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히 청소파
점심시간, 평소 때와 같이 도시락을 먹으러 휴게실에 앉았다. I 선생님과 처음으로 마주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같은 실에 근무하지만 근거리에서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기란 쉬운 기회가 아니었다. 신이 난 나는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끌어냈다. 도시락의 내용물을 보니, I 선생님은 요리를 좋아하는 분으로 짐작이 되었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청소파, 요리파로 흘렀다.(두 사람의 도시락은 질적으로 차이가 컸다.)
I 선생님은 요리를 매우 좋아하는 분이 맞았다. 반면에 나는 청소파다. 요리파냐 청소하냐 하는 논쟁을 던진 책은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이다. 나에게 요리란, 어지럽히는 행위, 빨리 먹고 치워야 하는 행위이자 과업에 가까웠다. 이런 내가 한때는 비건 요리책을 이것저것 사서 보기도 했다니, 요리파의 면모도 가진 것인가. 나에게 요리책은 요리를 위한 것이 아닌,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도구이자 새로운 장르를 알기 위한 매개체였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명백히 청소파이다.
집에서 쉬는 날이면, 물건을 정리하고 솎아낸다. 안 쓰는 물건, 불필요한 물건,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버리는 것은 조금 힘들고, 많이 즐거운 행동이다. 무더웠던 어제도 딸의 옷장을 정리했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좋아서 하는 행동이라 힘들지 않았다. 일터에서의 책상은 어떠한가. 동교들 사이에서 나는 깨끗한 책상으로 유명하다. 청소(정리) 습관은 집과 일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 든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정리하고, 쓰지 않는 어플들을 삭제하고, 노트북의 프로그램들도 자주 정리한다. 아무리 늦게 귀가한 날에도 밀대로 집안 청소를 하고 싱크대를 정리한다. 뭐랄까 그 행위를 하지 않고 잔다는 것은, 마치 뒤를 닦지 않고 속옷을 입는 느낌이랄까. 피곤해서 눈꺼풀이 무거울지라도 꼭 하는 행위이다. 휴일에도 웬만하면 하루를 청소로 시작한다. 정리정돈이 안 된 곳에서 쉬는 것도 위의 비유와 비슷하다.
‘나’라는 사람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피곤한 스타일인가, 일을 사서 하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안 보고 싶은 부분은 적당히 눈감아가며 대충 살아도 되는 것을, 청소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다니. 가수 ‘환희’가 청소를 매우 좋아해서 청소 관련 콘텐츠로 유튜브를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청소파는 특이한 게 아니라, 하나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4인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에서 청소파는 내가 유일하다. 남편은 요리파도, 청소파도 아니다. 결혼 초기에는 이러한 다름이 나에게 불만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결혼 2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은, 이 넓은 집을 나 홀로 청소해도 억울하지 않다. 청소하는 동안, 청소를 한 후에 내가 느끼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크다는 것을 안다. 내 소개를 ‘고양이랑 같이 살며 채식을 하고 읽고 가끔 뛰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내용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고양이랑 같이 살며 채식을 하고 읽고 듣고 가끔 뛰며 청소를 즐겨하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