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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녀는 귀농을 꿈꾼다

 쾅! 쾅! 쾅! 문을 두드린다. “자니?” 시외 숙모의 목소리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도 안 됐다. 무슨 일이지? 부스스 갑자기 일어나 어리둥절하다. 부역을 나오란다. 새마을 운동 시대도 아닌데 부역? 오늘 마을 풀 깎는 날이라고 시외 숙모는 남편을 데리러 왔다. 본가로 온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밖을 보니 동네 남자들은 예초기로 풀을 깎고 있었다. 여자들은 꽃밭에 풀을 뽑는 듯했다. 한 시간 좀 넘으니 끝이 났다.  

   

큰애 4살 때 시댁으로 들어왔다. 아버님이 입원해서 밭작물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남편은 회사를 가고 나와 큰애만 남았다. 도시에서만 살다가 농촌으로 내려오니 낯설다. 밖을 보니 하늘은 파랗고 들과 산은 초록이다. 논에 심어진 벼가 잔디 같다. 고요하고 한적한 동네가 예뻤다. 가끔 다니러 올 때는 잘 몰랐다. 걷고 싶어 진다. 아이를 데리고 아랫동네를 걷는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다.     


며칠 후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애 데리고 산책 갔었니?” “네” 어머님은 날더러 산책 가지 말란다. 동네 사람들 일하는데 ‘00네 며느리는 애 데리고 마실 다닌다’라고 흉을 본단다. 하! 기가 찬다. 분명 산책할 땐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 틈에 우리를 본 건지. 심지어 우리 동네도 아니고 아랫동네였다. 시어머님은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분이다. 길가에 있는 집이라고 밭에 잡초가 많이 있으면 사람들이 오가며 게으르다 욕한다고 수시로 풀을 뽑는다. 사방이 초록이고 확 트인 자연인데 갑갑함이 느껴졌다. 시댁이라는 감옥에 갇혔구나. 앞집에는 큰집, 뒷집은 시외가 집이다. 면에 나가도 내가 어느 집 며느린지 다 안다. 나는 누군지 모르는데 나를 안다는 건 좀 무섭다.     


갇혀있는 느낌이 들어도 적응을 하니 살만했다. 도시에서는 늘 시간에 쫓겼다. 출근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고 간다. 화장실 갈 때만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새가 없다. 야근하지 않아야 정상적으로 아이를 데려올 수 있다. 어떻게든 근무시간 안에 업무를 마쳐야 한다. 퇴근하고도 바쁘다. 저녁을 주고 아이를 챙기고 간단하게라도 청소와 요리를 한다. 빨래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그래도 숨 쉴 틈이 있다. 이렇게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았다.    

 

농촌으로 오니 자연이 주는 정서적 안정이 있었다. 시집살이라 마음이 아주 편한 것은 아니지만 혼자서 사색을 할 때면 무척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 고추를 따며 보는 풍경이. 안개가 걷히고 나타나는 파란 하늘과 쨍한 햇살이 아름다웠다. 새벽녘 새 지저귀는 소리에 일어난다. 해 질 녘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가 정겹다. 굳이 산책하지 않아도 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어느 봄날, 내가 집 밖의 풍경을 보며 “와 예쁘다!” 감탄을 하니 남편이 "넌 아직도 저게 예쁘냐! 난 하나도 안 예쁘다" 란다. 남편은 도시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내내 살아서 자기는 이제 지겹단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농촌이 좋았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을 핑계 삼아 7년의 농촌 생활을 접고 분가했다. 

    

귀농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퇴직하면 농촌 가서 살 거라고 꿈을 꾸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농촌이 도시보다 한가한 줄 안다. 그러나 쉴 틈 없이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한다. 봄에는 모종을 키우느라 바쁘고 여름철 한낮에는 뜨거우니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한다. 농작물을 심고, 밭을 매고, 돌보고, 수확하고를 반복한다. 겨울 농한기 시절만 빼고는 바쁘다. 귀농은 결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오래 고민하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막내까지 대학을 보내고 나면 난 농촌으로 가고 싶다. 그땐 눈치 보고 갇혀있지 않고 나만의 전원생활을 할 것이다. 작은 텃밭을 일구고 여름이면 밭에서 호박, 오이, 고추, 가지 등을 따서 반찬을 하고 정원에는 온갖 종류의 꽃을 키우고 싶다. 동네 주민들의 일손도 돕고 틈틈이 독서도 하고 책을 쓰고 싶다. 여건이 된다면 식물 카페를 해도 좋겠다. 나만의 전원생활을 만드는 게 나의 인생 최종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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