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문>은 어느새 50세 다 돼가는 중년이다. 심리학자 <영>이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개업 후 7년 차 무렵이었다. 영은 치료 일이 힘들어서 새 직업을 탐색하는 중이었다. EAP 새 직장은 회사 관련 일이 많았고 자유도가 낮아서 그녀가 말하는 잡스런 일 때문에 치료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고 자살 위기 상담으로 지쳐서 그녀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 여길 무렵에 레드문을 만났다.
영은 다이어트와 걷기 운동에 관심이 많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오래 앉아 있는 직업 덕분에 하체가 튼실해지고 무게 중심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볕이 아직 더워서 더운 바람에 날리는 매트 브라운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성가시다. 머리를 더 짧게 커트할까 충동이 지나갔다. 점심 먹고 산책길에 두 남자가 대화라는 것을 진지하게 하면서 걸어온다. 은행잎 바닥에 떨어진 가을날 그 위를 사뿐히 밟으며 토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은 “요즘 남자들 같지 않은데?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일까?”하고 혼잣말을 하며 주의를 기울였다. 오는 길에 얼핏 들으니 중년 같으나 짧은 머리에 소년 같은 남자가 큐티가 어쩌고 기도가 어쩌고 요즘 영적으로 자신이 어떻고 얘기를 하면서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남자들 같지 않다.
그녀의 종교는 가톨릭이었다. 세례 받은 지 1년이 안 되었다. 심리치료 일을 인간의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깨달은 다음부터 가톨릭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치유라는 작업은 부족한,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 혼자 하기 버거운 일이다. 치유자 성령의 힘을 빌리는 마음이 생기고 나서는 턱 밑까지 찬 피로감과 소진이 조금 해소되는 듯했다. 그렇게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년 같은 남자는 주변을 잘 살피는지 평화로운 미소로 영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좁은 가로수 길을 비켜 지나갔다. 아프고 지쳐 보였으나 뭔지 모를 평안함으로 인상 참 좋다고 생각했다. 영은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면서 관상가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많은 행동 관찰과 주름 등으로 관찰하고 세운 가설이 맞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심리학자는 과학자 훈련으로 믿음에 대해 통계치를 가지고 믿음 수준에 근거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정밀성과 책임감이 남 다른 부분이라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센터에 노크가 있었다. 상담센터가 궁금해서 와봤다고 했다. 상담은 어떻게 받는 거냐며 수줍게 물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마침 취소가 되어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논문을 쓰려다가 일을 하게 생겨서 아쉬워했다. 안으로 초대하고 가만히 살피니 지난번 소년 같은 중년이 아닌가? 영은 약간 놀랐다. 그의 이름은 레드문이며 같은 건물에 있는 GP회사에 근무한다고 했다. 그는 방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나는 문을 닫고 앉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다. 처음 운을 어떻게 뗄 것인가 2-3초간 망설여졌다. 그는 차분하고 평화로워 보였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할까 궁금했다.
레드문은 10년 차 직장인이다. 박사 후 10년간 회사를 다녔다고 했다. 연구소에서 좋은 조건으로 이 회사로 이직했다. 회사 생활이 낙이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회사에 와서 점심시간의 큐티 시간 외에는 재미가 없다고 했다. 동료들에게 매일 성경 구절을 공유하고 메일을 보냈었는데, 회사 인사팀에서 알고 나서 면담을 하고 그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좀 기운 빠졌다고 말했다. 퇴직 후 선교 일을 생각하는데 회사에서의 하루하루가 길다고 했다. 나름 한다고 일을 하는데 5년째 고과를 주지 않아 승격 누락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퇴직 후 생활에 대한 기대로 날마다 꿈에 선교를 가는 꿈을 꾼다고 했다. 아이는 중학생이고 배우자는 목회 준비로 대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무교였다가 대학원 때 가족을 만나 종교가 생겼고 돌밭에 신앙의 싹이 났다고 했다. 그에게는 삼형제가 있는데, 신앙과의 불일치로 제사가 이슈가 되었고 갈등하다가 서로 등을 졌다고 말했다. 그는 천천히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주제로 살아온 얘기를 해나갔다. 그러다 어느 때는 선을 긋고 다 얘기하지 않는 모습도 있었다. 회사 내밀한 얘기는 주의하는 것 같았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니 레드문 씨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라고 영은 말했다. 신앙으로 사는 그의 삶과 그 확신이 궁금해졌다. 길가에서 만난 그 모습 그대로 그는 신앙과 삶을 일치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다니는 경쟁적인 회사와는 사실 어울리지 않았다. 레드문 박사는 사실 연구소에서 10년 이상의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선교를 가기에 연약하게 느껴졌다. 생각이다. 얘기를 듣는 동안 그의 목소리에서 여러 가지 사인으로 건강이 걱정되었다. 건강에 대해 물었을 때 만성 신장 질환이 있다고 말했고 상담 시간이 다 되어 다음 상담 때 얘기 나누자고 했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레드문이 왜 왔을까 궁금해졌다. 적응이 어려워서? 우울해서? 신앙으로 사는 모습은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뭔가 건강이 큰 장애물이 되는 것 같았다. 영은 잠시 화살기도를 날렸다. 레드문과 영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영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가 과연 어떠한지 숙고해 보았다. 또 기독교인에 대한 편견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이내 안타까웠다. 묘하게 현실과 떨어져 있는 부분이 아쉽기도 하고 맹목적이지 않고 중용을 가지고 가는 게 가능할까 생각해보았다.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하는데 다양성이 수용되기 어려운 배타적인 면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레드문은 한층 더 초췌해진 얼굴로 찾아왔다. 건강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하셨나요? 요즘 입맛은 어떤가요?” 그는 작은 목소리로 좋지 않다고 했다. 모든 음식에 독소가 있어서 간이 해독이 어려움이 있는데, 회사 식당 밥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제작한 미역 다시마 국과 야채 스틱만 먹는다고 했다. 상담실 안쪽 구석에 십자가를 알아 보더니 주의가 머물다가는 이내 '자신은 말씀을 먹는다'고 말했다. 중년 남자의 신앙이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음식을 임의로 편식하고 불균형적 결핍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현했다. 집중적으로 그런 행동에 어떤 자료와 근거가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달라고 물었다. 레드문은 '자신은 죄인이고 탐욕이 있고 그것 때문에 신장과 간에 이상이 왔다'고 말했다. 의사가 말해준 방식 외에 임의대로 식단을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건 그의 배경, 과학자답지 않은 주관적 생각이었다. '사고장애가 왔을까?' 혼자 생각하는 영이었다. 영이 식품영양학자는 아니지만 그런 식단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였고 불필요한 요오드 과다 섭취가 우려되었다. 그에게 피검사를 하고 의사와 서둘러 면담을 잡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에 말에 의지하고 있었다. 귀담아듣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피동성과 판단력 저하가 걱정되었다. 그분의 보혈을 생각하며 기도하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의 얼굴에 먹구름과 염려가 지나갔다. 일주일 후 예약을 잡았다.
레드문은 오후 3시에 방문했다. 영은 상담이 많아 조금 지쳐 있었고 상담 전에 잠시 그라운딩(착지법, 마음챙김 기술)을 하면서 각성을 올리고 있었다. 레드문이 오기 전부터 조금 쳐지기 시작했고, 대학병원에서 훈련받은 진단명 스펙트럼을 요렇게 저렇게 다 꺼내보고 있었다. “그 진단 프레임이 도움이 될까?” 혼잣말을 해보았다. 온전히 수용해서 더 들어보기로 했다. 건강에 대한 신념 외에 기능 손상이나 판단력 손상은 뚜렷하지 않았으며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망상적 수준의 사고장애는 뚜렷하지 않았다. 레드문은 웃으면서 선생님의 조언대로 검사를 해봤더니 간수치, 신장 관련 수치가 위험 수준이어서, 자체적인 식이 요법은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고맙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으며 골고루 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고 그래서 더 우울하고 어두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임의대로 판단하는 것은 지양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꿈 얘기를 했다. 예산의 시골집이 흉가로 남아 있는데, 거기서 가족과 싸우는 꿈을 꿨다고 했다. 자신이 소리를 지르고 밥상을 엎었다고 했다. 제사고 뭐고 다 부질없는 짓이며 그 죄로 가족들이 모두 아픈 것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자신을 보았다고 했다. 생생한 스토리에 다소 놀랐다. 기운 없는 레드문에게 이런 열정이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신념은 강해서 다른 사람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과 결과를 중심으로 한 귀인으로 형제들과 반목하고 화해를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영은 종교적인 입장에 대해 윤리적 측면 때문에 드러내지 않았다. 자각하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마치 그의 종교를 처음 접하는 것처럼 묻고 경청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태도로 근거를 기반으로 건강과 회복에 효과 있는 건강행동에 대해 틈날 때마다 조언을 했고 자료를 공유했다. 그와의 종교적인 대화에 머무는 것, 맥락에만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개인마다 신앙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고 행동이 다양해서 같은 종교인가 싶을 때가 있는데, 레드문의 경우에도 근본주의 입장에서 엄격한 구약 등 지시를 따르려고 하면서 사회 내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터넷과 게임에 노출된 아이를 보기 힘들어 종교적 대안 학교를 보내 디지털과 거리를 두게 하려는 것만 봐도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회기를 거듭할수록 레드문은 영의 질문이 조금 불편하게 느끼는 듯했다. 모순을 발견할 때마다 머리가 아파 보였고 피곤해했다. 영은 자기 비난, 지기 자비가 없이 대하는 것, 타인에게 정죄하고 자비롭지 않게 대하는 것, 경직된 기준이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닮고자 하는 그분의 모습과 반대 축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알도록 포괄적인 개입을 했다. 그리고 기도를 했다. 수용전념치료의 스승이 얘기한 언어 개념화가 그렇게 인간을 속박시키는구나 생각했다. 스승이 자기 초월하려고 노력하면서 개방적인 태도로 살게 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치료자의 종교관이 내담자에게 생각으로 들어가기 쉽고 어떤 때는 죄책감으로 해롭고 치료 관계와 성장에 도움이 안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치는 중요하지만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에 다치기 쉽다.
금요일 아침 갑자기 상담 시간을 옮기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3주의 간격이 있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레드문이 다시 센터 문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여전히 청소년처럼 젊어 보였다. 그것은 청소년기에 멈춤이 아닌 순수한 웃음과 머리스타일 때문임을 알았다. 건강은 좀 개선되었는지 생기가 있었고 피부도 탄력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레드문이 상담 종결을 원한다고 했다. 예상된 일이었다. 계획된 개입은 다 하지 못했지만 그가 ‘마음이 편해졌고 도움도 받았으며 건강도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비관적 생각도 거리 두고 볼 수 있었습니다. 건강 지표도 좋아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자비로워진다는 것, 판단과 비난을 줄이는 것이 어떻게 예수님과 연결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한동안은 자신의 경직된 생각과 행동이 상담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말했다.
20회기 동안에 그는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독립적이고 자율성이 높아져 있었다. 객관적인 데이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건강에 효과적인 습관, 이를테면 운동의 증가, 약물남용의 감소, 일관된 수면, 골고루 영양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의 방어기제는 다시 견고해진 것 같았다. 적당히 밀어내고 적당히 변명하며 적당히 소셜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인간다움, 평범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나 적당히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다. 영과 대화할 때 듣기 싫은 얘기는 적당히 듣지 않고 주제를 옮기는 모습도 보여 영은 그 모습을 보고 다행감이 지나갔다. '레드문이 압박을 잘 견디고 잘 쳐내고, 나름의 유연성을 찾은 것 같구나.'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레드문은 그가 다니는 교회를 한번 와보라고 영을 초대하였다. 자신의 배우자를 만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서로 아쉽고 기쁨의 졸업 인사를 나눴다.
그가 나가고 영은 생각에 잠겼다. '이 만남이 영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떤 메시지로 인식해야 할까. 나를 어떻게 쓰시려고 하시는 걸까?'라는 생각이 생각으로 꼬리를 물었다. 가장 든든한 것과 같이 있을 때 가장 취약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가치가 견고하면 그 가치 때문에 인간은 나약해지고 취약해지고 결점이 되기도 한다. 중요하게 여기는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인간은 얼마나 우울해지고 무의미와 절망을 경험하던가? 영은 그동안 혼자 많은 것을 짊어지려고 했다. 마치 부모 없는 아이처럼 외롭게.... 영은 이제 기대 보기로 했다. 신에게 완전 의지하는 것은 아니나 기도도 하고 수퍼바이저에게 다시 연락해 그간 경험과 매어 있는 마음과 힘듦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도움을 구하는 것, 객관화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자유롭게 되었다. 홀가분하고 개운한 것은 가슴에서 시작되었다.
20220613. 믿음, 치유의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