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 수난기

흔들리는 앞니를 붙잡고

by 라니

의사가 환자인 나보다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면 잇몸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데 원인이 있을 수 있어요. “ 잇몸에서 피가 나서 한 달 전에 치과에 방문했을 때, 스케일링을 받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피는 덜 났으나, 잇몸이 불편하고 전체적으로 잇몸에서 이가 들뜬 기분이었다. 미련한 나는, 한 달을 불편한 채로 지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치과에 다시 갔다. 그때 의사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의 오른쪽윗앞니가 0.2mm쯤 내려앉아 있었고 흔들렸으며 잇몸은 주변과 비교할 때 거무스름했다. 치과 의자에 누워서 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초록색 헝겊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의사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둔하고 미련할 수가 있지. 매일 수시로 거울을 봤으면서도 내 앞니의 내려앉음과 잇몸의 색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내 나이 고작 만 45세. 어금니 2개를 임플란트 했지만, 세 번째 임플란트를 한다면 그것은 어금니일 줄로 알았다. 45세 라니의 앞니가 흔들리고 있었다. 불현듯 생각이 나서 과거 사진을 들춰보니, 작년 6월에 국제도서전에서 찍었던 사진에서도 앞니가 내려와 있었다. 1년 전에 이미 내려앉은 앞니를 1년간 전혀 모르고 지내온 둔한 라니.


내 신체에서 가장 노화가 빠른 부위는 잇몸이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잇몸이 붓기 일쑤이다. 첫 번째 임플란트는 한국나이 40세에 했다. 잇몸이 붓는 증상이 반복되어 치과에 갔을 때는 이미 어금니가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이 내 어금니를 흔들어보고는 너무 흔들거려서 깜짝 놀랐었다. 컨디션에 따라 어금니 잇몸이 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금니를 빼기로 결심한 것은 어느 모임에 다녀온 후였다. 날라리 기독교인으로 교회에 간헐적으로 다니고 있던 나를 K선생님께서 신우회 모임에 초대하셨다. 탐탁지 않았지만 거절하기에 애매해서 참가했던 신우회 모임에서 나는 매우 피곤했다. 반면에 K선생님께는 매우 즐거우셨으니, 말로만 듣던 에너지 뱀파이어셨다. 나는 뱀파이어에서 에너지를 뜯겨 매우 지친 상태로 귀가했고 그날밤 또다시 잇몸이 부어올랐다. 이때 내가 지독한 내향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았고 이를 뽑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걱정과 달리, 앓던 이를 뽑은 날은 정말 후련했다.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려서 잇몸에 거의 붙어 있던 내 어금니는 약간의 힘을 주자 금방 뽑혔다. 그리고 이후 6개월간 잇몸이 차오르길 기다리고 임플란트를 심는 과정은 무난하고 무탈했다. 임플란트를 심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 ’ 나도 사이보그가 된 거네 ‘ 엄마가 물려주신 자연 그대로의 몸으로 살아오다가, 인공적인 것을 장착했으니 이것도 낮은 수준의 사이보그 아닌가 라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었다. 반대쪽 어금니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기에, 약 2년 후에 그 어금니도 임플란트를 했다.


2개의 임플란트를 했지만, 이번에는 앞니라는 점 때문에 매우 착잡하고 우울했다. 내가 좀 더 내 몸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세심히 관찰했더라면, 조금 불편했을 때 진작에 알아차리고 치과에 갔더라면 미연에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됐다. 과거의 라니를 탔했다. 앞니는 인상을 좌우하는데 큰 부분인데, 거울을 볼 때마다 내려앉은 앞니가 신경 쓰였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커밍아웃하기 전에 조금 긴장이 되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남편은 그 원인을 찾아 진단하려는 경향이 있고 원인은 나에게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픔(슬픔)은 나누라고 했던가, 남편에게 말한 후 걱정이 덜어졌다. 남편은 내 앞니를 나보다 더 걱정해 주고 매일매일 살펴줬다. GPT에게 상담을 하고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해 줬다.


치과에서 염증 치료를 하고 잇몸스케일링을 한 후, 악화 일로에 있던 앞니는 소강상태이다. 치약은 센소다인으로 바꿨고, 저녁 양치를 한 후 가글을 하고 구강유산균을 꼭 챙겨 먹는다. 음식을 먹을 때 천천히 먹고, 앞니로 먹어야 하는 음식은 피하고 있다. (삶은 옥수수를 먹지 않고 있다. ) 하지만 내려앉은 앞니를 위로 올려봤자 올라가진 않는다. 친정엄마가 아픈 건 널리 알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이었다. 얼마 전 동료교사 B를 만나서 이 얘기를 했더니 ‘연예인은 멀쩡한 이도 싹 뽑고 새로 심는데.’라고 하셨다. 나는 즉각 힐링이 되었고 그 자리에서 앞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지금은 흔들리는 앞니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컨디션 조절을 잘해가며, 흔들리는 앞니를 5년 정도는 붙들고 지내고 싶다. 임플란트를 하면 높이가 다른 두 앞니도 더 가지런히겠지. 그럼 라니는 더 예뻐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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