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배우기로 결정하기 전 최근까지 다닌 건축회사에 화단과 텃밭이 있었다. 모종을 키워 꽃을 심어서 기르고 집에서 키우던 식물을 회사로 가지고 가서 돌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1층 아파트 베란다보다는 해도 잘 들고 환기가 잘 되니 식물에게는 더 좋을 듯해서였다.
여름철의 노지 화단은 매일 물을 줘야 한다. 출근 후 30분 퇴근 후 30분 가끔 일을 하다 머리가 복잡하면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았다. 설계일이 잘 안 풀릴 때나 진상고객과 상담을 한 후 화단으로 가 풀을 뽑다 보면 머리가 맑아졌다.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사장님의 눈에 한두 번 띄다 보니 땡땡이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눈치가 보였다.
정식으로 꽃집 직원이 되어 출근을 했다. 쏴아아~ 식물에 물을 준다. 식물에 물을 주는 일이 이렇게 기쁠 수 있는 것일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했다. 대도시의 꽃집은 아니지만 내가 일을 시작한 꽃집은 지역의 다른 꽃집에 비해 규모가 컸다. 꽃 냉장고도 크고 여러 종류의 다양한 식물도 많았다. 내가 오기 전에는 하루 오전 오후로 나뉘어 두 명의 직원이 일을 했다. 두 명의 직원이라고 해도 두 명이 한 사람 몫을 하니 꽃집은 늘 바빴다. 바쁘다 보니 물을 잘 못줘서 식물을 죽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에게 제일 처음 주어진 업무는 식물관리였다.
농장에서 구입해 온 지 얼마 안 된 화분식물들의 상태는 건강했지만 꽃집에 온 지 오래된 식물들은 상태가 별로 좋지 못했다. 개업할 때부터 있던 대형식물도 상태가 별로였다. 그러나 내가 온 후 한 달 두 달 지나고 봄이 오니 새순이 돋고 예뻐졌다. 물과 비료를 잘 주며 관리를 하다 보니 잎에서 윤기가 났다. 개업과 인사이동 선물로 화분이 많이 나가는데 새로 온 식물이 아닌 그동안 꽃집에서 있었던 식물들이 고객에게 선택되어 팔려가는 걸 보면 뿌듯했다.
꽃집의 주 업무는 꽃을 다듬는 일이다. 컨디셔닝이라고 한다. 꽃시장에서 경매는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있다. 그래서 새로운 꽃이 일주일에 세 번 온다. 컨디셔닝이란? 꽃과 필요한 잎 몇 장만 두고 쓸데없는 잎을 떼내는 것이다. 장미의 경우 가시도 많아 다칠 수 있으니 미리 필요 없는 잎과 가시를 정리해서 물통에 꽂아 꽃이 물을 잘 먹어 최상의 컨디션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학원 다닐 때보다 더 다양하고 예쁜 꽃들이 왔다. 꽃이 들어오는 날에는 오늘은 어떤 예쁜 아이들이 올까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꼭 선물상자를 뜯는 기분이었다.
한창 바쁜 시즌에는 꽃다발을 만들 때 분업화가 된다. 무턱대고 꽃을 가져와 꽃다발을 만드는 것이 아닌 어울리는 꽃과 색상의 조합에 가격도 맞아야 한다. 나에게 꽃냉장고에서 꽃을 골라와 보라고 했다. 학원에서는 원장님이 사다 주는 꽃으로만 했었다. 직접 골라보라 하니 좀 당황스러웠지만 내 눈에 예뻐 보이는 색과 꽃으로 뽑아 사장님에게 주었다. 사장님이 꽃다발을 잡고 점장님이 포장을 했다. 와우~ 너무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꽃다발이 되었다. 그렇게 꽃의 조합을 맞추는 감각을 키워갔다.
꽃집의 일이 좀 익숙해지자 혼자 가계를 지키며 장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있을 때를 대비해서 꽃다발 만드는 법을 배웠다. 서툴지만 내가 만들어서 건넨 꽃다발을 보고 예쁘다고 좋아하는 손님을 보면 너무 뿌듯했다. 그 외에 일주일에 한 번 꽃 냉장고 청소, 비누 꽃이나 프리져브드 상품 만들기, 화분 분갈이나 식물 심기를 했다.
마음의 즐거움과는 다르게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컨디셔닝을 하면서 가위질을 수백번하다 보니 어깨와 손가락 관절이 아팠다. 하루종일 서서 종종거리며 화분을 들었다 놨다 하니 근육통이 가실 날이 없었다. 꽃집일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최고강도의 막일였다. 사무실에서 앉아서만 일을 해서 그런 것이니 적응이 되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쉬는 날이면 물리치료로 뭉친 근육을 풀었다. 점점 요령이 생기니 차츰 나아지기는 했지만 몸이 피곤하니 좋았던 맘도 처음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