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기

케인과 샤넌의 우울과 충동성 작업

by Raphael song

<케인>은 오늘 친구들과 바닷가에 왔다. 머리가 지끈하고 멀미가 난다. 어제 불금으로 미리 섬에 도착해서 과음한 탓 이다. 화창하고 빛이 가득하다. 케인의 친구들은 상태가 좋아 보인다. 어제 왜 그렇게 들이부었나 하며 허탈하게 웃는다. 평소 술도 많이 안 마시던 그였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았던 것일까. 치료사 <샤넌>의 말이 지나간다. “SF로 비유해보자면, 케인이 화성 탐사 여행을 마쳤지만 에너지가 없어 돌아오지 못할 절박한 상황을 만드는 거죠. 그런 자신의 패턴을 알아차림 해보세요. 케인.. 전념은 하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상담 때 너무 맞는 말이라 그도 치료사도 비유 때문에 파안대소했다. 그런 도움이 되는 말들은 결정적일 때 조차도 휘발성이 높다. 이내 재미와 현재에 집중해본다.


스쿠버 다이빙하는 핫스폿에 도착했다. 친구 드롭바가 이곳임을 몸으로 말해준다. 다들 설렘과 긴장으로 시끌벅적 주섬주섬 장비를 장착한다. 케인도 장착한다. 드롭바는 케인에게 한숨과 욕을 날린다. “술 조금만 처마시지. 어제 과음할 때 알아봤다. 뒤집어 입고 있잖아?! 정신 안 차려?” 케인은 해병대 선임을 만난 느낌으로 잠시 긴장을 한다. 술이 잘 깨지 않아 얼린 생수병을 얼굴에 대본다. “북쪽 아이스?”, “어디서 많이 본 것인데?”라며 상표를 본다. 얼마 전 뉴스에 수원지가 중금속으로 오염되었다던 그 브랜드다. 친구가 보내준 기사를 보고,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곳은 다 망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그였다. 미간을 찡그리고 장비를 장착한다. 친구 셜리가 던지는 시답지 않은 농담에 찰지게 맞장구를 친다.


드디어 울릉도/독도 인근 신비 가득한 동해 속으로 진입한다. 케인은 실수로 균형을 놓쳐서 준비 없이 뒤로 넘어갔다. 머리 쪽 장비 없이, 머리부터 물속에 꼬라박았다. "어푸어푸" 거품과 별이 보인다. 밖에서 친구들의 소리가 들렸다 말았다 한다. 쪽팔리다 생각한다. 정신없이 허우적댔다. 드롭바와 엔드류가 부축해서 다시 올라왔다. 아까 마신 물과 함께 짠 물을 뱉어 냈다. 어제 마신 술 잔여물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아 신발!, 다시는 다이빙 전날 술 마시나 봐라!” 혼잣말로 투덜투덜 욕 반 말 반을 하고 있다. 셜리는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다시 케인은 다른 친구들이 들어가는 것을 관찰하고 충분히 쉰 이후 들어갈 준비를 한다. 눈이 시릴 정도의 세룰리안, 캐리비안 블루 빛깔 물에 진입한다. 천천히 내려가겠다 다짐한다. 기압에 적응하려면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드롭바가 다가와 천천히 내려가라고 손짓을 거칠게 한다. 케인은 나름 천천히 내려간다고 하는데 말이다. “우웃우 우웃우우 우우! (천천히 내려가는 중이야)” 인간 물개 소리가 난다. 드롭바가 보기에는 또 급하게 내려가고 있나 보다. 술에 취한 자신의 시간 감각이 좀 다르다는 통찰을 해본다. “아, 이따 겁내 뭐라 하겠구먼!” 술에 둔해진 감각이 영향을 주고 있나 보다. 통증과 불편감이 있다면 더 천천히 내려갔겠다고 생각한다. 케인 앞에 펼쳐진 섬 주변 앞바다는 절경이다. “아.....” 너무 아름다워 미칠 지경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또 있을까 한다. 보석 같은 나무들, 물고기들, 빛의 커튼이 저 수심 밑까지 내리쬐고 있다. 먼저 유영하는 친구들은 눈에서 멀어지고 코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움에 취해 갈증으로 물을 삼키듯 내려간다. 정신없이 눈으로 탐닉한다. “아.....”


시공간을 옮겨, 미국 네바다 황토색 벌판 속에 케인이 서 있다. 케인은 몇 개월 전 네바다 파견 때, 엔지니어로 과로하던 자신의 모습이 지나간다. 야근과 야근, 피로에 절어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지나간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엔지니어링을 혼자 하는 케인이었다. 꼰대들과 언쟁하고 소리 지르고, 잘 모르면서 업무 지시하던 임원들의 모습도 지나간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 시계도 안 보고 일하던 자신이 그려진다. 일에 몰입할 때는 헤어진 여자 친구에 대한 그리움도, 몸의 고통도,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도 잊을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케인씨는 힘들었네요. 그 힘든 마음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그의 치료사 샤넌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수중 속 케인이 있다. 케인은 정신없이 자극을 탐닉하는 중이며, 그에게 시간은 멈춘 듯했다. 탐닉하다 불편감이 느껴질 때 주변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서 드롭바가 막대기를 들고 유영해 온다. “아차!”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질소 팽창.. 아 모르겠고 여기서 살다가 죽고 싶다. 나가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나가고 싶지 않아서 뭉개는 중이다. 저 멀리 드롭바는 흡사 고등학교 학생부장이 다가오는 듯 잡아먹을 기세다. “적당히 해라!” 스스로 나지막이 읊조린다. 케인의 의식이 약간 혼미하다. 산소가 부족한듯하다. 답답하고 호흡이 불편하다. 황홀함 뒤에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왔다. 고통이 이제야 세게 와서 압도되었다. 정말 두려웠다. 위험이 턱밑에 와야 느껴지는 기질.... 치료사의 자비로운 조언과 일종의 경고가 떠오른다. “살아남기를 바라요. 케인”, “자신에게 처벌하기보다 도움 되는 것 해주고, 스스로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살았으면 좋겠어요.” 케인은 치료사의 그 정성 어린 말들을 귓등으로 들은 것이 미안해졌다. 버둥거리며 지상 위로 헤엄치고 있다. 너무 빨리 올라가면 안 되는데 물 밑에 지옥이라도 본 것처럼 올라가고 있다. “살고 싶다!” 그는 물속 그 어떤 물고기보다 움직임이 빨랐다.

배 갑판 위에 고래 고집이 널브러져 있다. 배로 다시 올라와 잔소리를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다. 정말 죽을 뻔했다, 위험했다는 것이다. 남들 올라올 때 올라오지 않고, 감압 과정을 무시하고 급하게 올라와 위험했다는 것이다. 라파가 스쿠버 다이빙을 취미로 시작했고 실수가 잦다고 했을 때 표정이 떠올랐다. 몇 번의 부주의로 애먹은 에피소드를 웃으며 얘기한 자신을 보며 "걱정이 지나감을 알아치려지네요."라고 자기 개방을 한 것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케인이 '걱정 마시라' 너스레를 떨 때까지 서로 한동안 침묵했던 것도 기억났다. "조심성 많고 겁이 많은 선생님이구나."라고 판단했었다. 근데 이런 상황의 반복을 ‘예언하고 염려하신 거구나’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마음챙김!”, “아~ 씨, 나는 마음챙김 정말 못하는구나. 한 참 멀었어!”라는 생각이 지나간다. 치료사는 마음챙김은 좋으나 '마음챙김 못하냐'는 비난의 마음도 알아차리라고 분명 다시 말할 거라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상담 때 다룰 내용이 있어서 좋기도 하고, 반성도 하면서 생각해 볼 이슈라고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이것이 또 다른 양상의 우울인가?’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기질적으로 두려움 적은 것, 부주의와 충동성은 둘째치고 오랫동안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 자신을 그동안 크고 작은 위험에 빠트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연 속에서 강렬하게 "살고 싶다."는 느낌이 몸에 다시 파고든다. 살아 있는 것에 감사했다. 아까는 죽음이 아주 가까이 있었다. 치료사 샤넌이 "힘듦을 알아차리라는 것이 중요해요."라는 말도 다시 다가왔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음이 삶을 포기하고 싶음과 연결된다."는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고 동공이 커졌다. 케인은 친구들이 자기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듣고 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그런 평가의 말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며 짐들을 대충 쑤셔 박았다.


며칠 후 수요일 저녁 6시, 케인은 책상에 앉아 화상 상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딱 2주 만이다. 작년 상담 소개를 받고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꾸준하게 상담을 받을 줄 몰랐다. 꽂히면 꾸준하게 강박적으로 지속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상담이 의외로 자신과 사람 마음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다들 속 얘기를 털어놓고 심리적 장애물을 다루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다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수용 단계 이후 회복이 되면서 이제는 어떤 식의 직면도 해석도 즐기고 있었다. 타인들과 비교해보면 자신이 스스로 신기하다 생각했다. 이것도 '자극 추구' 높은 성향의 사람에게는 일종의 좋아하는 자극이 될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 변화하고 있고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야 우울에서 나와 삶 속으로 더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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