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줄다리기

복잡하고 어렵게 사랑하는 엄마

by 라니

‘나는 여전히 엄마의 지친 얼굴을 싫어한다. 물론 그 지친 얼굴을 보며 단순하고 깔끔한 감사 인사 대신, 엄마의 어떤 면이 싫으면, 나는 그것을 싫어하는 내가 더 견딜 수 없이 싫다. 이 관계는 그냥 좋아할 수만은 없어서 어렵다. 나는 엄마를 복잡하고 어렵게 사랑한다.’

<사랑을 연습한 시간, 신유진>


딸과 함께 대입 박람회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네 삶을 네가 직접 챙기고 주도하도록 노력해야 해.” 나는 일찍부터 독립적이고 주도적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린 나를 두고 “라니는 다 컸다.“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엄마는 생활이 너무 힘들어 자녀의 학업을 챙겨줄 수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애어른이었다.


오랫동안 엄마를 이상적인 존재로 여기며 자라왔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너무도 불쌍한 존재라 여겼고,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 도움이 되는 딸이 되어야지 생각하며 지내왔다. 눈앞을 덮고 있던 덮개가 벗겨진 것은 10년 전이다.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둘째 아이의 작은 일로 심리검사를 받게 되었고, 그 결과는 매우 의외였다. 체크리스트를 따라 자연스럽게 응답했을 뿐인데 검사 결과는 나의 우울 지수가 꽤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의 원인을 찾아 자신을 직시하는 것은 힘든 과정이었다. 눈앞의 덮개를 거둬내자 알몸의 내가, 현실의 엄마가 고스란히 보였다.


운전대를 잡고 차를 운전하는 꿈을 자주 꿔왔다. 그때마다 운전이 잘 되지 않았고 가야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았다. 운전을 싫어해서 그런 꿈을 꾸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꿈 공부를 통해 내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엄마 인생을 운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보다 엄마의 시선을 더 의식하며 살아왔음이 드러났다. 결혼 후, 물리적으로 독립했지만 라니는 항상 엄마를 걱정했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했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했다.


엄마의 본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간 물음표로 남아있던 몇몇 순간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희생적이고 숭고한 사람이 아닌, 보통의 사람이었다. 타고난 기질과 맞지 않는 환경 속에서 살아온 평범한 인간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술주정뱅이 남편을 둔 맏며느리로 살아야 했던 사람, 겁이 많고 통증에 민감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은 누구보다 컸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때로는 자식보다 자신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나와 동생은 상처도 받았다. 철이 덜 든 큰언니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수년간 마음속으로 엄마와 줄다리기를 했다. 35년간 스스로 만들어놓은 이상적인 엄마의 허상에서 벗어나, 현실의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했다. 한 번도 미워한 적 없던, 안타깝고 불쌍하게만 여겼던 엄마를 라니 혼자 실컷 원망했다. 10년간 줄다리기를 했더니,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의 균형이 잡힌 것 같다. 여기저기 많이 아프고 혼자 사는 외로운 할머니가 걱정되고 마음에 걸린다. 신유진 작가의 말처럼, 나는 엄마를 복잡하고 어렵게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같은 환경에서 비슷하게 양육했는데도 너무 다르게 크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환경보다 타고난 기질이 큰 것인가. 아들러 심리학에 따르면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자신을 지금의 삶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다른 누가 아닌 ’ 내‘가 만든 것이다. 마음의 균형을 찾은 라니는, 엄마에게 자주 연락하고 좋은 물건을 보내주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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