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만난 영적 아버지들

라엘과 휘중의 마음속 아버지상으로부터의 자유

by Raphael song



아버지학교 팻말이 보인다.

<라엘>은 <아버지학교>에 입소해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 혼자 방을 주어 좋기도 하지만 낯선 환경이 어색하기만 하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입소식을 했다. 그는 10년 차 아버지이며 심리치료사다. 부모로서 초심을 다지고자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냈다.


6개월 전 시내 벤치.

라엘은 멍하니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아이를 기다리며 피로에 잠시 쉬고 있다. 벤치 옆에 우연히 신문 활자를 보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학교라는 친숙하고 낯선 이름의 활자가 번쩍하듯 눈에 들어왔다. 리한의 시선이 한동안 머물렀고 아이를 생각하며 자신을 반성해 보았다. 그 후로 며칠에 한 번씩 부모를 상담할 때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괜찮은 아빠일까?, 충분히 좋은 부모일까?” 질문하게 되었다.


상담실 소파

10회기째 방문 중인 평범한 아버지 <휘중>과 마주 앉아 있다. 라엘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아픔을 느껴서 미간이 모아 졌다. 휘중은 자신이 아이를 압박하기는 하지만 아이가 자체가 너무 특이하다며 불평을 했다. “아~ 저와 너무 달라요. 너무 닮지 않았어요. 아이가 있어서 원장님도 아시죠? 지난번에 보셨지만 매사에 욕구가 부족하며, 적극적이지 않아요. 아들의 무기력함이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좀 변화됐으면 좋겠습니다. 후~”라고 말하고 있다. “휘중님! 많이 답답하시겠어요. 아들이면 나와 비슷하고 성향이 유사하다고 기대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 생각을 하시면 좌절감과 답답함, 무력감도 있는 등 스트레스가 되시겠어요.” 라엘이 말하면서도 이건 내담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리학자 라엘의 아버지는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높은 분이었다. 반면, 어머니는 조용하고 신중하신 분이었다. 두 분이 서로의 기질을 보완하면서 아웅다웅,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살아오셨다. 라엘은 어머니의 유전자도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하며, 비교적 얌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 <레드프리>는 그런 그가 못 마땅할 때가 많았다. 더 당당하고 남자답기를 바라서 기대와 여러 기회를 주었다. 반장과 리더를 도맡아 할 수 있게 동기 부여했고, 격려했으며 리더로서 자라기를 바랐다. 라엘은 어린 시절 기질을 수용받지 못해 위축이 되었으나 시도하고 보상을 받으면서 불편하지만 가치전념하는 어른으로 성장해왔다. 리한도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이 <조니>가 너무 사랑스러웠고 부모로부터 받은 내리사랑을 전했다. 하지만 자신이 자라던 패턴처럼, 조니를 보고 조금 답답해했고, 더 적극적이기를 바라면서 동기 강화와 적극적인 시도에 공들여 보상을 주면서 훈육을 하는 면이 있었다. 치료자로서 라엘은 인지부조화로 갈등했다. 내담자 부모들에게는 '기질을 수용하고, 맞춤식으로 기대를 낮추고 넓은 마음의 공간을 주며 기질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강의하면서 자신의 아이는 강하게 키우고 싶고, 성 고정관념적 언행을 기대하고 있고 암묵적으로 미세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라엘은 얼굴이 검붉어졌다. 휘중이 “선생님은 그러시지 않아 잘 모르시겠죠? 저는 머리로는 알지만 잘 안 되네요.”라고 말하고 있다. 라엘은 마침 오늘 아침에도 아이에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고 느긋한 모습과 자신감 없는 대답과 행동으로 잔소리를 한 바 있어서 찔리는 차였다. 라엘은 최근 부쩍 아이에게 기대와 잔소리가 조절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버지학교 참여를 위해 신청서를 냈다. 두려움과 귀찮음에 양가적 마음이 있어서 이번에 입학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마지막 순번으로 배정이 되었다. 운명이라 여기고 그의 다양한 계획된 일정을 미루고 입소하게 되었던 것이다.


집단 토론 시간~

라엘과 고령의 <당위>씨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상에 다양한 아버지가 있고 상처도 다양하다. 당위는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와 그에 대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대로 현재에 장성한 아이들에게 화를 자주 내고 욕도 하고 모질게 행동해서 반성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악순환의 고리. 그 고리를 끊는 것, 그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뫼비우스 띠 같다. 당위는 라엘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얘기를 잘 들어주어 식사 때나 쉬는 시간에 집안 얘기, 다양한 하소연 등 자기 개방을 많이 했다. 집단 나눔 시간에도 자기 얘기를 높은 점유율로 이야기를 독점하고 있었다. 젊은 아빠들은 들으며 저마다의 아이들과의 상황,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조로 지켜보는 진행자들은 각 과목의 강사들로 토론이 원활하게 진행이 되도록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일반 자원봉사자이다 보니 성숙함이나 전문지식을 기대할 수 없었다. 진행 봉사자는 어제 과음을 했는지 술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떤 리더는 모둠 작업 옆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건 잘못이다. 그건 이상했다. 그런 말은 도움이 안 된다. 나도 그랬다.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등 따위의 말과 함께 끼어들어 대화를 망치는 듯 보였다. 가장 연로한 아버지 당위씨는 다양한 평가적 딴지로 기분 상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라엘은 전반적인 강의 내용의 비전문성, 집단 진행자, 보조 진행자의 선의 뒤에 드러나는 당위적 생각, 비합리적 신념, 분노 감정, 평가 태도 등이 참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해롭다고 여겼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게 참여를 했다. 라엘은 진행자 ‘스트롱’에게 귓속말로 조금만 더 들어주자고, 좀 기다려 주시라고 제안을 했다. 스트롱과 당위가 서로 언쟁을 하며 토론, 나눔 시간이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까?’, ‘우리의 아버지는 어떠했나?’, ‘그때 나는 어떤 아버지를 바랐나?’, ‘지금 아이들은 어떤 아빠를 바랄까?’, ‘무너진 관계는 어떻게 회복하면 좋을까?’의 화두가 지나갔다. 라엘도 배운 전문지식으로 관념화하고 있던 것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전문가라 방심하면서 자신의 아들 조니에게 소홀하게 대하거나 상처를 줬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자주 나왔다. 참회의 기도를 남몰래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에 아버지학교 책임자이며 기획자인 <안둥> 신부는 좋은 아버지에 대해 교육을 하고 있었다. 신학적 이해에 대해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라엘은 당위적 생각이 많고, 답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다는 판단적이고 비수용적 태도, 자기애적 태도에서 점차 불편함이 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가 부부상담을 많이 해서 잘 알고 있고 전문가라고 말하고 있다. 3일의 과정 동안에 참았던 불편함에 마무리로 더해지는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챙김하면서 아이를 생각하고 신부가 주관적으로 해석한 가정, 가족의 역할과 사랑이 깃들어야 하는 앎의 실천에 대해 열린 자세로 인내를 가지고 들었다. 어찌 되었든 다양한 아버지들과의 대화, 그들의 상처를 듣고, 치료자가 아닌 부족한 한 인간, 후회와 걱정 많은 아버지로서 같이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의미 부여를 하고 만족해했다. 마치기 전 아버지들에게 설문조사와 만족도 평가를 받았다.


퇴소식에서

여러 아버지들은 다과와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고 헤어지는 형제처럼 아쉬워했다. 울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며 각자 좋은 아버지로 살리라 다짐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라엘은 같이 울었더니 감정적 소진이 와서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자 무리 뒤에 서서 사람들을 보며 충전을 하고 있다. 신부 안둥 라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작성한 후기와 제안서 잘 봤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참여하시던데요? 어땠습니까?” 라엘은 신중해졌다. 조심스럽고 의견을 불편하지 않게 잘 전달하고 싶었다. 라엘의 가치가 성장과 마스터링, 도움주기 등이어서 가치전념 행동하기로 마음먹고 대화를 이어갔다.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 장점, 훌륭한 부분에 대해 칭찬하고 감사를 전했다. 신부는 뒷짐을 지고 다소 우쭐하며 수긍하는 태도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도움이 되기 위해 전문성을 조금 더 높였으면 합니다. 실제 상담사, 전문가 등이 강사면 좋을 것 같고, 자문도 받으면 더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신부의 눈빛이 바뀌고 살짝 일그러지며 특유의 자신감과 여유가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팔이 앞으로 오고 팔짱을 끼고 듣다가 얼굴을 만지다가를 느리게 반복하고 있었다. “저는 온전히 부족한 아버지로서 참여를 했습니다.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제 전공이 관련되어 있다 보니,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자원봉사로 참여해서 프로그램 개선과 유지에 기여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예의 바르게 말을 했다. 그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란 것을 수 초 안에 알 수 있었다. “오 그래요? 그런 부분이 있지요. 명함이나 그런 것 있나요? 줘보세요. 밑에 담당자분에게 연락해서 참여할 수 있게 검토해보라고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눈 속에는 붉은빛이 돌았고 대화가 불편해졌다. 애써 밝고 유쾌한 태도로 안둥은 말했다. “아 잠깐 라엘씨! 마침 제가 번역하고 있는 책이 있는데, 무의식적이고 의식적인 즐기는 행동과 관련한 맥락에서 play, game 이 단어들을 것을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라엘은 얼굴이 붉어졌다. ‘아 이렇게 받고 있구나. 이게 아닌데.. 진심이 잘 전해져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지나간다. “글쎄요 맥락에 따라 달라서요. 놀이, 유희 다양하겠네요. 잘 아실 거 같은데요?” 그리고 잠시 침묵하며 표정을 살폈다. “혹시 제가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신부님. 프로그램이 좋았으나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시는 것 같아서 의견을 드린 것입니다. 봉사자들의 노고 등은 작아지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저자세의 태도에 라엘은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아닙니다. 라엘씨! 나는 말한 그대로예요. 의견은 도움이 되었고 저 번역이 궁금했어요.”라고 말하며 미간이 경미하게 일그러지고 손등이 벌게진 모습이었다. “담당자에게 연락하라고 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둘은 악수를 나눴다. 안둥은 바쁘다는 듯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향했다.


귀가하는 라엘은

아버지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반추하였다. 감사한 경험이 많았다. 이런 프로그램은 개방성과 보편성을 위해 종교를 초월해서 주최하면 더 좋겠다 하는 마음이 지나갔다. 산 골 어딘가보다 도시 가까이 접근성도 높았으면 좋겠고, 후원의 다양성, 스폰서도 많아서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장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안둥 신부의 말들과 표정이 불편하게 찜찜하게 남아 있었다. 연락이 오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고, 진심이 전달되지 못하고 오해를 받고 있다는 마음도 불편했다. “진심 어린 참여와 도움 의도에 대해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다니....” 씁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벌판, 사막처럼 보인다.

“여기가 어디인가?” 라엘은 두리번거렸다. “사막 한가운데가 아닌가?” 황금색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고 중간중간 모래 산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저기 비행기가 고꾸라져 있었다. 태양이 너무 강해서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모래 바람이 속눈썹을 간질거렸다. 저 멀리 고래가 사막 위를 지나간다. 라엘은 덥지 않고 오히려 한기가 느껴져서 옷깃을 더 여몄다. 옷을 벗기려는 듯 바람은 더 세차게 옷 속을 파고들었고 그럴수록 라엘은 옷을 더 동여맸다. 좀 걷는 중에 한 시간은 걸었을까? 조선 양식의 소나무 기둥의 정자가 생뚱맞게 서 있었다. 다시 한번 두리번거리며 그의 눈을 의심했다.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모래가 신발 안으로 들어가 뜨거워지고 답답해짐을 느끼며 무작정 정자 건물로 향했다. 누군가 어떤 큰 사내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과거 라엘의 아버지인가 싶다가 프로이트인가 싶었다. 담배를 물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자 계단을 오르며 라엘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말없이 한 사내가 뒤돌았다. 그 얼굴은 라엘에게 ‘조직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조언을 하는 과거 직장 동료 마이콜이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동료이면서 내담자였다. 열등감과 편견이 많은 사람이었고 허리 통증으로 늘 힘들어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고 조선시대 명문가라고 자부심을 갖던 중년 남자였다. 라엘의 전문적 의견을 확인하고자 메모해서 들고 다니며 다른 심리학자에게 확인하면서 흠집을 내려는 소심하고 자비심 부족한 사람이었다. “여기 어쩐 일이에요?”라고 말하며 눈을 비비는데, 안둥으로 얼굴이 변모했다. “아 이건 꿈인가?” 자각몽이라는 단어가 지나갔다. 안둥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있어요. 우리 자존심을 모래 위에 세우는 놀이입니다.” 라엘은 실소와 함께 짜증이 올라왔다. 모래가 입에 들어온 듯해서 연신 뱉어냈다. 라엘이 안둥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마 전 부임한 보좌신부 크랙으로 변모했다. 크랙은 영성의 돌밭에서 어렵게 사제가 된 귀한 자였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신앙을 이어가 사제가 된 사람이었다. 라엘은 심장이 뛰고 있어서 너무 심하게 제멋대로 놀아나고 있어서 오른손으로 심장을 부여잡고 서 있었다.


소나무 정자

라엘은 크랙과 정자에 앉아서 신학에 대한 토론을 했다. 그 주제는 다양해서 모든 종교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고 모든 종교를 만든 신 중에 신이 있다는 얘기에 대한 입장에서 본질보다 형식에 치우친 만들어진 전통에 대해 대화를 하고 있었다. 크랙은 주로 의무에 대해 강조를 했으며, 전통에 의하면, 공의회에 의하면 등의 말을 반복하는 양상이 있었다. 라엘은 주로 ‘신이 어떻게 여기실까? 현존했을 당시에 없던 인간이 만든 전통이 정통성이 있는가? 인간의 신앙생활에서 그 형식을 행하려고 시간과 행동, 사고를 구속해도 괜찮은가?’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그건 높으신 분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질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크랙은 “냉담자입니다. 몇 년간 교회에 나오시지 않는 것은 소위 냉담입니다. 방문 기록이 없습니다. 성사 기록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라엘은 화가 났지만 차분하게 반복해서 말했다. “가르침의 핵심은 자비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연결입니다. 경직성이 아니라 유연한 포용입니다. 그 방식이 인간의 해방과 사랑의 실천에 도움이 됩니까?”지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크랙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안둥으로 바뀌었다. “게임입니다. 형제여. 놀이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웃었다. 라엘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번지고 리한의 몸과 정자를 휘감았다. 고래가 표효하며 지나갔다. 모래가 걷히고 해질 녘 먹구름 사이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리한은 절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입 사이로 눈물이 머금어졌다. “자비로운 아버지여, 저도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겠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침대 위에 눈이 떠졌다.

라엘은 형광등이 눈이 부시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고 실눈을 떴다. 불을 켜고 자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CS 루이스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다가 잠든 것이 기억이 났다. 침대에 걸터앉아 신비로운 총천연색 꿈에 대해 멍하니 회상하고 있었다. 눈 망막 주변이 건조하고 모래가 들어간 듯 꺼끌 하고 아팠다. 책을 보면서 마지막 생각했던 내용과 단상이 지나갔다. “인간은 위대하기도 하고 나약하기도 하고, 중요한 역할의 사람들에게 유혹자는 항상 기회를 노린다. 경직성, 몰상식, 무자비, 고집, 규칙, 구속 등에 잘 빠지게 하며 가장 달콤한 교만함을 통해 망가트린다. 스스로 망가지는 자는 유혹할 필요가 없고, 경직되게 서 있는 사명을 다하려는 자에게 부러지도록 회심의 일격을 수시로 날리는구나.” 그가 스마트폰 메모장에 남기고 잠들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상담실에 라엘이 짐을 푼다.

토요일 오전 10시 열정적인 아버지 휘중과 상담이 있다. 휘중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 한바탕 아이랑 다퉜다며 흥분하는 모습을 만난다. 라엘은 자신 내부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휘중을 바라보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짜증과 답답한 반응이 사라지고 연민과 측은함, 안타까움 등 마음이 일어났다. 휘중은 라엘의 한 템포 느린 대화와 말에 씨름 모드에서 샅바를 탁 놓았다. 휘중의 입에서 부처님, 예수님 등의 자비로운 상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자기가 엄하고 평가적인 부모상을 가지고 그 대처 방식 프로그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이 알아차려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집안 내력의 그들 방식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동안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네요? 다름은 이상한 것이 아닌데 인정하기 어려우셨나 봐요. 휘중님이 사랑하는 배우자의 특성이기도 하지요?” 라엘이 말했다. “제가 체면을 중시했나 봐요.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아이가 무엇인가를 못한다? 내 유전자의 아이가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나와 아이는 동일시고 지적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휘중의 말에 라엘은 동공이 흔들렸다. 가슴이 출렁 내려앉았고 뭉클해졌다. 휘중을 폭풍 지지해주었고, 자신의 경험과 개방을 얘기하며 지지했다.

휘중은 상담센터 로비로 나온다.

그가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마음이 슬리퍼처럼 가벼운 듯했다. 모래 바람처럼 가볍게 슥슥 소리를 내면서 신발을 신으며 콧노래 리듬을 탔다.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아버님 그리고 휘중님. 차주 토요일에 뵐게요.”라고 같이 가벼워진 라엘의 말이 센터에 다소 울린다. 휘중은 인사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하며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부드럽고 애교 있는 목소리로 아들을 부르고 있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지며 아이를 격려해주는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오래도록 들린다. 센터 문이 닫히고 라엘은 아주 목이 말랐다는 듯 현대판 우물,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벌컥벌컥 목젖이 오가며 맛있게 물을 마셨다. 식도를 넘어가는 차가움에서 마음이 깨어났다. 가슴속에 감사가 느루 스며 올라왔다.


2022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