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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

후추후추-

by ondo

자연적인 풍화로 마모된 바윗돌처럼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 남자가, 말을 타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게르의 주인인 듯싶었다.

그는 돌처럼 단단한 얼굴로 우리와 동행한 몽골인 어기에게 말을 건넸는데 서로 오가는 대화를 가만 보니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지 않았다.


둘 사이에 음성의 톤이 높아진다거나 제스처가 커진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지만 말과 말이 이어지는 구간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술렁거림으로 나는 일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가 다시 방목 중인 양들에게 가버리자 어기는 게르 출입문 옆에 버려진 듯한 푸른 방수천 같은 걸 양손에 들고 돌아왔다.


“어기, 이게 뭐야? 저 아저씨가 뭐래?”

“텐트.”

“텐트는 왜?”

“오늘 우리 여기서 자야 해요.”

“뭐? 게르 체험인데 왜 텐트에서 자야 해?”

“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인이 텐트에서 자라고 해요."


함께 온 민정은 진짜 어이없다,라고 하면서도 핸드폰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해외여행까지 와서 심각할 게 뭐 있냐는 투다.

명랑하고 심플한 스무 살!


유목민들이 이방인의 게르 체험을 받아들인 게 단순한 자비심이나 선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텐데 이 아저씨는 왜 우리를 문전박대하는 걸까.


나는 주인을 보자마자 센베노(안녕하세요)하면서 치아를 최대한 많이 보이도록 웃은 게 겸연쩍고 부끄러웠다. 받아들여지지 않은 느낌이랄까.


“저 아저씨 웃기다. 왜 싫대? 이거 계약 위반 아니야? 본부에 연락해서 따질까?”


어기는 내 말을 전부 이해했는지 모를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기는 올해 열여덟이 된 소년인데 키와 골격이 어찌나 큰지 천명관의 소설 <고래>에 나오는 ‘걱정‘같은 인물이었다. 장대한 골격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은 그런 인물.

그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무작정 덤빌 수도 없고, 이 허허벌판 초원에서 덤벼봤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싶어 곧 체념하고 어기를 도와 텐트를 쳤다.


호스트가 가리킨 텐트 칠 자리는 게르에서 100m쯤 떨어진 곳이었다. 깊은숨 몇 번으로 화가 가라앉자 오히려 텐트에서 따로 자는 게 다행인가, 싶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들, 더욱이 외국에서, 공간 분리가 안 된 하나의 방에서 함께 몸을 누인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서로의 코골이, 이갈이를 듣는 건 부끄러우니까.


풍압으로 찍어 누르듯이 초원을 훑어내는 강한 바람에 놀라 텐트를 땅 속에 단단히 박느라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나니 현기증이 났다.

본부에서 몽골식 양고기 볶음국수로 점심을 먹은 지 5시간이 지나있었다. 게르까지 걸어오는 데도 품이 들었을뿐더러 화를 삭이다 보니 허기가 빨리 진 듯했다.


양 떼를 우리로 몰아넣은 주인이 말을 쥔 고삐의 매듭을 목책에 걸더니 텐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기는 유목민의 기세에 어쩐지 눌린 듯한 얼굴이었다.


“밥 먹으러 오래요.”

“게르 안으로?”

“네. 들어가요."


나는 화가 난 얼굴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었지만 게르 안에서 우리를 맞이한 주인의 아내를 보고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녀는 온화한 눈매로 우리와 눈 맞춤을 하며 수줍게 웃었다. 그녀의 품엔 신생아 티를 막 벗은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콧물이 말라붙었는지 아기의 코밑이 하얬다. 게르 안의 온기와 말똥 타는 냄새가 마음을 아래로 가라앉혔다.

우리는 게르 중앙에 있는 화로에 둘러앉아 그녀가 건네는 우유죽을 받아 들었다. 양의 젖에 쌀가루를 넣어 끓인 타락죽이었다.


죽이 담긴 누런 사기그릇 군데군데에 이가 빠져있고 먼지 더께가 쌓여 얼룩으로 남은 때가 그릇 테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불투명한 스테인리스 숟가락의 손잡이는 미끄덩거려 손에 쥐기 어려웠다. 민정은 내게 몸을 기울여 ‘언니, 나 못 먹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라고 우는 소리를 했다.


나는 호스트가 손님에게 기꺼이 내어준 음식을 앞에 두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실례인 것 같아서 얼른 죽을 한 숟가락 크게 퍼서 입 안에 넣었다.


양의 기름에서 배어 나온 비린내가 음식 전반에 떠돌긴 하지만 우유죽에 소금 간을 한 맛으로 아주 낯선, 예를 들어 똠양꿍처럼 중심을 알 수 없는 듯한 맛은 아니었다.

익숙한 맛은 아니지만 곰곰이 떠올려보면 알 법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으음. 암트테, 암트테!“

몽골어로 맛이 좋다는 말이라는 걸 안녕하세요, 다음으로 배운 나는 지금이 적절한 때인 것 같아서 엄지를 치켜들고 말했다.


아기 엄마가 봉싯 웃었다. 주인도 제 아내를 곁눈으로 힐끗 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역시 음식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게 해 준다.


민정이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복화술로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며 내 앞에 죽그릇을 밀어놓았다. 그녀의 난감한 표정의 의미를 유목민들이 알아챌까 봐 나는 그녀의 그릇을 얼른 받아 들고 다시 말했다.


“흐음, 암트테, 암트테!”


결국 민정이 남긴 죽과 주인의 아내가 기쁜 얼굴로 건넨 또 한 그릇의 죽까지 총 세 그릇을 먹고 게르를 나왔다. 내 귓구멍에서도 누린내가 날 것 같았다. 양의 가죽과 털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메에. 메에.


게르의 주인장에게 얻은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초원 위에 화장실은 따로 없다. 여기가 좋겠군, 싶은 데가 화장실이요, 욕실이다.


몽골의 밤하늘은 아름답다. 초원에 누워 기꺼이 별을 헤고 싶은 밤이었지만 바람 때문에 체온이 금세 떨어져서 이른 잠을 청하기로 했다.

두 동의 텐트 위로 타프를 치고 각 텐트의 출입구는 마주 보는 형태로 만들었다.


꼬리가 긴 여름 바람이 언덕을 타고 불어와 텐트를 이리저리 흔들었고 펄럭대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크게 들렸다. 나는 오늘 잠은 다 잤다,라고 걱정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부스럭부스럭.

크흐흐흐흠,

푸우, 푸우, 푸르르르르.

흐어어 억. 흐음 푸우우우.


감정이 극으로 치다를 때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원초적인 교성 같기도 한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꿈인가 싶어 몸을 돌려 모로 누웠지만 소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둔중하고 넓적한 무엇이 내 얼굴을 지긋이 누르기 시작할 때 난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다.

내가 누워 있던 자리가 종이 구겨지듯 구겨지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운동화를 구겨 신고 텐트 밖으로 나가보았다. 소가 커다란 눈을 뚜룩뚜룩 굴리며 이방인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었다.

소가 크흥흥 소리를 낼 때마다 콧구멍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콧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맞은편 텐트에서 잠에 곯아떨어진 어기를 깨웠다. 그는 단잠에 푹 빠져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기, 일어나 봐!”

...

“어기! 야! 일어나 보라고.”

나는 어기의 어깨를 흔들었다.


“difltlhejwoqpqp....”


어기가 욕을 했다. 말은 이해해야 알아들었다고 하지만 욕은 이해할 필요가 없다. 느끼는 거니까.


“밖에 좀 나가 봐. 소가 지금 우리 텐트 밟고 난리 났어. 무서워서 못 자겠어.”


어기는 눈을 비비며 어그적 어그적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잠에서 깬 민정과 나는 어기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새벽 공기의 한기가 옷 틈으로 파고들어 몸이 움츠려 들었다.


“후추 후추- 우추 우추-”


후추?

어기는 노랫말처럼 약간의 음을 얹어 후추후추 우추우추, 흥얼거리며 소중한 사람을 대하듯 소의 등을 어루만지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그는 귀여운 아이를 달래듯 소를 얼렀다. 소는 엄마의 말에 안심한 아기처럼 제 집으로 돌아갔다.


“어기! 대단하다. 너 도시 사람 아니야? 어떻게 동물을 이렇게 잘 다뤄?”


어기는 내 말을 들은 체도 않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곧 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닌 밤 중에 들이닥친 소를, 내가 따라 부를 수도 없는 말로 달래고 어른 그의 기술에 마음이 일렁여 아침해가 뜰 때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몽골인은 동물, 특히 가축과 특별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의 유전자를 선대로부터 물려받는 걸까.


침낭을 정리하고 텐트 밖으로 나와 보니 주인이 말 등에 안장을 얹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아침 인사를 건넸다.

지난밤 불씨처럼 옮겨 붙은 작은 경외의 마음이 내 등을 떠밀었다.


몽골에서 떠나는 날, 짐을 챙기느라 다들 여유가 없는 사이 스태프 곁에서 한담을 나누고 있는 어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어기, 잘 지내. 밤중에 소 쫓아줘서 고마워. 잊지 못할 거야."


어기는 몽골어로 길게 답했고 의아해하는 내게 통역을 맡은 한 스태프가 미소를 머금고 내게 그의 말을 전달해 주었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대요. 몽골 속담이래요. 언니가 매사에 너무 진지해서 이마에 주름이 자꾸 진다고 자기가 해주고 싶은 말이래요. 뭐든 걱정하지 말래요.”


“어기,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나는 어기의 얼굴을 보고 한국어로 물었다. 어기는 또 어깨를 으쓱할 뿐 내 물음에 응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피식 웃고 말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그의 말을 흘려버리지 않았다.







그의 선문답 같은 말이 내게 어떤 작용을 한 것일까.

나는 몽골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국제협력 관련 비영리 단체에 입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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