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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이 Jul 22. 2015

#8 친구보다 가깝고 애인보다 먼 썸타기-자전거와 나

랑랑에게 중국이란...

친구보다는 가깝지만 연인보다는 먼 그런 사이, 바로 자전거와 나의 관계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와 자전거의 "악연"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느날 방과후 집에 들어서는데 마당에 낯선 자전거 한대가 보였다. 온 몸이 검정색 옷으로 뒤덮여있고,  덩치가 내 키보다 더 큰 아이였다.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주는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볼품 없는 패션 테러리스트 자전거였지만, 그 땐 왜 그리 멋있어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날 나는 난생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봤다. 물론 운전석이 아닌  뒷좌석에 말이다.

그 날 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집에 늘어난 또 한명의 식솔. 매일 아침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 가는 길이 내겐 더없이 행복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내 얼굴을 어루만져주는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았다. 내리막길을 가면서 빨라지는 자전거의 속도때문에 느껴지는 스릴 넘치는 긴장감 또한 심장을 쫀득쫀득하게 만들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시간동안, 나는 항상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이런저런 엉뚱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곁을 지나가는 세상 모든 걸 보고 느끼면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의 상상력은 바로 그때 조금씩 알을 깨고 나왔던 것 같다. 가끔 아빠는 엄마와 나를 함께 태우고 다니시기도 했다. 앞좌석엔 나를, 뒤엔 엄마를 태우고 셋이 함께 다니다가, 얼음판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그래도 튼튼한 검정 친구는 다친데 없이, 줄곧 끄떡 없이 우릴 지켜줬다.


그런데 어느덧, 아빠의 자전거 뒷좌석에 앉는다것이 쑥스러운 나이가 되도록 훌쩍 커버린 나, 나는 더이상 그렇게 공주처럼 편하게 누군가가 태워다주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주위 친구들이 하나 둘, 자전거를 타는 걸 지켜보면서도 나는 끝까지 운전석에 앉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자전거와의 무리수를 던진 밀당을 끝으로, 우린 긴 이별을 맞이했다.


내가 입학한 중학교는 다행히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굳이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될 거리다. 나는 매일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학교와 집을 오갔다. 그리고 어느덧 내 기억속 가장 깊숙한 곳에 처박혀진 덩치 큰 검정 친구, 과묵한 그 친구보다는 이렇게 내 옆에서 재잘재잘 거리는 살아있는 친구들이 훨씬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 자전거 위에서 보아왔던 주위의 풍경은 더이상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예쁘고 멋있는 풍경이 주위에 널리고 널렸는데 말이다.

그런데 결국, 그렇게 3년동안 내 기억속 안드로메다 별에 감금을 시켜놨던 그 친구를 다시 부득이하게 현실로 끄집어 내야만 했다. 어엿한 고등학생이 된 나, 문제는 학교가 집에서 왕~창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내 눈앞엔 두개의 갈림길이 놓여있었다. 한가지는 버스 타고 학교 가는 길, 또 한가지는 물론 자전거다.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왜냐면, 나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실은...버스 공포증이 있다. 혼자서 버스를 잘 못타는 나, 이를 악물고 몇번 시도를 해 봤지만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누구랑 함께 버스를 타거나 익숙한 길이라면 괜찮은데, 처음 가는 길이라면 혼자 절대 버스를 못 탄다...).


버스를 버리니 이제 내 앞엔 오로지 한가지 길 밖에 안 보였다. 자전거와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난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것!!! 그렇게 우여곡절 시작된 나의 자전거 정복기, 중학교 3학년의 마지막 여름 방학, 실컷 싸돌아다녀야 할 시간에, 나는 이 눈치없는 친구와 씨름을 해야만 했다.


학교 다닐 때 쓰라고 내게 어울리는 예쁜 아이를 선물로 받았다. 어릴 때 아빠가 태워줬던 그 투박했던 덩치 큰 아이가 아니였다. 내 키에 맞는 (주석1)24인치 아담 사이즈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하늘색 자전거,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하고 쿨한 친구였다. 너무나도 맘에 들었지만 처음 만난 친구의 소리없는 기싸움이랄까, 도통 말을 안 듣는 이 친구, 시운전하던 첫날부터 나무를 들이박는 엄청난 사고를 쳤다. 자전거에서 떨어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바람에, 내가 제일 아꼈던 청바지까지 희생했다는 것 아닌가.(청바지가 완전 너덜너덜 찢어졌다는...ㅠㅠ)

그렇게 다시 이어진 나와 자전거의 애매한 관계, 실은 그리 나쁘진 않았다. 산들바람이 부는 따뜻한 봄에는 이 친구와 함께 소풍을 갔다. 찌는 듯이 무더운 여름엔,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말린다고 길가에 조용히 앉아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나를 이 친구가 묵묵히 지켜봐줬다. 단풍진 가을엔 나와 함께 공원의 한 쪽 풀밭에 누워 까마득히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우리를 그려봤다. 그리고 하얀 눈송이를 날리는 겨울엔 나와 함께 얼음판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었다.


우리들의 친구도, 연인도 아닌 관계는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말이다. (주석2)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대학생활을 떠나게 된 나, 자전거 도로도 없고, 산길이 많은 그 곳에서는 자전거 자체를 탈 수 없단다. 그렇게 다시 한번 이별을 맞이하게 된 우리. 그 이별은 지금까지 쭈-욱 이어왔다.


지금도 주위 친구들은 내가 자전거를 탈 줄 안다고 하면, 기절초풍 한다. "네가?! 거짓말!" 그렇다,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자체가 말살된 내가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건 , 내 생애 가장 큰 기적이라고 봐야 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릴 때 아빠가 자전거에 태워주지 않았으면 지금쯤 나랑 그 친구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고등학교가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면 굳이 그 친구와 다시 만날 일도 없었겠지?


친구보다 가까운, 연인보다 멀었던 자전거 그리고 나,

서로 사랑하고 미워했던 13년동안의 시간,

그리고 그땐 몰랐던 사실,

투박했지만 아름다운 이 친구와 함께 고향을 종횡무진했던 그 시절,

자전거를 타고 내가 봤던 풍경들은 내 생에 최고로 멋있고 아름다웠다는 것!


1985 심양 [이미지 출처 : 서적 "어제의 중국"/작가: Yann Layma(프랑스)]

자전거가 Main 교통수단이었던 80-90년대의 중국의 한 때를 그려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모르겠지만, 내게 자전거는 정말 특별한 존재였다. 운동을 위한 것도, 허세를 위한 것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또 그러한 삶을 자연스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소품들을 골라서 하나하나 글로 그려보고 싶었다. (대신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은 글이기 때문에, 모든 중국인을 대표할 수는 없다 점 양해를 바란다.)


주석1 : 24인치 : 중국에선는 바퀴의 둘레로 자전거 사이즈를 나타낸다. 24인치- 둘레가 24인치/ 26인치-바퀴 둘레가 26인치.

주석2 : 중국의 모든 지역에서 모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평지가 아닌, 산이 많은 지역에서는 자전거보다는 오토바이나 스쿠터를 탄다.


자전거를 중국어로 ?!


自行车(쯔싱처)    【zì xíng chē】

单车(딴처)            【dān chē】

脚踏车(쨔오타처) 【jiǎo tà chē】


3가지 표현이 모두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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