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직장을 왜 그만둬?

엔지니어라는 옷이 태생적으로 맞지 않았음을 인정하기까지

by 라온

퇴사를 고민하며 지인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았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NO”였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왜?" 마흔을 앞둔 나이에 재취업이 쉽겠냐는 현실적인 걱정부터, 가늘고 길게 버티면 되는 곳을 왜 굳이 발로 차느냐는 타박까지.


듣고 보면 다 맞는 말이다. 남들 보기엔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큰 사고 칠일 없는, 그저 평범하고 안정적인 직장이었으니까. 당장 마땅한 대안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내게는 그곳이 평생 입어야 할 '직업(業)'의 옷으로는 도무지 맞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대단한 소명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점수에 맞춰 전공을 택했고, 남들 다 하듯 취업 준비를 해서 들어온 곳이었다. 조직 생활과 주어진 업무는 어찌어찌해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엔지니어라는 역할은 태생부터 내 몸에 겉돌았다.


처음엔 누구나 겪는 직장인의 권태려니 했다.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는 두려움과, 매달 꽂히는 월급이 주는 마약 같은 안정감이 10년 동안 내 발목을 잡았다.

나는 속으로 이 회사를 '안락한 감옥'이라 불렀다. 당장 뛰쳐나갈 용기도, 더 나은 조건을 찾을 자신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그 안에 스스로 주저앉혔으니까.


육아휴직을 하며 시간을 벌어보기도 했다. 푹 쉬고 돌아오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복직 후 마주한 현실은 여전했다. 선후배들은 다들 잘만 적응하는데 왜 나만 유난일까? 일이 적성에 딱 맞아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다들 이렇게 버티며 사는 건데 유독 나만 왜 이러지?


스스로를 자책하며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 했다. 하루하루 주어진 업무는 쳐냈지만, 회사에서 나의 내일은 조금도 기대되지 않았다. 자존감은 서서히 갉아먹혔고, 나는 나 자신에게 점점 더 가혹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결국 돌고 돌아 답은 '업(業)'의 문제였다.

답답한 마음에 진로 상담과 심리 검사까지 받아봤다. 결과는 우려하던 대로였다.

현업인 설비 관리와 연관된 점수는 최하점인 반면, 사람을 대하고 교육하는 점수는 최고점이 나왔다. 물론, 진로 고민 때문에 방문했으니 어느 정도 후행적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 극단적인 점수 차이는 내가 10년간 겪은 이질감을 너무나 정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 나의 꿈은 교사였다. 특정 과목에 대한 거창한 뜻보다는, 그냥 교단에 서서 학생들과 마주하는 그 장면이 주는 설렘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막연히 끌렸던 어린 날의 꿈이, 어쩌면 직장 타이틀이나 월급을 다 떼고 본 '진짜 나'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야 그 진짜 나를 마주하기 위해,

10년 동안 나를 가둬두었던 그 안락한 감옥에서 내 발로 걸어 나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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