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설비를 멈추고, 사람의 내면을 깨우는 '부적응자'가 되기로 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퇴사의 '진짜 이유'를 100% 털어놓지 않았다.
구구절절 나의 새로운 꿈을 펼쳐 보이기보다, 가장 방어력이 높은 현실적인 멘트들만 골라 내세웠다. 의구심을 납득시킬 만한 대답이 나올 때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질 추가 질문과 피곤함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퇴사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매일 마주해야 하는 '직업의 본질' 그 자체에 있었다.
감정도, 변수도 없이 정해진 매뉴얼과 수치대로만 돌아가야 하는 설비와 씨름하는 업무. 그것은 내 타고난 기질과 완벽한 대척점에 있었다.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본 이들이 "너와 그 일은 정말 안 어울리는 옷"이라고 입을 모았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정해진 수치와 답만 요구하는 차가운 설비 앞에서 내 기질은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대신 내게는 다른 쪽으로 뚜렷한 흥미가 하나 있었다. 바로 본질적으로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
내가 주변 사람들과 두루두루 엄청나게 잘 지내는 붙임성 좋은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한 인간의 내면과 행동 양식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깊이 파고드는 일 자체가 재밌을 뿐이다. 사람을 향해 있는 나의 이런 기질을 억누른 채, 매일 감정 없는 기계의 톱니바퀴만 들여다보며 버티는 건 숨 막히는 고역이었다.
그럼에도 이 꽉 끼는 옷을 10년이나 꾹꾹 눌러 입고 버텼던 건, 순전히 '다음 방향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년간 일기를 쓰며 나를 관찰하고, 남몰래 여러 도전을 해보며
'나는 도대체 무엇을 좋아하나?'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치열하게 묻고 또 물었다.
그 길고 긴 방황의 터널 끝에서 내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든 단어는, 차가운 기계가 아닌 사람을 향하는 일, 바로 '코칭(Coaching)'이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상담(Counseling)이고, 전문가가 정답을 쥐어주는 것이 컨설팅(Consulting)이라면, 코칭은 내담자 스스로 내면의 답을 찾아 미래로 나아가게끔 옆에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는 일이다.
설비의 고장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깨우고 성장을 돕는 이 일이 내게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방향이 정해졌으니, 마침 타이밍 좋게 결정된 아내의 해외 발령으로 중국에 머무는 동안 본격적으로 코칭 자격증과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지식을 쌓을 참이었다.
물론, 이 모든 '가슴 뛰는 코칭' 운운하는 소리도 내 통장 잔고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새빨간 거짓말이자 무책임한 배부른 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당장 커가는 아이와 가족을 먹여 살릴 경제적 방어막이 없었다면, 나는 뼛속까지 안 맞는 그 빌어먹을 기계 앞에 다시 엎드려 다음 달 월급을 기다려야만 했을 테니까.
아내의 월급과 10년간 모아둔 돈, 그리고 재테크까지. 철저한 자본주의의 셈법이 끝났기에 비로소 나의 기질과 꿈을 논할 자그마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가슴 뛰는 계획과 현실적인 계산들을 남겨진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나의 노파심.
하루하루 일상을 치열하게 버텨내는 동료들에게 내가 혹여나 줄지도 모를 박탈감이 신경 쓰였다. 나 역시 톱니바퀴처럼 구르며 내심 퇴사를 꿈꾸던 시절,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찾아 먼저 화려하게 떠나는 사람을 볼 때면 부러움과 자극도 얻었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있는 내 처지 때문에 묘한 박탈감과 씁쓸함을 느끼곤 했다. 다들 묵묵히 버티고 있는데, 나 혼자 거창한 포부를 늘어놓으며 나가는 모습이 굳이 좋은 감정으로 남진 않을 것만 같았다.
두 번째 이유는,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그리 깊은 관심이 없다는 사실.
그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대한 일시적인 호기심과 의구심을 해소하고 싶어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친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그냥 다른 공부를 좀 해보고 싶어서요"라고 에둘러 말하고 말았다.
그리고 가장 껄끄러운 관리자에게는 이 두 마디만 던졌다.
"아내의 해외 발령을 따라 OO일에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일에 부족함이 많고, 이를 채울 역량이나 의지도 없습니다."
정황상 관리자는 "대체자를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있어 달라"며 시간을 끌 것이 뻔했고, 나는 그 피곤한 수순을 사전에 완벽히 차단하고 싶었다. 조직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직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미 10년을 버틴 상황에서, 떠나는 마당에 행여나 있을 그들의 편의까지 배려하며 내 바닥난 에너지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소진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조직이라는 곳은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대체자를 찾아 기계의 톱니바퀴를 맞물려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걸, 나는 오랜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거창한 꿈을 포장하며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피곤하게 대응하느니, 차라리 업무에 대한 능력 부족을 인정하며 기꺼이 조직의 '부적응자'를 자처하는 것.
그것이 온전한 내 삶을 찾아 야생으로 나서는, 내가 선택한 가장 이기적이고 완벽한 처세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