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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Apr 14. 2022

19. 제주도에서 취업하기

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정착

다시 직장인


결혼을 하고 제주도에 터전을 잡은 후 2년 동안 간간히 일을 하긴 했지만, 우리는 반 백수로 지냈다. 

재택근무를 하고,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물류센터에도 나갔으며, 민박, 에어비엔비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안정된 고정 수익은 없었다. 


그저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둘이 함께 지내는 것이 좋아 돈 욕심 없이 곳곳을 돌아다니던 제주도를 즐기던 시절이었다.

매일이 여행 같았던 2년 여가 흐르고, 우리는 진지하게 생계에 대해 의논을 하였다.

아이는 없었지만 아직 대출금도 남아 있었고, 일상생활을 하며 좋아하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곳에 가려면 계속 놀기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많은 고민 끝에 다시 직장인이 되기로 하였다.


제주도에서 새로 직장을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워크넷, 사람인, 잡코리아 등을 뒤져 보아도 너무나 한정적인 일자리뿐이었다.

2017년 당시 제주에는 아직 주 6일 근무인 회사도 많았으며, 연봉은 서울의 70~80% 수준 정도로 나이나 직급도 맞지 않아 나의 경력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제주 출신만을 고집하는 업체도 있었으며 그나마 사람을 많이 뽑는 제주시내는 버스노선이 개편되기 전이라 출퇴근이 어려웠다.

나도 나지만, 신랑의 일자리는 더욱 찾기 힘들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연봉이나 경력, 위치며 시간 등을 재고 따지지 않고 알아보기를 며칠째, 드디어 이력서를 낼 수 있을만한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법인 기업에서 제주도에 조성 중인 휴양림의 홈페이지를 관리해주는 업무였다.


이력서를 넣고 며칠 뒤 서울로 면접을 올 수 있냐며 연락이 왔다.

외딴곳에 있어 회사 측에서도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 고생을 한 터라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됐다.

일주일간 서울 본사에서 연수를 받은 후 나는 교래리의 농장으로 출근을 했다.



교래리 농장 생활


출퇴근은 신랑이 매일 차로 데려다주었다.

차로 15분 거리였지만, 버스를 이용하며 오름을 빙 돌아 두 번 갈아타고 40분이 걸렸다.

그마저도 갈아타는 버스 간격이 30~40여분이라, 시간을 놓치면 2시간이 넘게 걸릴 수도 있었다.

이후 나는 장롱면허를 꺼내 운전 연수를 받고 혼자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버섯농장과 휴양림으로 조성 중인 숲은 당장의 수익을 내는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 달에 두어 번 본사 회장님 부부가 내려오지 않는 한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였다.


회장님 부부가 내려오는 주말마다 팀장님은 휴무도 반납하고 비서가 되어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경비견을 자처하는 하얀 진돗개 두 마리도 상하를 인식하는 것인지, 매일 보는 직원들보다 가끔 오는 회장님을 따르며 앞장서 산책을 나섰다.

평상시대로 하라고 했지만, 주방의 점심 메뉴도 회장님 취향에 맞춰 세팅이 되었고, 직원들은 잔뜩 긴장을 한채 하루 일과를 보냈다.


나는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관리하는 일과 함께 제주지사의 모든 출납과 관련 서류를 작성하여 서울 본사로 올리는 일을 하였는데, 개 밥그릇 하나까지 모두 회장님 전결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은 회장님 보고용으로, 올리는 사진 또한 찾아올 고객보다는 회장님 취향에 맞는 각도로 찍어야만 했다. 게다가 회장님은 외부인이 들어오는 걸 싫어하셨기 때문에 사진을 보고 찾아오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도 이들을 말리며 장소를 숨겨야만 했다.


모양을 갖춰 꾸며놓은 버섯 밭은 매일 돌보지 않아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못생긴 버섯들이 피어났는데, 그 상품성이 일정하지 않아 소매로 판매되는 것은 흐지부지 되며 조합에 도매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홍보는 하되 사람은 오지 못하게 할 것, 버섯은 팔되 도매로 넘김.

사실상 온라인 마케터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홈페이지를 관리하며 사진을 찍고, 버섯을 따고, 전표를 작성하고, 봄이면 사모님이 요청하는 쑥을 뜯고 주방의 일손을 도우며 농장의 생활에 적응해 갔다.





그즈음 신랑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는데 이른바 '노루망 치기'였다.

제주도는 산간지역에 노루가 자주 출몰하여 밭작물과 새순을 남김없이 뜯어먹기 때문에 노루가 들어올 수 없도록 망을 쳐야 하는데, 이러한 작업을 제주도가 지원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노루망을 치는 곳은 주로 산간의 숲과 오름에 위치한 밭이어서, 신랑은 제주 전역을 달려 수많은 숲과 오름에 올라 노루망을 쳤다. 


한 사람은 오름으로 한 사람은 휴양림으로 매일 출퇴근을 직장인이 되다 보니 우리는 점점 서울에서와 다를 바 없는 생활 속으로 젖어 들어갔다.


매일의 출퇴근과 집에서의 휴식.

여행지에 일을 하러 다니다 보니 쉬는 날에는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게 된 것이다.


여행으로 잠시 다니러 오는 게 아니라면, 직장인의 삶이란 세상 어디든 다 똑같다 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우리의 나들이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매일이 여행 같았던 제주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안정된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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