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엄마의 공부 못하는 아이 키우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by 라니

지난 학기에도 둘째 아이는 전 과목 E등급을 받았다. 아이의 성적을 가지고 뭐라고 해본 적은 없다. 좋은 성적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부는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남편과 나는 자주 해왔고, 아이는 앞으로도 공부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학업적인 면에서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 학창 시절 반에서는 줄곧 1등이었고, 경기도 외곽의 학교였지만 전교에서도 꽤 잘하는 축에 속했다. 서울의 주요 대학을 다녔고 S대학교에서 석사를 받았다. 초수에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교육전문직에도 합격한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의 공부 유전자는 좋은 편은 아닌가 보다. 자녀의 공부 머리는 모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어느 전문가의 영상을 본 후, 남편이 신이 나서 영상에 대해 말했다.


내가 낳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몸 건강, 마음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음을 인정한다. 고상한 척 하지만, 나는 내 애들을 남보기에 보란 듯이 키우고 싶었다. 얼마 전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어느 장면을 본 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혼자서 버스에 탔고 운전기사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 어린이는 버스에서 내릴 때에도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내렸다. ‘저 아이 부모님은 얼마나 좋으실까. 어린애가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닐 줄도 알고, 정말 예의가 바르네.‘라고 생각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어린이의 부모가 부러웠고 내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가 남보기에 보란 듯해서, 나도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책을 읽으며 육아를 공부했고, 육아서에서 하라는 대로 아이를 키웠다. 두 돌까지 모유수유를 했고 세 돌 전까지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내 품에서 키웠다. 책을 많이 읽어주고 여행을 비롯해서 자연친화적 경험도 많이 시켜주었다. 어릴 때 마음껏 놀려야 한다고 해서 초1, 2 때는 숲에서 실컷 뛰놀 수 있는 방과후학교에 보냈다. 예체능을 제외한 사교육은 초3에 시작했고 아이가 원하는 곳에 보내주었다. 그러나 인풋과 아웃풋은 아직까지 별개로 보인다. 어쩌면 나는 애를 키우는데 소질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둘째 아이는 어릴 때부터 공부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글을 익힐 때 속도가 나지 않아서 초1 여름에서야 겨우 뗐다. 영어 알파벳을 익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초6 때 다녔던 수학학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학습 속도가 차이가 나서 별도 학습을 하며 아이는 내면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이때는 학원 탓을 했었으나 옮긴 두 번째 수학학원, 세 번째 수학학원에서도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고 10개월 동안 수학공부를 놓았다. 이 시기에 아이는 심리적으로 깊은 구렁에 빠져있었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상담치료는 우리가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 시기에 지인들은 반려동물 키우는 것을 많이 권해줬으나,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이런 조언을 귓등으로 들었다. 총량의 법칙이 통했던 것인가, 내 귀에 들어온 반려동물 이야기가 일정량이 되자, 나는 이것이 마지막 카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양이 입양을 결심했다. 고양이 입양에 조건을 하나 걸었는데, 그것은 운동하기였다. 낯가림이 심한 둘째 아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많은 편이지만, 고양이와 함께 하기 위해 헬스장에 기꺼이 등록했다. 성장기였던 아이는 몸에 근육이 붙는 속도가 빨랐고, 운동에 재미를 붙이며 몸짱으로 거듭났다. 활기를 되찾고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말랑말랑해진 아이는 정서적 안정을 찾아갔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후, 구멍 난 기초학력을 채우고자 수학과외를 시켜줬다. 과외의 목적은 ’수학 포기하지 않기‘였고 다행히 중3인 지금도 포기는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교사인 나는 전 과목 E등급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수행평가만 어느 정도 해도 그런 성적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내 아이가 학교에서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리석은 나는 닥치지 않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수시로 지옥에 나를 갖다 놓고 불안해한다. 안다, 내가 하는 걱정이 쓸데없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비슷한 것 깉디. 줄줄 세고 있다. 정서적, 물질적인 면에서 붓는 것들이 줄줄 셀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사랑과 믿음을 부어주고 불안해하는 부모. 남편과 산책하며 나누는 얘기의 대부분은 아이 얘기다. 이러저러한 얘기 끝에 다다르는 말은 ‘그래도 어쩌겠어. 믿어주고 기다려야지.’ 오늘도 우리 부부는 물이 셀 것을 알면서도 물을 부어주기로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 그것은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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