, 다른 반보다 훨씬 늦게 출발한 우리 반,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건, 당당하게 땡땡이 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걸로 우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 반 구역에 도착 했을 때, 다른 반들은 이미 작업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뒤였다. 우린 각자 낫 한자루씩 받고 신바람나게 잡초를 제거하기 시작 했다. 물론 착하게 풀만 뽑을 수는 없는 일, 몰래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땡땡이도 좀 치고, 군것질도 좀 하면서, 쉬엄쉬엄 말이다. 친구들과 함께 그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쪽쪽 더럽게 빨고 있을 무렵, 갑자기 멀리서부터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멀티타스크에 약한 나는 그저 아이스크림을 빠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 때 저 멀리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남의 일에 관심 없는 나는 역시나 아이스크림에 집중, 또 집중. 그러다가 누군가의 외침소리에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와!!! 성룡이다!!!"


엥? 누구라고? 성룡???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코믹 액션 아저씨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런데 저 멀리 눈에 띄는 초록색 형광펜 옷차림을 한 아저씨가 보였다. 점점 가까이로 오고 있는 초록 형광펜, 주위 친구들까지 흥분해서 형광펜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깨달은 사실, 초록 형광펜이 바로, 다름아닌...성룡이었다!!! 나도 얼떨결에 친구들과 함께 성룡아저씨에게로 달려갔다. 연예인을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모두 희귀한 보물을 보는 듯 게걸스레 성룡을 쳐다보면서 졸졸  뒤를 쫓았다. 그리고 드디어 이성을 잃은 나,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려는 순간, 번개같이 내 앞을 가로막은 수십명의 우락부락한 무서운 아저씨들이 있었다. 일명 보디가드들이다. 보디가드 아저씨들은 눈 깜박하지 않고 나의 오른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오른손에 들고 있었던 , 미처 처리하지 못한 무기-낫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왼손엔 땀을 뻘뻘 흘리는 불쌍한 아이스크림을,  오른손엔 시퍼렇게 갈은 낫을 들고 있는 어리버리한 소녀, 상상만 해도 가관이지 않은가? 그 날 아이스크림을 먹는게 아니었는데...ㅠㅠ


다행히도, 성룡 아저씨는 친절하게 우리들에게 손을 저으면서 끝까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리고 떠나기 전 우리들에게 했던 한 마디: '얘들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부모님들이 하셨으면 또 땍땍거리면서 대들었을 텐데, 연예인이 해주니 갑자기 공부가 땡기기 시작한건 무슨 심리일까?아무튼 그렇게 성룡을 떠나보내고, 우린 오랫동안 흥분의 도가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집에 가서도, 아니,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성룡을 봤다!"고 자랑질을 해 댔다. 물론 내가 낫을 들고 협박을 했다는 얘기는 쏙 빼고 말이다.


그렇게 스쳐 지난 인연을 뒤로 한채, 멋있는 형광팬은 점점 "늙어가고",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던 그 어리버리했던 소녀는 점점 "철이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다시 성룡 아저씨를 만난다면, 나는 아주 차분하고, 예의바르게, 그리고 숙녀답게 악수를 청하고 싸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성룡 아저씨도 더이상 그 우스꽝스러운(팬분들에게 너무 죄송한 말씀이지만...그 옷은 정말 아닌 것 같다.) 초록 형광팬 옷을 입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요즘 성룡의 자서전 "还没长大就老了"를 읽고 있는 중이다. 한국어로 의역하면 "철이 들기도 전에 이미 늙어버렸다"다. 이 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 한 구절이 있다 :


其实,我是一个普通人,只是敢做一些不普通的事而已。

사실, 나는 감히 평범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화창한 어느 가을 날, 베이링에서 낫을 들고 달려들었던 그 어리버리한 소녀의 눈에 보였던 성룡은, 그날 분명히, 평범한 아저씨였다. 친절하고, 인자하고 착한 옆집 아저씨.  평범 한 듯,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것 같은, 그런 아저씨였다. ^^


                    성룡 아저씨의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어느 평범한 아줌마.

                     2015.07.16

한 시대를 대표했던 배우- 성룡. 멋지게 늙어가는 모습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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