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정착기. 에피소드 3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지명이었다.
'중산간'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무척 생소하여 그 의미가 한 번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단어 그대로 산의 중간 지역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제주도가 섬이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10년간 중산간 지역에서만 살아왔던 나는 바다의 특징보다는 산의 특징을 더 많이 느끼며 살 수밖에 없었다.
처음 터전을 잡았던 와흘리는 제주도의 동북쪽 중산간 마을이었다.
나무가 많고 마을 뒤로 숲이 이어져 있어 아침마다 새소리로 기상을 하는 일이 많았고, 커다란 산 까마귀는 우리 집에 터를 잡고 시간마다 깍 깍 울어대기도 했다. 가끔 찾아오는 산비둘기는 깃털이 반지르르 윤기가 흘러 도심의 기피대상과는 정 반대의 이미지였고, 수확이 끝난 밭을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다가 인기척에 푸드덕 뛰어 도망가는 꿩들은 날아다니는 것보다 뒤뚱뒤뚱 뛰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 주었다.
계절이 바뀌며 스르륵 마당을 지나가는 뱀들을 목격한 것도 여러 번, 밤 외출을 나갈 때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노루에 항상 조심해야만 했다.
하루는 해 질 무렵 신랑과 함께 마당에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희뿌연 연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더니 골목을 가득 메우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당을 가득 에워쌌다. 처음 겪는 일이라 우리 둘은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다 이내 안심을 하고 풍경을 즐겼다.
빠른 속도로 덮쳐온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안개였던 것이다. 산안개가 내려와 마을을 감싸며 내려가는 중이었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짙은 농도의 안개는 곧 넓게 퍼지며 무대 위 은은한 스모그를 뿌려놓은 듯 온 마을을 감싸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후 중산간의 안개는 평범한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안개에 휩싸인 채 비상 깜빡이를 켜고 번영로를 지나 중산간 도로를 빠져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도로가 펼쳐졌다.
우리는 이런 산 안개를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매년 봄이면 찾아온 고사리 장마도 중산간의 특징이다.
제주도는 기본적으로 습한 곳으로,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봄이 가장 습하다고 느끼는데 고사리 장마라고 불리는 봄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기 때문이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없는 날에도 어김없이 새벽이면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고 해가 뜨면 언제 비가 왔냐 싶게 맑게 게인다. 그 비를 맞고 고사리 새순이 쑥쑥 고개를 내밀며 올라오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몽빼를 입은 할망들이 저마다 배낭을 둘러메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익숙한 고사리 장마를 해안으로 이사 온 일 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니 고사리 장마는 겨울 동안 내린 한라산의 눈이 녹으며 기온차에 의해 발생된 물안개가 이슬이 되어 내리는 산 이주는 선물이었던 것이다.
올해는 장맛비가 아니라, 산마다 내걸린 고사리 채취 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플래카드를 보며 고사리철이 왔음을 깨달았다.
중산간에서만 10년, 해안으로 이사온지 1년
차로는 10~20여분 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제주의 해안과 중산간 마을의 다름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바닷가의 노을 지는 풍경과 파랗게 빛나는 바다의 물보라도 아름답지만, 10년간 적응해온 산속의 이슬을 머금은 맑은 공기와, 마을을 감싸 않았던 운치 있는 물안개가 그리운 계절, 고사리를 따는 할망의 바쁜 걸음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 산안개
운전을 하다가 산안개를 만났다면 너무 당황하지 말자.
비상 깜빡이를 켜고 서행으로 조금만 운행하다 보면 다시 맑은 구간으로 들어설 수 있다.
■ 고사리 장마
4~5월 여행을 와서 아침에 비가 온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자.
하루 종일 우산이 필요 없는 맑은 날일 가능성이 크다.
■ 중산간 마을
숙소를 정할 때 위치를 살펴보기 바란다.
대부분의 중산간 마을 주변에는 편의 시설이 많지 않다.
[제주] 소식지
제주 소식지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발행하고 있는 간행본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일 년에 네 번 발행을 한다. 온라인으로 볼 수도 있고, 신청하면 책자를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다. (신청비 무료)
지역 소식지라서 따분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는 제주의 정보들을 읽어 볼 수 있어 제주도에 처음 살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해 줄만 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