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상심리학자 <엘리>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센터를 향했다. 비가 주적주적 내린다. 6월 장마가 오기에는 아직 좀 이르고 16°C 정도로 약간 쌀쌀하다. “가을이야? 날씨 뭐지? 기분은 쾌 침잠하네.” 그녀는 자부심의 고흐 색감의 아트 우산을 펴면서 혼잣말을 한다. 상담이 없다면 이불에 더 뒹굴고 싶어지는 컨디션 안 좋아지는 날씨다. 지하철 안에서 마음챙김을 해봤다. 통증과 뻐근함, 침체됨이 느껴진다. 최근 상담센터 리모델링하느라 바빴고, 밀린 상담을 하느라 과로했다. 이제 좀 안정화되는듯했지만 집필하고 있는 책의 마감으로 다시 달렸다. 매번 의미와 가치전념으로 책 작업을 하지만 실상은 남는 것은 별로 없고 힘들기만 해서 어둠이 가득한 안경으로 출판사만 배 불리는 느낌이다. 출판사는 경기가 어렵다고 난리고 작가도 독자도 펴내는 이도 모두가 불만족스럽다. 엘리는 9시에 퇴직한 중년 내담자 <리만>을 만나기로 했다. 현재시간 8시 40분 온라인 화상 상담으로 만나기로 해서 컴퓨터 접속을 하고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분주한데 발걸음이 바닥에 붙어 힘겹다. 그나마 코로나 시기, 화상 상담 덕분에 내담자도 상담자도 상담 진행하기가 편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고 표정을 볼 수 있어 효과적이다. 상담 센터 입구 명함에 <심리학회 및 보건복지부 공인 심리학자 엘리>라고 깊게 새겨져있다. 5년 이상의 정신과 병원 수련과 그 많은 상담 슈퍼비전을 받으러 지친 몸을 끌고 다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심리사법이니 상담사법이 해서 언론 등이 시끄럽고 윤리의식, 양심 없는 집단 때문에, 열심히 살아왔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시스템 때문에, 짜증이 나서 힘든 그녀였다.
같은 시각 <리만>
그는 침대에 누워있다. 생각이 빗방울처럼 많다. 지치고 피곤하다. 몸이 머리 무게를 감당 안 되는지, 몸의 무게를 목이 감당을 못하는 것인지, 베개가 높은 것인지 뒷목이 뻐근하고 등과 어깨 등 온몸이 쑤신다. “어후, 삭신아...” 몇 마디 외침과 한숨을 쉬고 있다. 그가 퇴직한 지 보름이 지났다. 그가 다녔던 전 직장은 누구나 탐을 내는 대기업이었다. 통제가 심하고 빛 좋은 개살구처럼 야근과 미친 듯이 주고받는 톡 메신저와 주/야 상관없이 울리는 전화, 비관적인 미래 때문에 사표를 내던졌다. 나름 고학력이라 먹고살 것은 걱정되지 않지만 불안하다. 편하게 쉬기 어렵고 긴장감과 다행감이 번갈아 찾아온다. 퇴직 전 상담을 시작했다. 우울해서였다. 직장 동료의 괴롭힘으로 지쳐 있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 많은 꼰대 부장의 등장으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업무를 모르는데 이상한 방식으로 성실해서, 계속 불안으로 일 벌이는 것과 윗사람을 향한 보고에 미쳐 있어서 리포트가 많아졌으며 감당 못하는 일을 일몰 과제 없이 마구 늘려가는 스타일이었다. 그 옆에서 엄청난 아부를 퍼붓는 두 명의 동료가 협연했다. 뒤에서는 독설과 험담으로 시간을 보냈고 윗사람이 시키는 티 나는 답답한 일만 했다. 그 외에는 바닥에 휴지 하나 줍지 않고 떨어진 비품 하나 채우지 않는 이기적인 두 여자의 작태가 너무 힘들었다. 자기들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잘못에 대해 부정 부인에 자의식만 높은 사람들이라 여겼다. "♬ 일어나라 게으른 내 친구야~♬ " 리만의 알람 시계가 울리고 있다. 예약된 상담 시간이 다 되어간다.
상담실
전화가 울린다. 엘리는 찜찜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다. 전화 너머 리만의 땅 꺼지는 어둡고 침체된 목소리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오늘 상담은 쉬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목감기 증상도 있고, 허리도 아프다고 말한다. (침묵) 너무 죄송해서 취소 수수료를 일부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말한다. 엘리는 "어떤 불편한 이유가 있을까요?"(침묵) "리만씨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어요. 기분과 생각이 변하기도 하니까.... 제가 조금 기다릴 테니 전화하신 김에 준비를 해보는 것이 어때요?"라고 인내를 가지고 제안했다. 전화 너머 남자의 결심은 평소와 달리 단호했다. 엘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두 사람 모두 이 침묵이 꽤 길게 느껴졌다.
침묵을
가로질러 엘리는 이내 전문가답게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하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남겼다. “리만씨 처음 있는 일이라.. 알겠어요. 규칙은 안다고 하시니.. 선택을 존중해요. 다만, 우울이 재발할 때, 모든 것이 귀찮을 수 있어요. 요즘 여러 가지 일정과 과로로 무리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좋겠어요. 자신에게 휴식 등 도움이 되는 것을 하세요. 오늘 비가 오고 우중충한데 이런 날은 더 침체되고 감정대로 행동하기 쉬워요. 기억나시죠? (네) 어렵겠지만 좀 누워 있다가 운동하면 좋지만, 짧게라도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 커피를 사 온다거나 걷기를 권해요. 그 후 경험을 공유해주세요.” 말이 길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취소에 대해 약간 짜증을 알아차렸고, 설득/논쟁의 씨름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하던 대로 가치전념했다. 내담자를 위한 꼭 필요한 처방을 주고 싶었다. 전화 너머로 "선생님 죄송합니다. 말씀 주신 것 노력해보겠습니다."라고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끊고 책장을 보는데 <우울 행동활성화 근거기반 치료>라는 책 제목이 책장에서 뛰쳐나오는 듯했다. 엘리는 한편으로는 쉴 수 있는 시간이 반갑기도 했다. 책이라도 볼까 커피를 탈까, 친구와 통화를 할까 생각을 했다. 일단 지하철로 시달린 몸을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카우치 보다 역시 소파다. 오후 상담을 위해 회복해야 해서 자비명상과 바디스캔을 시작해보았다.
리만은
전화를 끊고 한동안 넋을 놓았다. 이건 회피의 마음이다. 잘 안다. 엘리에게 배운 대로 알아차림을 하는 중이다. "내가 회피하고 있구나." 도움이 되는 활동의 회피, 도움이 되는 행동, 이직 계획과 지원서 내기 등 과제에 대한 체크가 있었을 것이고 진전이 안 된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수치심이 들기 때문에 상담도 회피하려 했는지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상담 시작한 이후 확실히 자각력이 늘었다. 자책은 좀 줄었다. 접근 동기와 운동 등 가치전념은 늘어났으나 회피는 아직 남아 있었다. 조금 피곤하거나 날씨가 안 좋으면 우울이 강하게 왔고 다 귀찮아졌으며 자신 없어졌고 과거의 갈등이나 괴롭힘, 부정적 사건들이 떠올랐다. 분노가 미친 듯이 올라와 보복을 하고 싶은 충동이 있던 몇 달 전에 비해 지금은 차분함과 약간의 우울을 시소 타는 정도다. 누웠다. “아~ 각성됐나 보다. 수영이나 갈까?” 더 자고 싶은데 잠이 오질 않는다. 상담을 다시 시작하자고 말해볼까? 우유부단한 생각이 지나간다. 30분을 더 뭉그적거리고 일단 비가 오니 반바지에 크록스 바람 점퍼를 대충 걸치고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1층에 내려와 우산을 폈다. 아파트 화단을 거닐었다. 차를 타고 시동을 걸었다. 디젤 엔진이 리만의 마음처럼 좌우로 꿀렁댄다. 어두침침 날씨처럼 기분이 우울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시민은행’으로 향했다. 대출 상담받기 위해서다. 주차장이 복잡한 것을 보니 지금 은행에 가면 사람이 많을 것이라 단정하고 은행 주차장을 지나쳐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
리만은 따듯한 샤워기 물에 몸을 적셨다. 수영이 적절한가 생각했다. 차가운 물보다 따듯한 물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나간다. 시간이 느리다. 느릿느릿한 행동으로 수영복을 입는다. 어쩐 일인지 수영장에 사람이 없었다. 호젓함도 있고 망망대해 외로움도 밀려왔다. 천천히 준비 운동을 했다. 배운 대로 마음챙김 하듯이 스트레칭을 했다. 시간이 매우 천천히 흐르는 듯 했다. 수영장 턱에 앉아 다리와 몸에 물을 묻혔다. 차가운 한기가 지나갔다. 엘리가 안내한 훈련대로 마음챙김으로 피부 감각에 집중해 보았다. 물에 첨벙 들어갔을 때 “아츄!” 외마디 호흡, 탄식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물의 온도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우울한 날에는 여기저기 더 예민했다. 비 오는 날 관절이 아픈 것도 오래되었다. “전념...” 기꺼이 물속으로 들어가 프리스타일 크롤영으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15년 전 대학원 시기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할 때 고급반까지 배운 수영은 잊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첨벙 대는듯했으나 팔을 돌려 물을 잡고 나아가는 유영, 발의 박자가 신기하게 잘 맞았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쭉쭉 리듬감 있게 수영을 해나갔다. 힘을 주어 왕복 몇 바퀴를 돈 다음 돌아누워 천장을 보았다. “하~ 아 좋다!” 이렇게 상쾌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몸에 피가 도는 듯했다. 몸에서 열이 났다. 차가운 기운이 덜 느껴졌다.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감사함이 떠올랐다. “아 이래서 엘리 선생님이 그렇게 행동활성화, 활성화하는구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는 접영, 평영, 배영 골고루 몰입해서 행위를 했다. 리만은 살아 있다 느꼈다.
리만은
거친 숨을 헉헉대면서 레인을 바라보고 있다. 당장 해야 할 것,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할 것, 연락할 일들이 정리가 되었다. 사람들을 약속 잡고 만나기로 했으나 마음이 바뀌어 피했던 사람들에 대해 다시 약속을 잡고 만날 용기가 생겼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신기하게 해가 났다. 천장 유리를 통과한 빛이 심연 깊숙이 내리쬐고 있었다. 수영장 주변 창에 볕뉘와 함께 리만의 마음에도 느루 희망과 감사가 들어왔다. ‘초기 조건의 민감한 의존성!’ 왠지 오랜 우울도 이번에는 잘 헤쳐나갈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우울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 운동의 효과를 확실하게 경험하고 기억하는 듯 했다.
수영장을 나서는데,
엘리가 말한다. “리만씨, 오늘 이것만 기억해요. 경험으로 배운 것은 잘 잊히지 않아요. 무엇인가 시도하고 전념하면 보상과 긍정경험을 하고 그걸 뇌는 평생 기억할 거예요.” 엘리가 첫 회기 상담 때 안경 너머로 눈에 힘주어 말하는 장면이 지나간다. 자비롭게 리만 눈을 쳐다보며 또박또박 힘주어 얘기하던 모습이 웹 팝업창처럼 회상되었다. 수영장 인포 데스크를 나서는 그의 검정 크록스 신발에서 무거움을 깨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사진은 픽서베이 또는 직접 촬영했음.*novellìstica
주의 : 이 소설은 여러분이 아는 그분이 아니며 동의해준 지인의 이야기의 각색, 상상 스토리를 바탕으로 작업되었습니다. 치유와 관련된 허구의 삶의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밝혀둡니다. 출판 예정으로 내용 관련 저작에 대해 보호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