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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May 02. 2022

23. 버스 타고 제주 한 바퀴

제주 정착기. 에피소드 2

오래전(2012년) 뚜벅이 여행으로 홀로 제주에 방문한 일이 있었다.


제주 올레길 1코스를 시작으로 걸어서 제주를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나는 저질 체력이었다.

시흥리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올레 1코스를 마치기도 전 성산일출봉에서 이미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말았기 때문에, 나는 무리하지 않고 버스로 이동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광치기 해변에서 멋진 경관으로 힐링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올레 2코스의 포인트 혼인지로 향했다. 정류장 명칭은 '혼인지 입구'였지만, 정류장에 내려 10여분을 걸어간 후에 혼인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조용하고 한가로운 혼인지를 나 홀로 걸으며 조금은 스산한 숲의 아침 공기를 마시고 다시 해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인지에서 올레 3코스의 시작 온평포구로 가기 위해서는 걸어가는 방법뿐이어서 버스여행으로 마음속 계획만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걷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포구 한쪽 성게를 까는 해녀 할머니들이 하릴없이 걷는 나를 신기한 든 바라보았다.

동네 구경을 실컷 한 후 다시 한참을 걸어 버스정류장, 또 한참을 기다려 표선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올레 4코스의 시작 표선해수욕장에 내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이런 저질체력을 가지고 제주의 뚜벅이 여행을 계획한 것이 얼마나 무모했는가를 뼈저리게 깨닫고,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지금은(2022년) 버스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여행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일단, 가능은 하다.

예전과 다르게 제주도의 버스 노선도 많이 개편이 되었고, 다양한 지역으로 운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버스 여행을 결심하였다면, 많이 걷고, 많이 기다리는 것이 필수로 동반된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여유 있는 무한의 시간과, 한없이 걸을 수 있는 체력, 어떤 순간에도 지치지 않는 강한 멘털을 지녔다면, 버스를 타고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버스카드

처음 제주도에 왔을 당시(2012년), 버스카드가 막 도입이 되는 시점이었다.

아직까지 서울의 일부 교통카드는 인식이 되지 않았고, 내리는 곳마다 버스요금이 달랐기 때문에, 버스 기사님들은 버스를 타는 승객들에게 일일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묻고 현금을 받아 계산을 해 주었다.

그 시절 일일이 승객들의 안위를 챙기는 버스기사님들의 거친 말투는 간혹 당황스러웠지만, 살다 보니 제주의 억양에서 오는 투박한 친절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지금은 모든 지역, 모든 카드사의 교통카드가 인식되며 요금도 통합이 되어 도착지를 말하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다.


제주공항 승차장

예전 제주공항에는 버스 승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오는 버스를 일일이 확인하고 탔어야 했다. 한 번은 버스 번호만 보고 올라탔다가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다시 버스를 갈아타는 일도 있었다. 그 후로 공항에서 버스를 탈 때면 반드시 방향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의 공항은 지역별 노선별로 승차장이 정리되어 있다. 반대로 갈 걱정 없이 안내 표지만 잘 확인하면 된다.


정류장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만 해도 표지판 달랑하나 노선도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버스 정류장은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서울과 마찬가지로 노선안내도와 버스도착 예정시간이 표시되며, 여름에는 에어컨도 나오고 겨울에는 온열이 되는 의자도 있다. 

하지만 일부 지역은 아직까지도 표지판 달랑 하나만 세워진 정류장도 많다. 이런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면 버스기사님이 잘 보이도록 손을 흔들어 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버스노선

버스노선이 개편되기 전에는 지역 간의 이동을 위해서는 제주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어 버스를 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제주공항에서 동쪽으로, 서쪽으로, 성산, 애월, 서귀포 어디든 바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연결 노선이 많지 않아 버스로 멀리 목적지까지 가려면 미리미리 검색하여 노선도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노선도만 살필 것이 아니라 반드시 버스시간도 함께 체크해야 한다.

제주 시내권을 운행하는 버스는 20여분 간격이지만, 제주시내권을 벗어나면 한 시간에 한두 대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니 갈아타는 버스가 바로 올 거라는 낙관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부 마을버스는 시간에 따라 노선이 조금씩 바뀌어 운행하기 때문에, 잘못 검색을 하면 하루에 한두 대 다니는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노선과 함께 시간 검색 필수! 참고로 대부분의 버스는 10시 전에 운행이 종료된다.




서두에 이야기 한대로, 한 시간에 두어 대 다니는 버스를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무한의 시간과, 정류장과는 너무 먼 목적지까지 걸어갈 수 있는 체력, 갑자기 사라진 연결 버스에 당황하지 않고 택시를 부를 수 있는 멘털이라면 버스로 제주여행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짧은 시간 바쁜 일정이라면 한번 더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다른 교통수단과 병행하며 대표 관광지 한두 곳 정도 운치 있게 이용을 해보는 것은 추천한다!


제주 버스정보시스템

제주 버스정보시스템 사이트에서 버스노선과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간혹 기상에 따른 운행 변경 사항도 공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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