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매주 즐겨보는 유 퀴즈에 '김영하' 작가님이 출연하였다.
방송을 보며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제 막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나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구체적인 감정을 표현하라.
소설을 쓸 때는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뤄, 가능하면 구체적으로 그 감정이 뭔지 표현하도록 노력해라.
일반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
'짜증 난다'는 말을 잘 살펴보면, 그 안에는 슬픔도 있고 당혹감도 있다.
사람들이 감정을 뭉뚱그려서 말하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터질 수 있기 때문에 누르고 있는 것이다.
책과 마주하면 안전하다. 글을 통해 슬로모션으로 표현된 감정을 언어화해서 받아들인다.
소설을 보며, 그때 내가 이랬지 하며 마음껏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 정화 즉 카타르시스에 이른다.
절대 쓰지 않을 이야기들의 목록을 만들어라.
여행에 가기 위해 리스트를 작성하면 여기는 이래서 안돼, 저기는 이래서 안돼, 하면서 서로 싸우게 되며 못 가는 곳이 많아진다.
절대 가지 않을 곳의 목록을 만들다 보면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말할 수 있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로 그곳에 가게 될 수도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제주도에 정착하기까지 10년간의 일들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그 어렵다는 브런치 작가도 두 번 만에 합격을 하였고, 하나 둘 글을 적으며 수다가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브런치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 수다가 필요해)
할 말이 많았던 만큼 글은 술술 써졌고, 거의 매일 발행하다시피 했다.
어떤 글은 10만이 넘는 조회수가 나왔고, 3개월 사이 구독자는 200명이 넘었다.
솔직히, 이런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 많은지 적은 지 아직 잘 모르겠다.
처음 쓰려고 했던 10년간의 제주도 이주 스토리는 1부는 브런치 북으로, 2부는 매거진으로 완료가 되었다.
● 브런치 북 : 제주 이주, 상상을 현실로! 1부
● 매거진 : 제주 정착기
신랑에게 엄마의 요리를 설명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정리해 보고자 써 내려간 엄마의 집밥 이야기도 한 권의 브런치 북으로 완성이 되었다.
● 브런치 북 : 엄마의 집밥에는 이름이 없다.
목 까지 차올랐던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 뱉어내고 나니, 이쯤에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브런치 통계, 구독자, 라이킷에 연연하고 있진 않은가?
더 많이 읽히길 바라는 욕심이 생겨버린 건 아닐까?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고 있을까?
보여주기 식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을까?
1. 제주 정착기
제주 이주의 10년간의 이야기가 끝나고, 22편부터는 에피소드에 얽힌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제주에 대해서 나에게 물어보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직접 격은 경험담을 적고 있다.
2. 제주 여행기
주말마다 다녀온 곳을 기록하고 있다.
워낙 지명이나 장소를 잘 잊어버리는 편이라, 이렇게 기록을 해 두면 친구들이 물어봤을 때 추천해 주기 좋다.
3. 요리 에세이
집에서 밥을 하다 보면 신랑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요리와 새로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다.
4. 그날의 단상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말하고 싶지만 생각으로만 남아있던 것들을 친구에게 수다 떨 듯 써 내려가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을 쓰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금방 지쳐 그만두지 않기 위해 예전처럼 수시로 발행하지 않고 규칙을 세우기로 했다.
발행은 화, 목 주 2회.
개인 에세이에 해당하는 '요리 에세이'와 '그날의 단상'은 화요일, 제주 이야기에 해당하는 '제주 정착기'와 '제주 여행기'는 목요일에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글을 써 놓고 나중에 발행 버튼만 누르다 보니 작가의 서랍에는 발행되지 않은 글들이 하나 둘 쌓여 가고 있는데, 이 글들을 모두 발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던져 버리고 천천히 가기로 했다.
작가의 서랍에는 완성된 글도 있지만 쓰다가 만 글들도 쌓여 있다.
어떤 글들은 분명 하고싶은 말이 있어서 시작했는데 서너 줄로 끝나버려 남겨 놓은 것도 있고,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지 못하고 나열해 놓은 것들도 있다.
굳이 이 글들을 모두 발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김영하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며 깨달았다.
버려진 아이디어, 절대 쓰지 않을 이야기들은 원래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절대 발행하지 않을 이야기'도 함께 쓰기로 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나의 감정들을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객관화하여 안전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이자 수다의 장이며 추억의 기록이었다.
그러다 보니 개인 적인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누군가가 읽는 다고 생각하니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점점 줄어들고 어떤 이야기는 미화되고 포장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발행되지 않을 이야기라면 보다 솔직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발행을 염두에 두면 쓰지 못할 이야기, 구독자나 라이킷과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적어 작가의 서랍에 남겨 두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작가님 말대로, 언젠가는 발행이 가능한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니깐 말이다.
앞으로 발행되는 이야기보다 절대 발행하지 않을 이야기가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나씩 써 내려가다 보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등바등 글 쓰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오늘도 또 한 줄 작가의 서랍에 글을 남기며, 거창한 '작가'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슬그머니 내려놓는다.