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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May 06. 2022

닭이 주는 건강

cooking essay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국민학교 6학년 겨울방학, 방학과제의 하나로 스케이트장을 가야만 했었다.

같은 반 친구들 서너 명과 스케이트장에 갔던 그날 나는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서툰 솜씨로 스케이트장을 천천히 돌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빠르게 생~하고 달려가며 옆으로 확 밀어 버렸던 것이다. 그 바람에 넘어진 나는 다리에 전해지는 강한 통증에 절뚝거리며 링크장 밖으로 겨우 나왔다. 다리가 부러졌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집에 가기 위해 스케이트를 갈아 신으러 락커룸으로 가고 있었는데, 고통을 참으며 필사적으로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스케이트장의 관계자가 다가와 나를 의무실로 데려다주었다.

의무실 선생님은 내 다리를 이곳저곳 살펴보더니 병원에 가야 한다며 집 연락처를 받아 갔다.


그렇게, 난생처음 구급차를 타고 나는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다.


당시(1990),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의무실로부터 스케이트 타러 간 막내딸이 다쳐서 병원에 갔다는 연락을 받은 엄마는 자초지종을 알 수 없어 크게 다치거나 스케이트날에 얼굴이 상하지 않았을까 많이 걱정되며 놀라셨다고 한다.


병원 응급실, 엑스레이 속 나의 다리는 내가 봐도 구분이 될 정도로 '똑' 세동강이 나 있었다.

부러진 가운데 조각은 계단을 오르려는 나의 노력 때문이었는지 많이 어긋나 배열에서 벗어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하면 다리에 흉이 남으니 아파도 참으라는 말과 함께 나의 부러진 다리 위를 붙잡고 있는 힘껏 비트셨다. 뼈를 파고드는 고통에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는 눈물만 뚝뚝 흘리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은 어긋난 뼈를 손의 감각으로 바른 위치를 찾아 마취도 없이 비틀어 맞춘 것이었는데,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잘 참냐며 다음부터는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해야 한다고 뒤늦게 알려주셨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병실 배정을 기다리며 누워 있을 때 응급실로 엄마가 들어왔다.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부러진 곳은 무릎과 발목 사이의 굵은 다리뼈였는데, 허벅지부터 발가락 끝까지 위아래 반으로 나뉜 반 깁스로 고정을 시켜 놓고 매일 살필 수 있도록 붕대로 감아 놓았다.

수술을 하여 심을 박아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뼈가 고정이 될 때까지는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겨울 방학부터 봄방학을 지나 졸업식이 올 때까지 나는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역시나 병원밥은 나의 입에 맞지 않았다. 

안 그래도 편식이 심한 나에게 건강한 병원밥은 먹지 않는 반찬들 뿐이었다.

잘 먹지 않는 나를 위해 엄마는 뼈가 잘 붙어야 한다며 매일같이 보온 통에 사골국을 싸들고 오셨는데, 그 마저도 계속 먹으니 질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사골국에 질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로 인해 그 시절 우리 식구의 반찬은 매일같이 사골국뿐이었다고 한다.


어린 나는 엄마의 정성이나 사골의 효능 따위를 헤아릴 줄 아는 수준이 아니어서 늘 투정만 부려댔다. 그러면 엄마는 병원 근처의 식당에 가서 삼계탕 한 그릇을 사 가지고 오셨는데, 엄마의 백숙이 아닌 밖에서 파는 삼계탕을 그때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처음 먹어보는 삼계탕은 편식이 심한 어린 나에게도 정말 맛있었다.

나는 비싼 줄도 모르고 틈만 나면 삼계탕을 사달라 철없이 졸라댔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통원 치료를 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삼계탕집에 직접 방문을 해 볼 수가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강한 인삼의 향이 풍겨 나오며, 각종 약재 뿌리가 담긴 유리병으로 식당 벽면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뚝배기에 담긴 삼계탕 한 그릇을 나는 남김없이 싹싹 비우고 돌아왔다.


이후 많은 삼계탕을 먹어 보았지만, 아직도 그때 먹었던 삼계탕이 나에겐 최고의 맛집으로 기억되고 있다.




엄마의 백숙, 병원의 삼계탕, 그리고 전기구이 통닭까지, 닭들은 아플 때마다 나의 입맛을 살려주고 건강을 주었다. 

지금은 백숙이나 삼계탕보다 후라이드 치킨과 각종 냉동식품으로 가공된 닭들을 더 많이 소비하고 있지만, 그래도 몸이 으슬으슬 안 좋을 때면 엄마가 사다준 통닭 한 마리, 진한 삼계탕 한 그릇이 떠오르는 건 몸에 각인된 기억 때문일 것이다.


환절기를 지나 여름의 삼복더위가 오기 전 맛있는 삼계탕 한 그릇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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