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어른
전직을 앞두고 몇몇 동료들이 나에게 조언했다. ‘가서 일 떠맡지 않도록 조심해요.‘ 이 말이 나에게는 ’호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요.’로 들렸다. 일터에서의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좀 불편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그 일을 감수하는 편이다. 겉으로는 대인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당당하게 받아칠 용기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면도 있다. 그렇게 받아들인 후에는, 해야 했을 말들을 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곤 한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으며 동료와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던 어느 날이었다. J선생님은 학기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개별 교사들로부터 다양한 질문을 받고 답하느라 골치가 아프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가벼이 넘길 수도 있는 의견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숙고하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J선생님은 발효되겠네’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J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자연스레 점심시간은 서로를 위로하고 칭찬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어리지만 매우 훌륭한 교사가 될 자질이 충분한 J선생님은 동료 교사들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이런 젊은이를 보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엄마미소가 지어진다.) Y선생님은 타인을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I선생님은 맡은 업무량이 매우 많은데 그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대해 J가 말하기를 ’ 선생님은 진짜 어른 같아요’라고 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순발력이 없는 나는, J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묻지 못했다. 그래서 ‘어른’에 대해 생각해 봤다. 가짜 어른은 정의가 쉽다. 겉은 어른이지만 속은 어른이 아닌 사람. 내가 봐온 가짜 어른들은 평소에는 좋은 어른의 모습으로 지내다가도 갈등의 순간에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전체를 보지 않고, 자신만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만 생각하는 태도가 속좁아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전체를 볼 줄 알고, 자신을 넘어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J선생님이 나를 진짜 어른이라고 한 것은 갈등의 순간에 나를 내세우지 않는 모습을 봐서일까. 이런 모습을 호구라고도 한다. 호구와 어른은 모순적으로 들린다. 착함, 용기 없음, 이타적, 비겁함, 배려심, 당당하지 못함, 이중적, 솔직하지 못함, 이것들이 모두 내 안에 있다.
오래전 읽었던 칼럼이 생각난다. 2017년 경향신문 ‘소년이여, 마음속에 아름다운 것만 가득 찬 사람은 없다 ‘ 에서 칼럼니스트 이로사는 영화 <몬스터콜>을 소개하며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감정을 얘기했다. 그 시기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 칼럼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그 글이 나에게 그토록 위안이 됐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내 안의 모순적인 모습들이, 바꾸고 싶은 모습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생겼다고 작가는 토닥여주었던 것이다.
어른이 어른이라는 말을 들은 게 기분이 좋긴 좋았나 보다 이렇게 글까지 쓴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