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은 바쁘지 않다
오늘도 팀장이 갑자기 묻는다.
“누구씨, 바빠?”
짧은 질문 하나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지금 바쁜가?’
‘아니, 사실 그렇게까지는 안 바쁜데, 이걸 바쁘다고 해야 할까?’
‘팀장은 내가 바쁜 걸 알고 묻는 걸까, 아님 그냥 습관처럼 하는 말일까?’
‘뭔가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겠지? 나랑 관련 있는 일일까?’
‘혹시 대답 잘못하면 다음 스텝이 생기는 건 아닐까?’
이렇게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맴돌다, 결국 별 생각 없이 대답해버린다.
“무슨 일이신데요?”
팀장이 내 답을 들을 여유도 없이 말을 이었다.
“아, 메일에 들어온 그거 있잖아. 그거 도장 찍어서 대표님한테 드려.”
“어떤 메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회사도장은 팀장님이 가지고 계시지 않나요?”
팀장은 다시 말한다.
“그 메일 못 봤어? 아, 업체 이름이 뭐더라… 내가 다시 보고 말해줄게.”
그제야 알게 됐다.
그가 묻는 ‘바빠?’는 내 업무 상태를 묻는 질문이 아님을.
그의 업무 기억을 더듬는 과정이었고,
내가 바쁜 이유는 그가 어떤 메일을 봐야 하는지,
도장은 누가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걸 다시 떠올리기 위한 리마인드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어쩌면 나는 일하는 게 아니라,
그의 기억 보조장치로서 존재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언제든 접근 가능한 램(RAM, RANDOM ACCESS MEMORY)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니란 걸 깨닫는데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표님이 팀장에게 다가오며 묻는다.
“팀장,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