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게 지옥을 경험하는 사별

이별의 고통이 늘 끔찍한 쥬드의 회복 과정

by Raphael song

<쥬드>는 심리학에서 소위 말하는 트라우마 생존자다. 사별 후유증으로부터 생존하고 있다. 19세 나이에 처음 사별을 경험했고 학대 경험도 있는 등 다양한 상처의 복합 트라우마를 힘들게 견뎌왔다. 최근에 오랜 친구이자 직장 동료 <앤디>를 떠나보냈다. 마음속 얘기를 나누고 가끔 술잔을 기울이던 그를 생각하면 심장이 쥐어짜듯 아프고 그립다.


한 달 전 어느 날 건물 복도에서 쥬드는 통화 중이었는데 짐을 나르던 앤디를 마주쳤다. 통화를 기다리며 땀을 닦는 그다. 손짓으로 잠깐만 하는 제스처를 보냈다. "미안, 어떻게 지내? 앤디, 부서 일 혼자 다 하는 표정인데?" 앤디는 자세한 설명 대신 창밖 보며 한 숨을 쉬었다. "나 요즘 힘들어. 다음 주 수요일 시간 괜찮으면 니체에서 한 잔 하자." 앤디는 그의 찌든 삶 푸념을 들어달라는 듯했다. 둘은 술 약속을 잡았다. 그것이 마지막일 줄이야.


화요일, 퇴근길 쥬드는 유난히도 슬픈 하늘의 저녁이라 생각했다. 도저히 지치고 피곤해서 오늘은 일찍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때 마침 앤디에게 톡이 와 반가웠는데, 일이 있다며 약속은 급 취소되었다. 드는 전화를 했다. 앤디는 내일 일이 있다고 했고, 다음 날 휴가라고 말했다. "야 휴가에 일하지 말고, 전화기 꺼 놓고 잘 쉬어~" 앤디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답이 작아 못 듣고 전화가 끊겼다. 허공을 향한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다시 들렸다. 한 번 더 온 '미안해' 문자가 마음에 걸리고 아쉬웠지만 자주 보니까 바쁜 일 있나 보다 쿨하게 받아들였다.


장례식장에 쥬드가 처연하게 서 있다. 그의 눈은 사진을 보지 못하고 허공을 향했다. 그는 눈이 풀리고 넋이 나가 있다. 연락을 받은 직장 동료들이 와서 의미 없는 말을 하며 어리둥절해했고, 가족들은 하루 종일 오열하고 있다.

그는 실감이 가지 않았다. 붕 뜨고 둔마된 마음은 초점이 흐릿하다. 혼탁해진 눈으로 앞에 사람도 잘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것은... 빌어먹을.. 왜 네가..'라고 읊조린다. 사람들이 묻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아는 바가 없냐'라고 한다. 앤디의 아버지는 그의 사인에 대해 '명예롭게, 비밀을 지켜달라'라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그 흔한 자살이 쉬쉬하고 덮어두어야 할 사건이다. 그는 이해할 수가 없고, 믿기지 않기 때문에 경찰의 사인 판단에 의심과 의심을 해본다. 머리가 아프고 토하고 싶다. 멍하다가 슬프다가 주기적으로 화가 났다. 제수씨를 보기 민망하고 황망하다. 그녀는 뭔가 알고 있으려나 싶지만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화장터에는 야속한 비가 내린다. 쥬드는 먼산을 보고 있다. 초점 없는 눈동자에 표정이 없다. 곧 화장터를 지나 납골당에 앤디를 보내고 나서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전화 저쪽에서는 침묵이 함께 했다. 한 참을 울고나서 운전대를 간신히 잡았으나 출발하지 못하고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공허한 마음, 붕 뜬 마음에 비관이 오고 눈앞이 깜깜하다.


그의 죽음은 정말 황하다 생각했다. 회사가, 그의 업무가, 그의 동료가, 부모님이, 죽음에 관련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해자 같고 원망스러웠다. 그의 장례식 뒤에 바로 치웠다던 그의 책상, 그 지시를 내린 인간에 대해서도 밑도 끝도 없는 분노와 적대감이 지나갔다. 그가 더 황당했던 것은 슬픔을 나누기 위한 상담실에서였다.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체계적인 절차가 있어보였다. 애도 상담인가를 한다고 하는데, 배정된 상담자 <리한>은 나를 '트라우마 생존자'라고 명명했던 기억이 난다. 생존자인 내게 이런저런 감정을 물었는데, 도저히 어려워서 답변하기 어려웠다. 왜 이렇게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일까. 좋은 기억과 슬픈 기억의 균형을 맞추려는지 추억들을 물어봤다. 앤디와의 추억은 참 단조롭고 드라이하고 무미 무취에 아쉬웠다. 같이 여행이라도 갔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스친다. 상담사가 앤디에 대해 앤디와의 경험에 대해 묻는데, 그는 앤디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황당하고 더 슬펐다. 눈이 점점 빨개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다 멍해졌다. 깊은 한숨을 쉰다. 상담사가 한숨의 의미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앤디와 친하다면서, 앤디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그러고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든다. 상담사가 의미를 묻자 그는 "제가 과연 슬플 자격이 있는가 싶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피상적인 관계와 소통과 사람에 대한 무관심에 한 없이 자책했다. 상담사는 "슬프고 어둡네요. 많이 힘지요.(침묵) 지금 자책하고 있군요(침묵) 자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책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우울에 도움이 돼요..."라고 말한다. 그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어서 집에 가서 눕고만 싶었다. 소주를 사들고 가서 마시고 취해서 다 잊고 싶었다. 상담사는 술이 해롭고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게 해롭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기에는 가슴속은 태풍이, 내 머릿속은 토네이도로 돌아버릴 지경이다.


몇 달 후 쥬드는 앤디와의 사별이 마지막이겠지 생각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일상에 일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급작스런 사별이 연이어 2번이 더 일어났다. 분노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무기력해졌고 '이게 무슨 의미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심리치료를 1년째 받고 있지만 상담사도 다소 지쳐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회복될만하면 사별의 고통에 허덕이고 삶에 집중할만하면 새로운 고통에 쩔쩔맸다. 전쟁 중이었다. 육체적, 실존적, 영적 전쟁 중이다.


1년이 지났다. 쥬드의 둔마된 감정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상담사 앞에서 펑펑 울기도 하면 고통스럽게 온 가슴을 부여잡았다. 상담사는 오히려 그의 눈물이 반가웠다. 그리고는 상담사에게 슬픈 눈으로 "선생님은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자기도 이렇게 힘든데 자기 말고 다양한 환자와 내담자가 와서 이런 얘기만 할 텐데 얼마나 힘들겠냐고 말했다. 상담사는 치유되는 모습이 반가워 상담사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울었다.(침묵) 상담사는 감정을 추스르고 애써 웃었다. 여유롭게 차분하게 말하려고 호흡을 가다듬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나는 괜찮아요." (침묵) "저도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대처합니다.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타인을 걱정하기 시작했군요" (침묵) "당신이 힘을 내고 역경을 견디고 회복되면, 성장하면 저에게 그게 보람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힘든 마음이 줄어들지요"라고 말했다. 리한은 진심이었다. 격한 감정을 다스리느라 침묵이 흐렀다. '동료와 만나 분석 상담을 한다고 말하고 싶고 괜찮다'고 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에게 도움 되는 말만 해주고 싶었다. 쥬드가 죄책감이나 부담을 가질 말을 한다면 우울과 자살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말이라 생각하고 치료에 도움 되는 말을 하려했다.


쥬드는 해변에 찾아왔다. 배가 고파서 걷기보다 식당에 가기로 했다. 연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뜬금없이 그는 포문을 열었다. 그가 해외 생활을 하고 싶고 , 한 동안 일을 떠나 쉬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예상했는지 그녀는 담담했고 걱정되었고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좀 더 먹어 야위었어. 나약한 소리 하지 말고, 감정을 과장하지 좀 마"라고 말했다. 그는 밥상을 밀고 욕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 눈에 빛이 번졌다. "이런 시베리아, 너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그녀의 공감력에 실망했다. 나아가 인간미, 인성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미래에 함께 할 수 있을까 비관이 깊어져 갔다.


상담센터에 앉아 있다. 그는 리한에게 "선생님 제가 허언증, 작화증 같은 게 있나 봐요?"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자세하게 말해줄래요?"라고 리한이 말한다. "어떻게 이렇게 연이어 가까운 사람이 죽고, 믿어지지 않아요.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현실에 부적응하느라 슬픈 일을 지어내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그건 참 가슴 아픈 말이었다. 그의 생존 분투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억압했던 어린 시절 교회당 트라우마 기억까지 소환했다. 냉소적으로 부정해왔던 종교와 신에 대해 생각했다. '당신이 있는 것인가? 내가 당신을 외면한 벌이라도 주는 것인가?'라고 생각이 지나갔다.


상담사에게 그의 일 년 열두 달은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자 친구와 이별 생각을 하고 있다. 사별은 아니지만 또 다른 이별의 나룻배에 올라가는 것인가 싶다. 그만 멈추고 싶다. 이 이별들, 세상에 모든 이별들, 다시 못 볼 사람들... 그들의 죽음 이후 자신의 과거가 송두리째 날아갔다고 느껴졌다. 이별을 겪지 않는 것은 그가 먼저 떠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친구들, 마스크 넘어 충혈된 눈의 상담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먼지 같은 삶, 훅 꺼지는 촛불 같은 삶이다. 내 삶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더 흘릴 눈물이 없다. 죽고 싶었다. 그런데 죽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상담사 말처럼 죽음보다도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 것'에 가까울 것이다. 죽은 이들이 다 살지 못한 남은 생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내가 생에 애착이 이리 많았나. 그들도 그랬을까. 내 멘탈이 정말 이상한가 보다. 안에서 스멀스멀 오기와 분노가 다시 올라왔다. 뭔가 방법을 찾고 싶다. 생존을 위해 뭔가 더 하고 싶다. 지금 여기서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 검진도 받고 부모님에게 검진 서비스도 예약하고 싶다. "지금 드씨는 수용과 통제의 시소를 타고 있는 중이네요."라고 상담사 선생님은 말했지만, 일단 지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며칠 후 아침에 일어나 앤디가 하던 것처럼 메신저로 친구들에게 안부를 돌린다. 농담을 던진다. 상담사에게 살아있다고 알린다. 취소된 상담 예약을 다시 하고 이번에는 약속을 지켜보기로 다짐한다. 수영, 스케이트 회원권을 다시 끊었다. 그가 걱정이 되었는지 심야에 놀러 온 애인에게 커플 심리치료를 받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어쩐 일인지 '그러자 그러고 싶다'라고 말해서 그는 안도했다. 그러고는 그녀를 놓아두고 혼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쥬드는 일찍 자서였는지,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부적절하게 잘 잔 느낌이다. 손도끼처럼 무거운 블루라이트 사이로 시간을 봤다. 아침 6시. 속이 쓰리다. 그는 살아 있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살아 있다. '일어나야지' 중얼거리고 창문으로 향한다. 창문을 열었더니 맑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깊이 찌른다. "나는 살아 있구나." 창문 너머 아스라이 박명이 보인다. 해뜨기 전 '하늘이 저리 예뻤던가,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을까'는 생각이 스다. 눈에 윤슬이 맺히더니 이내 타고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