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항상 글을 써왔지만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들을 생각해보면 "가족"이 가장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가족 한 명씩 써서 남겨보려고 한다. 나는 아빠가 매일 보고 싶다. 가족에 대한 희생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시간이 지난다고 옅어지지 않는다.
흔히들 '친구 같은 아빠'라는 표현으로 아버지와의 친밀함을 표현하고는 하지만, 우리 아빠는 나에게 '아빠 같은 친구'였다. 나 또한 아빠에게 '친구 같은 딸'이 아닌, '딸 같은 친구'였다. 단 하나의 친구를 꼽으라면 아빠에겐 내가 있었고, 나에겐 아빠가 있었다. 우리는 친구였다. 시작이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도 없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내가 아주 꼬꼬마였을 때부터 우리는 친구였다. 내가 군대에 있는 지금까지도 우리는 세상 하나뿐인 친구였다.
우리는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영화 이야기, 책 본 이야기, 사람 만난 이야기,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말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어떤 때는 대화가 너무 길어져 새벽 동틀 때까지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서로 너무 피곤해져서 '이제 좀 그만하고 잡시다'라고 해놓고 또 한두 시간을 더 이야기하는 바람에 아예 날밤을 샌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 혼자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곳에서 아빠를 만나는 느낌이다. 우리는 정말 '세상의 모든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인공지능, 레미제라블, 오두막, 동물원, 꽃, 교회, 영화, 독립운동, 도덕경, 배드민턴, 갤럭시탭, 포커, 태정태세문단세, 오보에, 이어령, 달력, 듀얼 모니터, 비행기, 안경, 고래, 보리차, 부채, 사용설명서, 구글 크롬, 소파... 우리는 심지어 전쟁이 나면 당장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했었는데, 군대에서 전쟁을 대비한 훈련을 하면서 나는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와 나는 서점에 가서 책을 함께 보았다. 내가 본 책 중에 아빠가 안 본 책이 없고, 아빠가 본 책 중에 내가 안 본 책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아빠는 책을 볼 때 꼭 밑줄을 긋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도 색색깔의 볼펜과 색연필로. 그래서 아빠가 본 책은 늘 금방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새 책들이 아빠 손을 타기 전에 어떻게든 먼저 책을 선점해 읽고는 했다. 내가 먼저 책을 읽고 아빠에게 넘겨주면 아빠는 그제야 맘 놓고 빨갛게 파랗게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우리는 그 책에 대해 또 밤새도록 이야기했다. 내가 인상 깊었던 구절을 이야기하며 그걸 보았느냐고 물어보면, 아빠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책을 펼쳐 보여주었는데, 정확히 내가 말한 그 구절에 아빠가 밑줄을 친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우리가 또 통했다며 끌어안고 좋아하다가 또 소름 끼쳐했다. 우리 집 책장에는 아빠가 아끼는 "천지", "태백산맥" 등 그 너덜너덜한 책들이 여전히 꽂혀있다.
군대 도서관에서 예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 책을 펼치면 누군가가 아빠처럼 밑줄을 긋고 보는지 형형색색의 지저분한 밑줄이 보이는데, 나는 또 아빠를 만난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수험공부를 하면서 가족한테는 최대한 피해를 안주려고 노력했다. 그 이유는 내 공부인데 가족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도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님께 죄송하고 나의 열등감으로 몇 시간동안 운적이 있다. 그 때 엄마가 그랬다. "미안해.. 엄마랑 아빠도 부모님이 처음이어서 그래..' 이 말은 군대에 있는 지금까지도 21년 평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가장 가슴에 남아있는 말이다..
사실 부모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부모가 되기 위해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 ‘부모’라는 지위가 맡겨진 것뿐이다. 물론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원해서 자식을 낳았지만 그럼에도 '부모'라는 역할은 어느순간 주어진 것이다. 즉 모든 부모는 초보자들이다. 처음 부모가 된 것이고, 처음 자녀라는 존재와 관계를 맺어가는 초보자들이다. 그러니 실수가 당연하고, 어설픈 것이 당연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당연하고. 부족한 것이 아니라 서툰 것이라는 것을 느낀 지금 항상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안함과 존경심과 눈물이 먼저 난다....
나도 잘 몰랐던 게 있었다. 아빠도 내 나이에 하고 싶은 거 모두 다 하지 못했을 꺼라는 거 지금의 우리들처럼... 자식을 키우기 위해,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하나라도 더 해주기 위해..아마도 본인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 희생했을 것이다...
쉰여섯 57...
스물셋 23...
나와 아빠의 나이 차이는 서른네 살이다. 어릴 적엔 항상 웃음만 느껴졌던 아빠가 이제는 조금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땐 아빠도 나에게 어떤 방법으로 아들들에게 표현해야 할지 지금만큼은 몰랐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어느 날, 아빠가 내 옆에 없는 군생활을 하면서 나는 느낄 수 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아들들과 엄마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지를…
나는 우리 아빠를 보면서 느낀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해서 아빠가 된다면 친구 같은 아빠가 아니라 그렇게 매력 있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나는 내가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친구가 될 때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떠올려봤다. 친구가 될 때, 친해지고 싶을 때 저는 저를 먼저 드러냈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기쁜지,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서운한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다. 아빠이기 때문에, 어른이므로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나무여야 한다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척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쉬이 지겨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공유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항상 나의 롤 모델이 되어주는 아빠..
아버지! 나는 현재의 스물 하나를 군대에서 보내고 제대하고 아빠가 해준 말처럼 열심히 나의 꿈을 쫒으며 하고싶은거를 하면서 살고 있어.
나는 성인이 되고 지금까지 아빠만큼만 잘하자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오고 있어요. 지금 내 나이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말이야. 얼마나 치열한 인생을 살아오셨을지 가늠이 안된다...하하..
일년씩 지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아빠의 가장의 무게의 다는 아니겠지만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장남으로써 부족하겠지만 노력하고 있어.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이 편지를 적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내 자신을 위해서야... 지금 내 생각을 기록하고 싶어서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봐줄지도 모르는 내 자식들을 위해서 이기도 하고. 솔직히 내가 인생을 잘살아가고 있는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군대이던 사회이던지 우리 집 가훈이었던 '웃으면서 살자' 지키려고 노력 중이야.
제 유일한 영웅인 아버지. 언제나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 철부지 아들 승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