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먼저 내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언제부턴가, 내 감정에 나보다 남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요즘 많이 예민해졌네.”
“왜 이렇게 눈치를 보지?”
“그 정도 일로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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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별 생각없는 말 한마디에
내 기분은 마치
허락받아야 할 무엇처럼 느껴졌고,
내 감정은
자꾸만 작아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나에게도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너 왜 또 이래.’
‘이 정도는 넘겨야지.’
‘또 예민하게 굴지 말자.’
.
.
.
결국
가장 날카롭게 나를 찌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안에서 나를 몰라줬던
내 시선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나를
매일 이렇게 몰아붙이는데,
과연 누가 날
다정히 대해줄 수 있을까.”
그 작은 생각이 씨앗이 되어
조금씩 바꿔보기로 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많이 고단했구나.”
“그 마음, 당연하지.”
“지금 이렇게 느끼는 것도 괜찮아.”
처음엔 어색했다.
괜찮지 않은 나를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왠지 거짓말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들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닿기 시작했다.
내가 나에게 다정해지자,
세상의 말들이 조금 덜
날카롭게 느껴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내 편이
되어주고 있다는 감각이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되었다.
나는 이제,
내 감정을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이 되려한다.
억누르지도,
휘둘리지도 않으며
그저 “응, 그럴 수 있지” 하고
가만히 머물러주는 사람이.
해서, 그 관계 속의 나는
점점 안정되고 있었다.
내 기분을 살피고,
내 마음을 지켜보는
내가 되어보기로 했으니까.
누구의 말보다,
누구의 위로보다
내가 나를 먼저
알아봐줄 수 있다는 사실이
요즘 내 삶을
조금 더 살만하게 해준다.
감정은 여전히 오고 간다.
내일도 울컥할 수 있고,
다시 무기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감정과
싸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같은 편이 되면,
그 어떤 감정도
내 삶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는 걸.
이제 나는,
감정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그저, 나로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