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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지친 마음, 글에서 다시 숨 쉬다.

브런치 10주년, 나는 왜 여전히 글을 쓰는가.

by 라온



어릴 때부터 지독히도 온갖 병마와 싸워야 했던 나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글'이었다.







이 세상에는 꼭 있어야겠다는 마음과, 굳이 있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동시에 공존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겐 ‘가족’이 그랬고, ‘친구’가 그러했다.


지금 이야기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어린 나'의 이야기다.


사실 몸이 아프면 좋은 점도 있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꽤나 걸러진다는 거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
관심이 없거나 귀찮아하는 사람
그걸 이용해서 본인 실속을 채우려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할 것 같은가?


사실 1번보다는 2,3번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게 두려워서 땅만 보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내가 딱히 가지고 있던 병명이 없었기 때문에(이 희귀병을 진단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관심받으려 아픈 척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았었다.


물론, 후에 내가 스스로 병명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족도 믿지 않는 나를 교사는 당연히 믿지 않았고, 교사들도 외면하는 나를 또래 친구들이 곱게 볼 리도 없었다. 크게 상관없다. 혼자 있는 게 더 익숙했고, 마음도 훨씬 편했으니까.


...


아니. 그건 오만이고, 위선이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건. 아픈 척은 못해도 괜찮은 척은 수준급이던 내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한 거짓말이었다.


나에게 있어 학창 시절 기억 대부분은 좋게 남아있지 않았다. 좋았던 기억도 물론 조각조각 있겠지만, 항상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을 덮어버리는 것 같다. 최악의 일은 항상 체육수업과, 소풍, 수련회, 수학여행 따위에서 일어난다. 학생이라면 제일 좋아해야 마땅하지만, 나는 그랬다.


왜 꼭 산에 올라가는 건지. '그날'도 학교 뒷산을 꾸역꾸역 올라가면서 심장을 쓸어내려야 했다.


'다행이다. 오늘은 별 일 안 생기려나 보다.'


간혹. 정말 간혹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었다. 오르기 전부터 또 구급차 불러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그래서 못마땅한 시선들이 나에게 쏟아질까 봐 잔뜩 긴장했었는데, 이런 다행히 또 없었다.


“선생님! 얘 또 아픈 거 같아요!”


짐작했다. 그쯤이면 누군가 나를 핑계 삼아 하산하지 않을까, 하고. 어찌 이리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지, 다가와 팔짱을 낀 그 친구는 속삭인다.


“아프다고 하고, 우리 같이 내려가자.”


아마도 그 친구는 본인이 등산하기 싫었던 듯싶다. 딱히 거절할 말도 생각이 안 나고, 거절한 뒤의 후폭풍(?)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더랬다.


내려가는 길 내내 다른 의미로 발이 무거웠다. 본의 아니게 아프다고 거짓말하는 날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서, 그 상황들이 너무 불편하고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는 버릇처럼, 먼저 다가오는 사람. 혹은 갑자기 친해져 보려는 사람에게는 이상한 경계심부터 생긴다. 아마도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 여러 겹의 벽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사람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을 한 적도 있지만, 내 마음이 생각처럼 잘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그런 식으로 찾은 것일지도 모르니까.



언제부터인가, 눈치채 보면 나는 항상 글을 쓰고 있었다.


말로는 전해지지 못했던 것들, 억울한 변명처럼 들렸던 것들이, 글 속에서는 비로소 왜곡 없이 드러났으니까. 누군가의 팔짱에 휘둘리지 않고,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도 없이, 오직 나의 문장으로만 나를 설명할 수 있으니.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분전환'이었다.


그 습관은 불혹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어엿하게 살아남았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우연한 계기로 브런치에서 작가 데뷔를 하게 되었는데, 잊혔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기 시작했다.


'나도 참... 그 와중에도 꿈 많은 아이였는데...'


싶은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또 한 번 꿈을 꾸고 싶어졌다.


브런치가 열 살이 될 동안, 나도 여전히 완벽히 괜찮지는 않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만큼은 ‘괜찮은 척’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 있을 수 있어서 꽤 즐겁다.


작가의 꿈은 거창한 명예가 아니다.


그저 내가 살아낸 흔적을 기록하고,
언젠가 이 글이 누군가의 외로운 오늘을 덜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나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글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자,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나는, 글 위에서 다시 꿈꾼다. 작가로서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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