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성장기
비건 지향인으로 지내온 지 5년이 넘었다. 여러 책들과 영상들이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나를 비건으로 만들었다. ‘아무튼, 비건’,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 ‘더 게임 체인저스‘, ‘나의 문어 선생님‘ 등이 생각난다.
정세랑작가, 이슬아작가 등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채식을 하는 것을 따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40년 가까이 지켜온 식습관을 단번에 바꾸기란 어려웠다. 동물과 환경을 다룬 여러 책들과 영상들에 수년간 노출되면서 의구심을 키워갔지만 변화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누적된 정보들은 어느 순간 내 뒤통수를 ’탕‘ 치기에 이르렀다. 다큐 영상을 보다가, ‘내가 그동안 속고 살았구나 ‘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고, 우유부터 끊기 시작해서 지금은 꿀도 먹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서 ‘비건‘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질문을 받으면 고기를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이 점은 사실이다. 어릴 적부터 고기의 미끄덩거리는 질감을 매우 거북해했고 비위가 약해서 특히 고기의 비계는 뱉어내기 일쑤였다. 어릴 적 좋아하던 메뉴는 가장자리가 노릇노릇 튀겨진 계란 프라이와 조미김이었다. 해산물도 비린내 때문에 싫어했고 유일하게 먹은 육류는 양념통닭이었다. 어릴 때 살던 연립주택 건너편에 있던 상가 건물 왼편에 자리한 ’영균통닭‘이 기억난다. 배달이 안 되던 때라서, 직접 가서 주문하고 조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양념통닭을 가져오던 장면이 떠오른다.
동물성 제품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면서부터 본격 비건 지향인이 되었다. 비건 초창기에 다양한 비건 제품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다. 이러저러한 채식 쇼핑몰, 비건 인플루언서, 비건 레스토랑, 비건 요리책 등 모르던 세계를 알아갔다. 그러한 시기를 거쳐 지금의 나는 불량 비건인, 나이브한 비건인으로 자리 잡았다. 선택할 수 있는 식단에서는 비건을 지향하지만 타인과 함께하는 식사에서는 상황에 맞춰 육류를 먹기도 한다. 비건 식사를 준비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한식을 좋아하는데, 한식이야말로 훌륭한 비건식이다. 반찬을 살 때 나물 반찬을 많이 사고, 요즘은 열무김치 비빔밥을 자주 먹는다.
비건 지향 가치관은 고양이와 함께 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고양이와 살면서 고양이와 인간과 얼마나 감정적으로 많은 교류를 하는지 매일 확인하고 있다. 인간, 고양이, 개, 돼지, 소, 닭 모두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끼는 동물이다. 식용 동물과 반려 동물은 결코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육류를 제외하고도 먹을 것이 넘쳐난다. 모두가 비건이 되길 바라진 않는다. 취향은 존중해야 하니까. 단지 육식을 줄이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유행어 중에 ‘제철~’이 있다고 한다. 육류에는 제철이 없지만 채식에는 제철이 있다. 나를 아껴주기 위해 다짐한 것들 중 하나가 제철 음식 챙겨 먹기이다. 제철 채소와 제철 과일을 챙겨 먹으면 내 몸에 좋은 일을 하는 기분이 든다. 요즘 나는 오이, 밤호박, 자두, 복숭아를 자주 챙겨 먹고 있다. 엄마가 호박잎을 주셨다. 저녁에는 호박잎 쌈밥을 먹어야지, 된장찌개를 곁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