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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

후추후추-

by ondo

초여름 몽골의 밤공기는 선뜻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비포장된 도로를 1시간여 달려, 콘크리트로 된 이층 건물 앞에 도착했다.

자연의 야성이 건물 외벽에 아직은 기어오르지 않은, 버려진 지 오래되지 않은 학교였다.

머지않은 지나간 때 웃고, 울고, 숨고, 달리던 아이들의 그림자가 건물 도처에 희미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은하수가 밤하늘에 빗겨 고요히 흘렀다.

물기 없는 바람, 달큼한 초저녁의 공기, 탁 트인 시계.

몽골의 첫인상은 ‘공(空)‘이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고, 없어야 좋을 것들도 없는 곳.

나의 시야가 닿는 맨 끝 점을 가늠해 볼 수 없는 곳.


몽골 전통의복을 갖춰 입고, 양팔에 푸른 스카프를 늘어뜨린 현지 청년 다섯이 뻣뻣하게 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또래 이방인을 향한 어색한 기운을 애써 감추려는 그들의 얼굴에 묘한 흥분과 긴장감이 묻어났다.


우리는 줄을 서서 차례차례 그들이 주는 푸른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몽골 전통주 아이락(마유주: 말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마셨다. 몽골식 환영 인사였다.


“센베노(안녕하세요.).”


푸른 밤.

푸른 스카프.

별무리가 포근히 내려앉은 아이락. 한 잔, 두 잔, 세 잔.

나는 환영주를 몇 잔 마시고 몽골인들의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부드러운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같이 흐트러졌다.


예전에 교실로 사용되었던 곳이 우리가 보름간 묵을 숙소였다. 우린 창가 밑에 짐을 내려놓고 침낭을 폈다. 움직일 때마다 조립식 나무로 맞춰진 교실 바닥이 삐걱거렸다. 그 시간 생업에 여념 없는 생쥐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이따금 마룻바닥에서 나는 소리와 뒤섞여 이상한 화음을 이루었다.

손님을 맞기 전에 호스트가 왁스칠을 해두었는지 바닥에 윤이 났지만 조립식 나무판이 틀어진 틈새에서 묵은 먼지 냄새가 났다.


건물의 마당 왼편 구석에 있는 수돗가에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했다.

먼저 씻은 사람이 핸드폰을 들어 올려 불빛을 비춰주면 다음 사람이 씻었다.

한나절 햇볕의 기운이 사라진 저장수의 온도가 어찌나 차가운지 얼굴이 쩡-하고, 골이 흔들렸다. 이도 불시에 두드려 맞는 듯한 느낌이 들어 양칫물도 두어 번 뱉고 말았다.


씻는 건 대강 해결했는데 볼일이 문제였다. 아이락을 두어 번 더 마신 탓인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모두가 침낭 안으로 들어가 두런두런 하던 이야기도 서서히 끊길 무렵이었다.


“화장실 바닥이 구덩이예요. 깊지도 않게 파놨던데. 낙하 소리가 완전 스테레오!”

대원들 중 막내인 아이가 야외 간이 화장실에 다녀와서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둔 나는 그때까지 화장실에 못 가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이미 가야 했는데 그때도 가지 않았으니 이젠 물러날 데 없는 최전선이었다.


“나랑 화장실 같이 가 줄 사람?”

내 옆옆에 누워있던 민주가 몸을 일으키며 속삭였다. 민주는 그달에 갓 스무 살이 된 막내였다.

“언니, 저랑 같이 가요.”

“너 아까 다녀오지 않았어?”

내가 엉거주춤 일어나니 그 애도 일어났다. 생글생글 웃는 그 아이의 가지런한 이가 창으로 빗겨 들어오는 달빛에 푸르스름해 보였다.

그날을 기점으로 그 애와 난 화장실 짝꿍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기상 음악을 듣고 몸을 일으키자마자 코피가 침낭 위로 뚝뚝 떨어졌다. 온몸이 부어있었다. 얼굴은 팽팽했고, 손가락은 구부려지지 않았다. 보톡스를 링거로 맞으면 이런 기분이려나, 생각했다.


몽골은 고원국가라더니 갑작스러운 기압 변화에 몸이 적응하느라 애를 쓰는 게 눈에 보였다. 몽골 땅은 평균 해발이 1500m가 넘는다. 한국의 보통 산 정상 높이에 위치하는 셈이다. 산꼭대기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과 다름없었다. 하늘과 맞닿은 나라라 지난밤하늘은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일까, 생각하며 코피를 닦았다.

우리는 운동장에 모여 음악에 맞춰 새천년 체조를 하고, 튀긴 꽈배기 빵과 따뜻한 단 커피를 마셨다.

아침을 먹고 나서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었다. 건물을 빙 둘러 땅을 파서 울타리를 세웠다.


현지인을 돕거나 마을 개발 활동에 도움을 주거나 하는 봉사활동이 아니었다.

몽골 청년들과 공동의 활동을 통해 교류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고 할까. 우물을 파거나 한글을 가르치거나 화장실을 설치하거나 보통 저개발국가를 돕는 ngo 활동과는 결이 달랐다.

또래 현지인과의 활동과 교류를 통해 지구 시민으로서 할 역할을 고민하고 찾는 것이 이 단체가 추구하는 방향이었다.


나는 애초에 그러한 목적을 갖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었다.

나의 터전을 벗어나 완전히 낯선 환경에서 인생의 방향성을 고민할 만한 배경이나 계기를 찾기 위해 왔다. 그래서 단체가 요구하는 활동에 어떠한 의문도, 불만도 없었다.


스태프가 삽을 들고 와 땅을 파라면 팠고, 울타리가 될 나무판자를 옮기라면 옮겼고, 흙을 퍼 나르라고 하면 퍼 날랐다. 무슨 일이든 묵묵히 했다.


나는 매일 할당량이 주어진 단순 노동에 완전히 몰두했고, 즐거움마저 느꼈다.

부지런히 몸을 놀리며, 머릿속으로는 지난 시간 고민했던 것들과 서랍 속에 마구 구겨 넣듯 집어넣은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버렸다.

삽질하고 버리고, 삽질하고 버리는 일을 계속했다.


팔다리를 쉼 없이 움직이고, 허리를 숙이고 들어 올리고, 걷고 뛰니 깊은숨이 쉬어졌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가벼워졌다.


머릿속 구석구석 첩첩이 쌓아놓은 꿈에 대한 미련과 그동안 관성처럼 해왔던 일들과 실패에 대한 기억과 자책감, 슬픈 마음을 쓸어버리고, 닦아냈다. 최선을 다해서.

해가 떠있을 땐 울타리를 만들거나 물을 채우거나 흙을 퍼 날랐고, 어두워지면 회합실로 꾸민 또 다른 교실에 모여 특정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기자랑을 하거나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게임을 했다.


열흘간 같은 일과를 보내며 몽골의 고도와 공기, 바람과 시야에 익숙해졌다. 초원에서 무심한 얼굴로 풀을 뜯어먹는 말이나 양에도.


울타리가 완성된 다음날 유목민의 집(게르)에서 하룻밤을 묵는 게르 체험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었다.

몽골 친구 한 명, 대원 세 명이 짝을 이루어 초대받은 유목민의 집을 찾아갔다.


사람의 길과 동물의 길이 다르지 않은 평평한 땅 위를 걸었다. 높든 낮든 특정 건물 하나 없는, 어딜 가나 같은 평평한 초원에서 몽골인들은 이웃의 집을 어떻게 찾아가는 걸까?

서로 가나 동으로 가나 같아 보이는 길인데, 몽골인들은 방향에 대한 특정한 감각이나 내가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알아보고 찾는 걸까?


몽골 친구의 등을 보고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섯 개의 둥근 벽 위에 양가죽의 지붕을 씌운 하얀색 게르가 보였다.


*무료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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