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보다 중요했던 인생의 손익분기점

로또도 금수저도 아니지만, 내 남은 시간의 가치를 월급과 맞바꾸기로 했다

by 라온

“로또 됐어?”, “코인 대박 났어?”, “아님 원래 금수저야?” 퇴사를 통보하자 주변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저 셋 중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담백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사람들의 눈빛에 스치는 미묘한 감정들은 참 흥미로웠다.

그것은 나를 향한 얄팍한 질투나 의심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나를 거울삼아 자신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에 가까웠을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사직서 한 장쯤은 품고 살지 않나. 단지 각자의 무거운 책임감과 현실적인 여건들 때문에 차마 던지지 못하고 버티는 것뿐이다.

먼저 훌쩍 짐을 싸는 내 뒷모습에서, 그들은 애써 묻어두었던 자신들의 진짜 속마음을 겹쳐 보았던 것은 아닐까.


퇴사를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설비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하는 데 더 이끌리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천상 엔지니어는 아니었던 셈이다.


솔직히 말해 당장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다. 아내가 계속 일을 하고 있고, 나 또한 입사 초부터 굴려온 주식 투자로 조금씩이나마 자산을 불려 온 것은 맞다.

하지만 이는 쌀밥을 큰 걱정 없이 먹을 정도지, 매주 오마카세를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수준의 거창한 '경제적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내가 마음속으로 세워뒀던 퇴사 기준, 즉 내 ‘돈 그릇’은 아직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인내심 그릇’이 먼저 바닥을 드러내 버렸다.


나는 계산기를 다시 두드렸다. 언제 닿을지 모를 완벽한 목표 자산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대신, 자산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오늘의 자유’를 앞당겨 사기로 했다.

통장 잔고가 넘쳐나서가 아니라, 10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은 지금, 내 남은 시간의 가치가 매달 꽂히는 월급보다 더 귀해졌다고 판단한 순간이었다.


이 선택이 옳은 판단일지 모르겠다. 두렵기도 하다.

당장 몇 년 뒤에 뼈저리게 후회하며 다시 이력서를 고쳐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내가 산 이 시간의 가치를 증명하려면 하루라도 더 젊을 때 야생으로 나와 부딪혀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이 무모해 보이는 선택을 최선으로 만드는 것은, 이제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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