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고양이
23년 가을에 고양이가 우리에게 왔다. 사춘기 아들을 위한 처방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반려동물을 곁에 둔 경험이 전무했다. 동물보호단체에 기부도 해오고 있건만, 반려동물은 호불호가 아니라 무관심의 영역이었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고양이가 온 후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이 세상을 모른 채 지낼 뻔했다니, 뒤늦게라도 이 세상을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 회색빛이었던 우리 집 공기는 핑크빛으로 바뀌었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처방의 대상이었던 아들은, 지금은 말랑말랑해졌다(물론 가끔은 뾰죡하다). 나와 딸은 고양이 앞에서 저절로 목소리 톤이 2배는 높아진다. 고양이는 우리를 무장해제시킨다.
아침에 나는 고양이와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늦잠을 자고 있는 나에게 와서 나지막하게 야옹야옹하고, 옆에 드러누워 가르랑 거리며 온몸으로 행복을 표현하고, 앞발로 내 얼굴을 터치하고 지긋이 바라보길 10여 분. 달콤하고 황홀했고 고양이와 연애를 하는 기분이었다. 인간과 고양이와의 관계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보다 더 로맨틱할 수 있다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양이는 내게로 와서 벽 모서리에 얼굴을 비비며 온몸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간다. 퇴근해서 집 현관문을 열 때, 고양이는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온몸으로 나를 반긴다. 고양이란 정말 사람을 홀리는 요물이 맞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동물들에게도 눈길이 더 머무른다. 고양이로 인해 털 달린 모든 생명체가 사랑스러워졌다. 비둘기, 까마귀, 심지어 쥐를 볼 때도 고양이가 떠오르고, 그들에게 말을 다정한 말을 건넨다. 이렇듯 고양이에 제대로 홀린 나는 주변인들에게 고양이 예찬을 했고, 그들 중 일부는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 진심으로 말한 것뿐인데, 진심은 정말 잘 전달된다.
어떤 이들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낼 때 그 상실감이 너무 커서 다시 키우기가 두렵다고 한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나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없기에 감히 어떤 감정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기에 지금처럼 고양이를 예찬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남편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퇴직 후에 캣맘, 캣대디 하자고. 비둘기, 쥐에게도 마음이 가는데 길고양이를 보면 더욱 마음이 가는 요즘이다.
영화 ‘슈퍼맨‘을 보고 왔다. 메타 강아지 ’크립토’를 보면서도 고양이 생각이 났다. 동물을 다루는 감독 제임스 건의 연출 방식을 높이 평가한다.고양이와 함께 한 후로 영화나 일상을 볼 때 고양이라는 필터를 끼고 바라보게 된다. 나는 고양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고, 볼 것이다. 우리 집 공기는 영원히 고양이빛일 것이다. 힘들 때나, 슬플 때나, 지칠 때도 고양이가 위로해 줄 것이다. 나에게 힘을 주고 위로가 되는 대상은 고양이다. 아무튼,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