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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Apr 04. 2022

수다가 필요해

WRITING

다 늦게,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을 했을까?

글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수익도 없는 이 쓸데없는 짓을 나는 왜 시작했단 말인가!




어린 시절의 나는 책 읽기를 참 좋아했었다. 

우리 집에는 항상 책이 넘쳐났고, 공부를 하다 지칠 때면 소설책 속으로 도망을 갔다.

백과사전부터, 동화책, 과학도서, 동양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이 가득한 책장에서 아무렇게나 책 한 권을 꺼내 읽고 또 읽었다.


그 덕에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능의 언어영역만큼은 문제의 지문을 읽지 않고도 풀 수 있을 정도여서 시간을 남겨 여유롭게 시험을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20대 이후 뭐가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나는 점점 책에서 멀어져 갔고 한 해 동안 읽은 책은 손가락으로 세도 될 정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의 읽기도 점점 온라인 세상으로 넘어갔다. 

인터넷 뉴스 기사와, 블로그, 카페 등의 짧은 글들로 정보를 얻고 소비해 나감과 동시에 직접 쓰기도 하였다.

그 옛날 모뎀의 전자음을 들으며 접속을 하던 시절을 시작으로 유니텔을 거쳐 라이코스 프리첼을 지나 싸이월드의 감성 넘치던 시절, 다음에 카페로 소통을 하고 네이버에 블로그를 만들기까지 세월은 점점 새로운 플랫폼을 내어놓고 있었다. 그 외에도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돌이켜 보니 시대를 따라가느라 나도 참 열심히였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 속의 이야기들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창장의 신 영역 그 자체였기 때문에 나는 철저히 독자로서 즐겼지만, 온라인 세상이 되고서는 '이런 글쯤은 나도 쓰겠는데!'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잘 나가는 인문학자의 자기 계발서를 접할 때면 너무나 뻔한 이야기에 출신 학교와 학위를 빼면 누가 해도 별반 다르지 않겠다며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니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던가.


글을 읽기만 하고 단편적인 문장만을 끄적일 때에는 글쓰기가 만만해 보이더니, '브런치 작가'의 타이틀을 얻고 정자세를 잡아 읽을만한 글 하나를 쓰려고 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을 쓰는 일은 힘든 만큼 뿌듯하며 뿌듯한 만큼 부끄럽고, 읽으면 읽을수록 수정할 것이 보이는 신기한 작업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이러한 글쓰기를 나는 왜! 시작했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다가 필요했던 것 같다.


잡식성으로 이것저것 읽어 대며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던 어린 시절, 습자지처럼 얇은 잡다한 지식을 가지고 친구들과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건네며 수다를 떨었다. 가끔은 나만 아는 이야기에 우쭐 대기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깔깔거리기도 하며 뒤죽박죽 검증이 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해맑게 웃고 떠들었다.


어른이 되고, 사회로 나오고, 결혼을 하고, 제주도로 이사를 오고, 코로나가 퍼지고...

깔깔대며 쓸데없는 수다를 나눌 친구들을 편하게 만나기란 쉽지 않아 졌다.

일부러 작정을 하고 날을 잡아 약속을 정하지 않는 한 내 또래의 친구들은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삶이 너무나 바쁘다.


글쓰기를 통해, 수다로 소비되지 못하던 머릿속 이야기들이 비워지고 비논리적 무작위적 감정적이었던 생각은 정리되고 정제되어갔다.

내가 왜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라는 물음도 이 글을 쓰며 스스로 답을 찾는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채우면 머릿속이 비워진다. 비움과 채움의 균형이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키보드를 통한 나와의 수다를 통해 또 하나의 글을 완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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